서울특별시

큰누리 2022. 6. 5. 17:13

 

 

 

지도를 첨부하다보니 연세대, 혹은 신촌 세브란스병원이 크기는 컸다.

알렌기념관은 세브란스병원 본관 '세브란스 아트리움'에 있었는데 지도에서 검색이 안 되었으니 명칭이 정확한지 확실치 않다.

병원에서 진료를 마치고 엘리베이터로 밖으로 나오려다 우연히 마주쳤고, 건물 안에 있는 안내문에서 본 이름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대학에 관련된 건물이 아니라 세브란스병원 본관 3층에 있었던 전시장이다. 

 

이전에는 알렌과 언더우드가 자꾸 헷갈렸는데 이 글을 쓰면서 확실하게 다른 분이란 것을 알았다.

언더우드는 선교사로 입국했다가 서울에 선교 외의 일반적인 교육기관(오늘의 연세대)을 세운 분이고,

알렌은 선교사 겸 의사로 활동했고 오늘날 세브란스병원의 기반을 마련한 분이란 것이다.

일반인에게 이 정도 지식을 아는 것도 쉽지 않다, ㅎㅎ...

 

언더우드기념관은 몇 년 전에 이곳에 자세히 올렸고 알렌에 대한 정보는 알렌 기념관(Allen Memorial Hall)이 가장 자세할 듯하다.  

알렌에 대한 또 다른 기록은 세브란스 본관 건물 4층에 전시 중인

'연세창립 132주년-합동60주년/세브란스 기록화 전시(광혜원·제중원 137주년 연세의료원 출범 60주년 기념사진전)'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 즈음해서 쇼그랜증후군 추적검사 때문에 일주일 간격으로 몇 번을 드나들면서 시간이 빌 때마다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진료과가 3개나 되고 시간이 벌어져서 그 빈 시간 동안 전시장을 둘러보다보니 두서가 없었다.

특히 병원 건물 안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전시장은 더욱 그러했는데 그 전시물들은 연세대 출신의 동문들이 기증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동문들이 평생을 모았을 애장품들을 생전, 혹은 사후에 모교에 기증한 것들이 많아 놀라웠다.

그 정도의 컬렉션이라면 사회적으로 성공했거나 재정적인 여유가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브란스 아트리움, 알렌 기념관>

세브란스 아트리움이란 이 건물을 통칭하는 것 같지는 않고 일부 층을 지칭하는 듯하다.

나머지 층은 연구실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고, '광혜원·제중원 137주년 연세의료원 출범 60주년 기념사진전'도 이날 이곳에서 본 것 같다. 

 

 

 

<알렌 기념관 입구의 올리버 R. 에비슨 초상>

Oliver R. Avison (1860~1956)

1887년, 캐나다 토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토론토 시장 주치의로 활동하던 청년 에비슨은

평소 지녔던 해외선교 활동에 대한 꿈을 펴고자 조선에서의 의료선교 활동을 자원했다.

1893년 7월, 조선 땅을 밟아 제중원을 운영하며 「그레이(Henry Gray)해부학」 등 각종 의학 교과서의 한글 번역 작업에도 열정을 다했다.

1900년, 루이스 H. 세브란스씨로부터 병원 건립기금을 기부 받아 남대문 밖 도동에 새로운 병원을 짓고 세브란스병원이라고 명명,

한국인 의사 양성에 집중하였으며 1916년 조선 기독교 대학(연희전문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하여 한국 근대의학과 고등교육을 이끌었다.

 

 

<알렌 기념관 입구의 고종이 하사한 당나귀를 타고 왕진 가는 알렌 사진>

 

 

<알렌 기념관 내부 동영상>

 

 

<알렌의 기록들>

중앙의 작은 종이는 1901년 주한 미국 전권공사 시절의 명함, 3개의 문건은 1890년대 공사관 시절의 각종 보고서이다.

 

 

<알렌의 조선 입국>

알렌은 1858년 4월 23일 미국 오하이오주 델리웨어시에서 출생하였다.

1881년 오하이오 웨슬리안 대학에서 이학사 학위를 받고, 1883년 마이애미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이해 알렌은 미국 북장로회의 의료선교사 모집에 지원하여 의료시설이 부족한 아시아에서 의료 선교활동을 하기로 하고, 중국 상해로 갔다.

 

상해에 머무르고 있던 중 조선 세관에서 일하는 하스의 연락을 받고 의사와 의료시설이 부족했던 조선의 의료선교사로 자원하였으며,

1884년 9월 20일 개신교 선교사로는 처음으로 조선에 입국하였다. 

알렌은 조선에서 미국공사관의 의사로 임명되었고, 당시 서울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의 의사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

 

오른쪽(아래 두 번째)의 사진은 1882년 의과대학 시절의 알렌과 1890년대 중반의 알렌 부인인 Francis A. Messenge 사진이다.

 

 

 

<알렌의 생애와 사진>

 

 

 

<알렌 박사 유품, 105년만에 한국 왔다>

-2010년 3월 10일 수요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내용-

연세대 홍보대사인 문홍렬 HB그룹 회장이 1년 넘게 미국에서 찾은 것이라고 한다.

고종이 하사한 의복과 약 빻는 그릇, 책 등 10여점으로 4월 9일 제중원 125주년을 맞아 연대 세브란스병원에 기증했다고 한다.

 

사진 중앙 오른쪽의 책은 알렌 박사가 미국으로 돌아간 뒤 한국 재임시절 습득한 우리나라 역사와 풍습, 언어들을 기록한 책이고,

아래의 한복을 입은 한국인 사진은 알렌 박사가 직접 찍은 흥선대원군 사진이다.

