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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립 2016. 10. 15.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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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ckin' on Heaven’s Door 

 

 

 

Mama, take this badge off of me.

엄마, 이 뱃지를 떼어주세요.
I can`t use it anymore.
난 더이상 이걸 사용할수 없어요.

 


It`s gettin` dark, too dark to see.
이젠 앞을 볼수도 없어요.
I feel I`m knockin` on Heaven`s door.
마치,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두드려요. 천국의 문을...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두드려요. 천국의 문을...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두드려요. 천국의 문을...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두드려요. 천국의 문을...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Mama, put my guns in the ground.
엄마, 내 총들을 땅에 내려주세요.
I can`t shoot them anymore.
이젠 더이상 쏠수도 없어요.

 

That long black cloud is comin` down.
넒게 퍼져가는 검은 구름이 다가오고 있어요.
I feel I`m knockin` on Heaven`s door.
마치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것 같이...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두드려요. 천국의 문을...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두드려요. 천국의 문을...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두드려요. 천국의 문을...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두드려요. 천국의 문을...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두드려요. 천국의 문을...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두드려요. 천국의 문을...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두드려요. 천국의 문을...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두드려요. 천국의 문을...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Bob Dylan은 1941년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태어났으며, 작곡가겸 가수이자, 작가이며 시인이기도 하다.

50여년간 노래를 불러온 미국의 간판스타이다.


그는 2006년, 65세의 고령에 "Modern Times"라는 앨범을 출판해서 앨범챠트 1위를 했다.

딜런은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영향력있는 인물 중의 한사람으로 선정되었으며, 2004년 Rolling Stone 잡지가 선정하는 100대 음악가에서 비틀즈 다음으로 2위에 올랐던 인물이다.

한편 노벨 문학상에도 여러번 지명을 받았다고 한다.

 

 

 

 

 

1960년대이념의 대립, 우린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정치이론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상대를 무작정

미워만 했던 시절,
우리도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이지만 미국도 그랬다.
젊은 청년 밥딜런은 하모니카와 통기타로 자유와 평화를,,그리고진정한 인간애를 외쳤다.

그리고 30년이 지나고,,,냉전은 끝이 났다, 소련이 무너지고, 동서가 화해를 하고,중공이 중국으로 바뀌고,그 뒤로

20년이 조금 안된 지금,지구상에 더이상은 좌익도 우익도 없다,

그런데 왜 이땅에만 존재를 하는지, 우리 모두는 공산주의가 실패한 체제라는 걸 너무나 잘 아는데,북한과 화해와 악수를 주장할 때, 민중을 위한 촛불을 들때,친일파를 엄단하여 역사를 바로 잡자고 할때, 그들은 우리를 좌경분자, 빨갱이라고 부른다.
아직도 이땅에서는 레드의 지난 의미를 거두고 싶지 않은가 보다...

 

 


 

 

낡은 청바지에 부시시한 머리 스타일, 기타와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모습은 포크 가수의 전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었고, 그의 저음의 탁한 목소리에서 나오는 진솔한 내면의 이야기들은 시대와 세대를 떠나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의 노래에 담겨있는 정치적인 메세지로 인해 그는 혼란스러웠던 60년대 시대의 양심이 되었고, 그가 직접 작사한

 시적인 가사들은 연구의 대상이 되어 혹자들에게 노벨 문학상 후보로까지 올려지게 되었다.

밥 딜런은 전통적인 포크음악을 록음악과 접목시켜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으로 발전시켰고, 비틀즈와 더블어

록 음악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오늘날까지 추앙받고 있다.

 

 

 

 

 

Bob Dylan

하모니카와 통기타를 둘러 멘 Bob Dylan(1941,4.1생) 이라는 서민적이고 친근한 아저씨에 의해 포크록은 세계

대중가요라는 메인스트림에서 당당한 한 가지를 곧추 세우며 그 빛을 발한다.
밥을 떠올릴 때 가장 흔히 회자되는 그의 수식어는 아마도 “노래하는 음유시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초창기 포크계의 선각자 Woody Guthrie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하여 지는 밥은 정형화된 기존의 틀을 벗어버리고

기존 포크계의 한계를 절감하며 제한적이던 행동의 반경에 자유의 나래를 펴게 된다.

