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큰누리 2022. 6. 24. 09:40

 

 

≪경복궁(景福宮)≫

조선왕조 개국 4년째인 1395년에 처음으로 세운 으뜸 궁궐이다.

'하늘이 내린 큰 복'이라는 뜻으로 경복궁(景福宮)이라 이름 지었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목멱산(지금의 남산)을 안산으로 삼아 풍수지리적인 터잡기에서도 한양의 중심을 차지했다.

정문인 광화문 남쪽으로 관청가인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를 조성하고, 

그 연장선 위에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등 주요한 궁궐건물들을 일렬로 놓아, 왕조국가인 조선의 상징 축으로 삼았다.

 

임진왜란으로 완전히 불타 없어진 후, 제2의 궁궐인 창덕궁을 재건하여 정궁으로 삼았지만, 경복궁은 재건을 미루어 270년 이상을 폐허로 남게 되었다. 

1867년에야 비로소 흥선대원군이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경복궁을 재건했다.

고대 중국의 예법을 조선 왕실의 전통이나 현실과 조화시켜, 전체적으로는 규칙적 배치를 따르면서 부분적인 변화와 파격을 가미했다.

재건된 경복궁은 691.921㎡의 광활한 대지에 약 500여동의 건물을 지어 하나의 작은 도시를 이루었다.

중심부에 정무공간을 두고, 좌우 뒤편으로 왕족의 생활공간, 그리고 곳곳에 정원시설들을 배열했다.

 

일제 강점기에 대부분의 건물들이 철거되어 중심부의 일부 건물들만 남았고,

광화문을 비롯한 일부 외전을 헐어내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어 궁궐의 정면을 막기도 했다.

1990년부터 복원사업이 꾸준히 진행되어, 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원래의 흥례문과 행각을 복원했고, 

왕과 왕비의 침전 및 왕세자가 기거한 동궁을 비롯하여 궁궐의 정문인 광화문도 다시 복원하여 경복궁의 원래 모습을 회복 중이다.

-현지 안내문-

 

 

<경복궁 배치도>

오른쪽의 큰 사진을 기준으로 번호를 따라가자면... 

1. 근정전- 2. 수정전- 3. 경회루- 4. 사정전- 5, 강녕전- 6. 교태전- 7. 동궁-

8. 소주방- 9. 자경전- 10. 향원정과 건청궁- 11. 집옥재- 12. 태원전

 

 

<안쪽에서 본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光化門)>

광화문(光化門)은 경복궁 남쪽에 있는 정문이다.

1395년에 세워졌으며, 2층 누각인 광화문 앞 양쪽에는 해치 조각상이 자리하고 있다.

광화문 아래 석축부에는 3개의 홍예문이 있는데 중앙문은 왕, 왼쪽(서쪽)은 무신, 오른쪽(동쪽)은 문신의 출입문이었다. 

 

사진 왼쪽의 매표소에서 매표를 한 후 광화문을 보고, 되돌아서 경복궁 탐색 시작!

 

 

<광화문(光化門)쪽에서 본 경복궁과 흥례문(興禮門)>

 

 

<협생문(協生門)과 용성문(用成門)>

광화문과 흥례문 사이의 좌, 우에 있는 문으로 윗사진은 東門인 협생문, 아래 사진은 西門인 용성문이다. 

 

 

 

<경복궁 흥례문(興禮門)>

 

 

 

<경복궁 금천교와 괴수 석상>

 

 

 

<근정전의 근정문(勤政門)>

 

 

<경복궁 근정문(勤政門) 앞 서쪽문인 유화문(維和門)>

동쪽에도 원래 문이 있었음직한데 현재 문이 따로 없다.

 

 

<경복궁 근정문 아래 어도(御道)>

 

 

<근정문(勤政門) 안쪽과 바깥의 흥례문>

흥례문 아래층(!) 중앙 너머를 자세히 보면 광화문의 둥근 출입문(홍예문) 3개가 보인다.

 

 

<경복궁 근정전과 품계석>

사진 왼쪽은 사람들에 가려 잘 안 보이지만 오른쪽 품계석은 제대로 보인다.

왼쪽(서쪽)은 무관, 오른쪽(동쪽)은 문관들의 정일품부터 종9품까지 벼슬에 따른 자리이다.

조선은 벼슬을 문반과 무반으로 크게 나뉘었기 때문에 '양반(사회)'이라고 부른다.

 

 

<경복궁 근정전(勤政殿) 박석과 동회랑>

경복궁 근정전의 박석은 물이 잘 빠지게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중국의 자금성 박석은 황제의 암살을 막기 위해 소리가 나도록 고안되었다고 들은 것 같다.

 

 

 

<근정전(勤政殿) 남쪽, 서쪽 회랑과 인왕산>

 

 

<경복궁 근정전(勤政殿) 월대와 석조>

 

 

<경복궁 근정전(勤政殿)의 어도>

 

 

<경복궁 근정전(勤政殿) 월대의 석상>

월대의 석상들은 대체로 아기자기한 편인데 단발머리 같은 갈기를 한 이 말 석상이 가장 귀엽다!

 

 

<경복궁 근정전(勤政殿)의 드무>

한 번 불이 나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목조건물들이기 때문에 소방용 물이라기보다

불을 누르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클 듯...

 

 

<근정전(勤政殿)에서 내려다 본 품계석과 근정문>

 

 

<경복궁 근정전(勤政殿)의 어좌와 일월오악도(일월오봉도)>

근정전은 왕의 즉위식, 혼례 등 국가적인 큰 행사를 진행하던 곳이다.