 

 

<105년만에 돌아온 유품 중 하나 - 고종이 알렌 박사에게 내린 비단옷>

 

 

<연세대학교 연혁>

 

 

<서울역 앞 세브란스병원(1940년대) 모형도>

의과대학, 치과진료소, 구관병동, 기초의학교실, 식당, 작업장, 간호학교, 남대문교회, 에비슨동상,

신관병동, 검사실, 전염병동, 기숙사, 선교사, 에비슨홀 등이 있었다.

 

 

<현재의 연세대학교의료원(세브란스병원) 모형도>

 

 

<세브란스병원들>

왼쪽부터 강남세브란스, 용인세브란스, 세브란스정신건강병원이다.

 

 

<알렌의 외교관 생활>

1905년 일본의 야욕으로 일본 정부가 한국의 종주국이라는 합의(을사늑약)를 하려 할 때

알렌은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의 친일정책을 비판하며 일본 침략을 저지하는데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일본의 간교한 외교책으로 미국정부는 일본을 두둔하였고, 알렌 공사 홀로 분투하였으나 

결국 이 일로 해직되어 1905년 6월 9일 한국을 떠나게 되고 만다.

 

그는 탁월한 외교관이었고, 미국의 외교관이기 이전에 조선의 외교관이었다.

조선 정부로부터 벼슬을 받았고, 조선 왕실과 정부를 위하여 일하였다.

알렌은 조선의 정치, 경제, 외교, 그리고 문화에 이르기까지 해박한 지식을 가진 조선통으로서

조선의 독립과 자주권 확보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고, 고종황제는 1904년 알렌에게 '훈1등 태극대수장'을 수여함으로써 그의 업적을 치하했다.

 

중앙은 1904년 4월 9일 고종이 알렌에게 수여한 태극대수장,

왼쪽 아래의 사진은 1905년 4월 20일, 알렌 환송회에 참석한 각국 외교사절들, 오른쪽 아래는 훈장을 착용한 알렌 사진이다.

두 번째 사진은 훈장을 착용한 사진을 확대한 것이다.

 

 

 

<제중원의 설립과 알렌>

알렌은 1884년 12월 4일 발생한 갑신정변 와중에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매고 있던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을 치료하여 생명을 구했다.

이를 계기로 고종의 시의가 된 알렌은 병원설립안을 제출하여 서양식 진료뿐 아니라 조선의 젊은이들을 교육시켜 의사로 양성하고자 하였다.

 

알렌의 건의를 고종이 받아들여 1885년 4월 10일 재동(현재 헌법재판소)에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을 설립하게 되었다.

제중원은 조선정부와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가 동시에 책임을 맡고 있었는데 조선정부는 재정지원과 행정을, 

선교부는 의사와 간호사를 파견하고 진료와 병원 운영을 담당하였다.

1886년 3월 29일에는 제중원의학교를 열어 최초의 서양의학교육을 시작하였다.

 

사진은 고종과 민영익, 오른쪽 문건은 알렌의 병원설립안과 알렌의 진단서이다.

 

 

<자신의 목숨을 구한 알렌에게 민영익이 선물한 용문상아 단도>

 

 

<사람을 구하는 집, 제중원과 부녀과 설치>

제중원은 당시 직접적인 선교가 허락되지 않았던 조선에 전문인(의료) 선교로서 선교의 문을 열어주었으며,

알렌 이후 입국하는 초기 한국 선교사들에게 교파를 초월한 연합운동의 묘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제중원의 선교의사들이 부인들을 진료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루는 알렌이 어떤 부인의  집에 왕진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부인은 병세가 매우 가벼웠으나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자기 병을 고쳐달라고 스스로 찾아올 수가 없어 죽고 말았다.

조선의 오랜 관습을  범하는 것보다 차라리 죽음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자 북장로 선교부는 엘러스라는 유능한 여의사를 한국에 파견했다.

이로 인해 1886년 7월 4일 제중원에 부녀과가 설치됨으로써 여성 전문 진료를 시작했다.

사진 속의 여성은 제중원 최초 부인과 의사인 엘러스이다.

 

 

<알렌의 진단서, 검안경, 진료도구함>

왼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의학 진단서인 알렌의 진단서이다.

중앙은 1880년대 초의 알렌의 검안경, 오른쪽은 알렌의 진료도구함, 그 앞은 고주파 투열전기요법 치료기이다.

 

 

<제중원에서 세브란스로 변한 과정>

맨 위는 재동에 세워진 제중원, 맨 아래는 1885년의 제중원 모형이다.

중간은 제중원에서 세브란스로 변해가는 과정들이다.

 

 

 

 

<국가등록문화재 제447호, 제중원 1차년도 보고서>

 

 

<제중원에서 세브란스병원으로>

제중원은 세브란스(L. H. Severance)의 기부로 남대문 밖 복숭아골에 새롭게 병원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1902년 11월 27일 정초식을 거행하였으며, 이때 알렌이 축사를 했다.

1904년 9월 23일 새로 지은 제중원은 한국 최초의 현대식 병원인 세브란스병원으로 개원했다.

에비슨은 한국인을 빛으로 인도한다는 의미로 백내장 환자를 선택해, 1904년 10월 4일 세브란스병원에서 첫 수술을 집도했다. 

 

왼쪽의 문건들은 세브란스병원 정초식 초청장(1902)과 세브란스병원 봉헌식 초청장(1904), 초기 세브란스병원 기공식 연설문이다.

오른쪽 아래는 에비슨과 세브란스병원에서의 에비슨의 수술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