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솔로를 아느냐 - 노처녀 딸과 아버지의 공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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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14.

 

 

 

 

 

 

 

[이주윤 작가의 "너희가 솔로를 아느냐"]
 

 

노처녀 딸과 아버지의 공생법

 

노처녀 기준이 몇 살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아빠 기준에 따르면 나는 노처녀 중 노처녀다. 어렸을 적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다. 여자는 서른 넘으면 '쭈그렁방탱이'라고, 맞선도 재취 자리밖에 안 들어온다고, 그러니 똥값 되기 전에 웬만한 놈 만나 얼른 시집이나 가라고 말이다. 아빠의 협박을 이기지 못한 언니들은 서른이 채 되기도 전에 줄줄이 시집을 갔고 이제는 막내인 나 하나만 남았다. 아빠는 내가 괜한 고집을 부리며 결혼하지 않는 거라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라고 왜 남들처럼 살고 싶지 않겠는가. 다만, 내가 결혼하고 싶어 했던 몇몇 남자가 나와 결혼하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셋째 딸은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더니 다 뻥이었어!

아빠는 이런 속사정도 모르면서 하소연을 늘어놓기에 바쁘다. "아부지 나이가 낼모레면 일흔이여. 이제는 예전처럼 뭐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어. 세상만사 다 귀찮은 거를 니가 알 턱이 없지. 머리털 허옇게 센 거 봐라. 이러다가 끽하면 죽는 거여. 그러니까 아부지가 쪼끔이라도 기운 남았을 때 니가 시집을 가야지 않겠냐." 아빠의 표정이 더없이 쓸쓸하기만 하다. 그러면 나는 못 이기는 척 말이라도 알았어, 하면 될 것을 "아빠가 일흔인 것보다 큰언니가 마흔인 게 더 놀랍다, 뭐" 하는 고약한 대꾸로 아빠의 화를 돋우고야 만다. 그 뒤로 따라오는 말들은 일일이 늘어놓지 않아도 모두가 알 것이다. 너도 결혼해서 꼭 너 같은 자식 낳아봐라로 시작해서 네가 부모 마음을 알기나 알어!로 끝나는 유치하지만 서글픈 잔소리.

이렇게 한바탕 치고받은 날이면 생각에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아빠는 유통기한 삼십 년짜리 딸을 뭐하러 낳았을까. 귀한 딸내미한테 쭈그렁이니 똥값이니 하는 험한 말을 하고 싶을까.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에게 나를 보내버리려고 그렇게 애써 키웠을까. 서른이 넘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함께해야 할 사람을 갑자기 데려오라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일까. 결혼은 곧 행복이라는 이상한 공식은 누가 만들어냈을까. 서둘러 결혼했다가 이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때는 누구 탓을 하려고 이러는 것일까. 나는 당신의 인생 과업을 이루기 위한 희생양일 뿐일까. 아빠가 밉다. 아빠 마음은 그게 아님을 알면서도 마냥 밉다. 아줌마 같은 얼굴을 하고서 사춘기 소녀처럼 구는 내가 더 밉다. 싫다.

 


각자의 이유로 심통이 난 부녀는 종일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그만하고 밥들 먹어." 엄마의 부르심에 그제야 식탁에 모여 앉았지만 한마디 말이 없다. 우적우적 밥을 씹어 삼키다가 반찬 위를 분주하게 오가는 아빠 손에 시선이 머문다. 그 퉁퉁했던 손등이 몰라보게 얄팍해져 젓가락질할 때마다 움찔거리는 핏줄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드문드문 검버섯까지 피어올랐다. 그런 아빠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려는 찰나 "이년아, 그래서 너는 시집을 가겠다는 거여 말겠다는 거여!" 서릿발 같은 잔소리가 또다시 시작된다. 늙어서 기운 없다는 양반이 어쩌면 저렇게도 목소리가 우렁찬지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어쨌거나 아빠 논리대로라면 아빠는 노인네고 나는 노처녀다. 우리 함께 '쭈그렁방탱이'가 되어가는 마당에 그만 좀 닦달하고 서로 의지해가며 살아가면 안 될까? 으응, 아부지

출처 : (조선일보)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13/20170113016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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