 

 

<경복궁 근정전(勤政殿) 어좌 위의 황금색 용조각과 발가락 갯수>

용의 발톱(발가락) 갯수로 왕과 황제를 구별한다고 들었는데...

이곳의 용은 발가락이 7개이다. 

황제는 7개, 왕은 5개, 세자는 3개라고 들은 기억이 있다.

 

 

 

<경복궁 사정문(思政門)과 사정전(思政殿)>

 

 

<경복궁 思政殿(사정전)과 내부>

사정전은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더불어 일상 업무를 보던 곳으로,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가정책 토론 등 각종 회의가 매일같이 열렸다.

1867년에 다시 지어진 사정전은 공식 업무공간으로 마루만 깔려 있지만,

좌우의 만춘전(萬春殿)과 천추전(千秋殿)은 비공식 업무공간으로서 온돌방을 두어 왕과 신하들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사정전 앞의 행각에 천지현황(天地玄黃) 등 천자문 순서로 이름을 붙인 창고가 있는데 이곳에는 왕실의 물품을 저장하였다.

만춘전(萬春殿)과 천추전(千秋殿)은 사정전 좌우(동서쪽)에 정확하게 대칭으로 자리하고 있다.

 

 

 

<경복궁 사정전(思政殿)의 앙부일구>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복제품-

앙부일구는 세종 16년(1434)에 처음 만들어진 천문의기로서 해시계의 일종이다.

시계판이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되었다.

 

청동으로 된 오목한 시계판에 세로선 7줄과 가로선 13줄을 그었는데 세로선은 시각선이고 가로선은 계절선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면서 생기는 그림자가 시각선에 비추어 시간을 알 수 있다.

또 절기마다 태양의 고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계절선에 나타나는 그림자 길이를 보고 24절기를 알 수 있다.

13개의 선 가운데 한 가운데가 춘·추분선이고, 맨 위의 선이 동지선, 맨 아래의 선이 하지선이다.

 

세종 당시에 제작된 것은 현재 남아있지 않으며 현존하는 앙부일구는 대부분 조선 후기에 제작되었다.

여기 전시된 앙부일구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을 본떠 제작되었다. 

-현지 안내문-

 

 

<사정전 동쪽의 만춘전(萬春전)과 내부(밖에서 본 동쪽 방)>

 

 

 

<경복궁 사정전(思政殿) 뒷쪽>

오른쪽 건물은 사정전 뒤쪽에 있는 왕의 처소인 강녕전이다.

 

 

<왕의 처소인 강녕전(康寧殿)>

 

 

<강녕전(康寧殿)에서 본 사정전(思政殿)>

 

 

<왕의 침전(처소)인 강녕전(康寧殿)과 동쪽의 연생전(延生殿)>

왕의 침소인 강녕전의 동쪽에는 연생전(延生殿), 서쪽에는 경성전(慶成殿)이 있다.

 

 

<경복궁 강녕전(康寧殿)의 동쪽방>

 

 

<2015. 7/18에 촬영한 강녕전의 좌우 방>

2015년 7월 18일, 당시 경복궁해설사님을 따라 경복궁 전체 답사를 했다.

일반적으로 나홀로테마여행 카페에서 고궁 답사를 하면 해설사 없이 답사를 하는데 특이하게 해설사님을 모셨다.

모처럼 옛날 사진을 뒤지다 이 답사 사진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당시에 특이하게(!) 이 답사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았다.

어쨌거나 강녕전 마루에 올라 동쪽과 서쪽 방 모두를 촬영했는데 당시엔 지금과 달리 마루에 올라갈 수 있었다. 

 

앞사진은 강녕전 마루에서 본 동쪽 방, 아래 사진은 서쪽 방이다.

동쪽 방은 붉은 평상 위의 침대 같은 구조였고, 서쪽 방은 보료 앞에 놓인 수라상이었다.

 

 

 

<강녕전(康寧殿) 서쪽에 있는 겸비당(廉秘堂) 앞의 우물>

처마가 보이는 오른쪽 건물이 강녕전 서쪽 뒤에 있는 겸비당(廉秘堂), 중앙의 건물은 흠경각(欽敬閣)이다.

 

 

≪흠경각(欽敬閣)과 함원전(含元殿)≫

흠경각과 (맞은편의) 함원전은 농본사회를 운영하는 왕의 역할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건물이다.

농업 위주의 전통사회에서 시간과 천체의 운행에 맞추어 정치를 하기 위해 천체기구들을 왕실에 가까이 두었다.

세종은 옥루기륜(玉漏機輪), 앙부일구 등의 시계와 간의를 만들어 흠경각 일원에 설치하였다.

경회루 남쪽에 있던 보루각, 궁성 서북쪽의 간의대 등도 흠경각과 관련된다.

이와 달리 함원전은 불교 행사가 자주 열렸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이채롭다.

현재의 건물들은 1995년에 복원되었다.

 

 

<교태전 서쪽의 흠경각(欽敬閣)과 출입문>

강녕전 서쪽 전각인 경성전과 흠경각이 연결이 되어 강녕전쪽에서 들어갔지만 흠경각은 정확히 왕비 침소인 교태전 서쪽에 있다.

흠경각 뒤에 함원전이 남북으로 나란히 위치하는데 교태전쪽에서 보면 서쪽에 흠경각과 함원전이 마주보고 있는 배치이다.

따라서 사진상에서 흠경각 오른쪽에 왕비 침소인 교태전이 있다.

 

 

<강녕전(康寧殿)과 경성전(慶成殿)의 잡상(어처구니)>

왕의 침소인 강녕전에는 잡상(어처구니)이 7개, 그 오른쪽(서쪽) 전각인 경성전에는 5개의 잡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