록음악사에 밥이 끼친 영향은 너무도 막중하였는데 그 하나는 가창력이 뛰어나지 못하면서도(?) 훌륭한 아티스트로서

 노래 부를 수 있으며 성공할 수 있다는 전형을 세우고 보여주었다.


감히 누가 상상이나 하였으며 도전이나 하였던가? 그저 싱어라면 노래를 잘 해야 된다는 교과서적 인식속에 그 어느

누구 하나 파격을 하지 못하였던 시절, 그렇다고 요즘같이 뛰어난 믹싱설비에 이리저리 짜 맞추어 립싱크를 하지도

않았다.


그저 일상의 여과하지 않은 털프(?)한 걸걸한 목소리로 팬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서는 것이다.
록 기타리스트의 영웅 지미 헨드릭스가 나중에 보컬까지 겸하게 된 것도 이런 밥의 자신감과 영향에 힘입었다 한다. 

또 하나는 기존 통기타를 중심으로 한 어쿠스틱 연주의 질서에서 벗어나 과감히 전자적인 사운드를 시대적 조류와

요청으로서 인정하고 받아들인 데 있다.

 

흔히 한 분야의 거장이 되어감에 따라 갖게 되는 권위의식과 아집이 스스로를 구속하게 마련인데 딜런은 이러한

 자기구속을 깨뜨리며 먼저 남을 인정하였다.

선의의 경쟁을 벌이던 록적인 사운드를 인정하니 결과적으로 포크를 반열에 올리고 더욱 빛낼 수 있었다.

요즘 흔히 말하는 win-win 전략의 혜안이라도 갖았던 것일까?

이러한 혁신적인 사고와 행동은 거의 비슷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비틀즈와 적지 않은 음악적 교류를(서로의 음악에

 영향을 주고받는..) 하게 되는 데비틀즈가 변방에 머물러 있던 록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렸다 하면 밥은 이에 영혼과
영감을 불어 넣었다 하는 평가에서도 잘 엿볼 수 있다.

록이라는 대중음악의 거대한 뿌리와 메인스트림을 더욱 풍성하고 여유있게 살찌운 그의 음악과 삶을 관조하는 가사는

 62년 데뷔 이래 40년이 되어가는 아직도 그 신화가 진행중이니 그저 경외로울 따름이다.

(Knocking on heaven's door), (Mr. Tambourine Man), (Blowin' In The Wind),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Like A Rolling Stone), (Lay Lady Lay) 등 엄청난 그의 힛트곡은 포크록의 고전으로서 동료나

후배 아티스트, 심지어 국내 가수들에게 마저 부지기수로 리메이크되기도 한다.

 

 

 

 

 



 

 

 

밥 딜런의 발자취는 거대하다.

그 이름은 마치 선대의 성인(聖人)처럼 하나의 위엄으로 우리를 억누른다. 딜런과 그의 음악을 피해 가는 것은

'록 역사에 대한 접근'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를 아는 것은 납세와 같은 신성한 의무에 다름 아니다.

미국의 음악계와 학계에서 '딜런 읽기'는 실제로 교양필수 과정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는 록의 40년 역사에서
Elvis Presley, The Beatles 그리고 Rolling Stones와 함께 최정상의 위치를 점한다.

그러나 이들 '전설의 빅 4' 가운데에서도 딜런이 남긴 궤적은 차별화 아닌 특화(特化)되어 역사를 장식한다.

 

 

 

 

 

 

 

 

 

미국의 현대 음악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그의 음악몸체가 곧 시대와 세대의 흐름을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딜런의 음악이 변화하는 과정과 그것을 있게 한배경, 그것을 주도해간 자세는 '음악외적 환경'과 긴밀한 관계가 잇다.
먼저 포크 록(Folk-Rock)이다. 그가 1960년대 초반 저항적인 모던 포크로 베이비 붐 세대를 견인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통기타만으로 연주되는 단순한 구조이지만 그것의 포획력은 비틀스가 사정권에 들어올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비틀스가 베이비 붐 세대를 발현시켰다면 그는 그들의 의식화를 유도했다.

 

 

 

 



 

밥 딜런은 또 포크 음악과 록을 결합한 음악 스타일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혁명가로도 평가받고 있다.
비틀스와 함께 1960~70년대 전세게 젊은 세대의 상징이었던 인물이다.
칼칼한 콧소리가 잔뜩섞인 독특한 음색과 시적이며 철학적인 가사로 베트남전을 직간접적으로 겪던 1960년대 세계

젊은이들에게 평화와 반전의식을 심은 사람이기도 하다.

밥 딜런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2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1988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2000년에는 폴라음악상을 받았다.

또 미국의 음악잡지 롤링 스톤이 선정한 역대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2위(1위는 비틀스)에 오른 바 있다.

 

세계 대중음악사의 전설이 된 밥 딜런, 그의 노래 속 진솔한 메세지는 시대와 세대를 떠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60-70년대 시대의 양심이 되었고 시적인 가사는 지금도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밥 딜런은 'Blowin' In The Wind' 'Knockin' on Heavens Door', 'Like A Rolling Stone', ' one More Cup Of

 Coffee' 등 한 세기를 대표 하는 주옥 같은 곡들의 주인공이며, 그래미 평생 공로상, 노벨 문학상의 후보로도 올랐던
음유시인이면서. '포크의 전설' 이기도 .


한국인이 사랑하는 주옥 같은 노래의 주인공이자 TIME지가 선택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높은 인물 밥 딜런,
그래미 평생 공로상, 노벨 문학상 후보에 빛나는 밥 딜런(BOB DYLAN)이 데뷔 48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왔다.
역사적인 2010년 3월31일 밥 딜런이 내한공연을 했다.


 

 

 

 

 

 

밥 딜런 (Bob Dylan, 1941년 5월 24일 ~ )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시인, 화가이 며. 50년동안 많은 유명한

 음악들을 만들었다.

1960년 부터 그가 비공식 작자와 미국 불온의 반대 대표가 됐을 때 그의 작품이 빛을 받았다.

〈Blowin'' in the Wind〉와 〈The Times They Are a-Changin〉같은 그의 노래들은 사회상을 잘 보여주는

저항적 노랫말로 공민권을 대표하는 곡이 되었으며 베트남 전쟁에 대한 저항의 표상이 되었다.

 

그는 10살 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고, 1959년 미네소타 대학교에 입학했다.

1982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198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2000년에 폴라음악상을 수상하였다.

 

2009년 4월 28일 딜런은 그의 33번째 스튜디오 앨범 《Together Through Life》을 발매하였다. 이 앨범은 빌보드

 차트와 ''가장 많이 팔린 200개의 앨범'' 차트에 모두 1위로 올랐으며, UK앨범 차트에는 발매된지 1주만에 올랐다.

 

 

 

 

1941년 미국의 미네소타에서 출생한 그는 1962년에 데뷰앨범을 발표하였다.

이후 지금까지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그는수없이 많은 히트 앨범과 히트곡을 발표한 대형가수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의이름은 익숙하지만 그의 노래는, "Blowin' In The Wind"외에는 거의 알려져있지 않다.

 

그를 일컬어 "음유시인"이라 하고 "저항가수"라 하지만, 정작 그가 무엇을 이야기했고 무엇에저항하려 했는지도 잘 알려져있지 않다.

1962년의 데뷰앨범 <Bob Dylan>이후 1966년의 7집 <Blonde on Blonde>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저항의 메시지를 노래에 담아 불러왔던 밥 딜런.

가수란 감미롭고 달콤한 목소리로 사랑타령을 읊어대기만 하는 이가 아니라, 자신의 언어로세상의 부조리에 저항하고

 삶의 고난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는것을 그는 직접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러던 그는 1966년 7월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계기로 칩거에 들어갔고, 우드스탁에 있는 집에서

음악만들기에 전념하게 된다.

 

 













 

 

 

 

 

 

 

 

 

 

 


 

 

 

 

출처 :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글쓴이 : 도토리 깍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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