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넓은 집

(연이의 그림일기)

심청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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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리고 영화

2007. 5. 18.

 

★ 맹인잔치

 

  이때 심 왕비는 여러날 동안 맹인 잔치를 열면서 그날그날 맹인 명단을 들여다 놓고

아무리 보아도 심씨 성을 가진 맹인이 없어 혼자 탄식하였다.

 

'잔치를 연 까닭은 아버님을 뵙자는 것인데 어찌하여 못 오시는가.  내가 인당수에 빠져

죽은줄로만 아시고 애통하여 돌아가셨는가? 아니면 몽운사 부처님이 영험하여 그 사이에

눈을 뜨셨는가? 오늘 잔치가 마지막인데 어찌하면 만나 뵐까...'

 

왕비가 몸소 나가 뒷동산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맹인 잔치를 구경 하는데 풍악도 좋고

음식도 풍성 하였다.  그 날 잔치가 다 끝나갈 즈음 왕비는 맹인 명단을 들여 오라고 하여

한 사람씩 불러 옷 한 벌씩을내어 주었다.  맹인들이 모두 감사를 표하고 물러나는데 명단에

들지 못한 맹인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왕비가 이상하게 여겨 상궁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구신가요?"

 

심 봉사는 상궁이 다가와 그 까닭을 묻자 덜컥 겁이 났다.

"저는 집이 없이 떠돌아다니는 처지라 어느 고을에 산다고 할 수가 없어서 명단에 들지

못하고 여기까지 제 발로 찾아왔습니다."

 

왕비가 반가워하면서 가까이 들라 하니 상궁이 심봉사의 손을 이끌고 들어왔다.

심 봉사는 무슨 영문인 줄도 모르고 더듬거리는 걸음으로 들어가 벌벌 떨며 계단 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섰다.

 

왕비가 자세히 보니 심 봉사의 얼굴은 몰라볼 만큼 변해 있었다.  얼굴 생김은 아버지가

분명한 것 같은데 머리는 허옇게 세고 눈가며 이마며 볼에 주름이 가득하였다.  왕비는

놀라고 다급한 마음에도 분명하게 알아보느라고 초라하기 이를데 없이 서서 벌벌 떠는

심 봉사에게 물었다.

"처자는 있으신가요?"

 

그 말을 듣자마자 간이 덜컥 내려앉은 심 봉사는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여쭈었다.

"여러 해 전에 아내를 잃고 어린 딸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눈을 띄운다고 쌀

삼백 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에 제물로 빠져 죽었습니다.  눈도 뜨지 못하고 자식만 잃었

사오니 자식을 팔아먹은 큰 죄인을 죽여 주소서."

 

왕비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물을 흘리며 버선발로 우루루루루 뛰어나와 아버지를

덥석 끌어안았다.

 

"애고 아버지!"

한 번 불러 보고는 인당수에 죽으러 갈 때처럼 말문이 막혀 더 말을 잇지 못한다.

 

심 봉사는 느닷없이 아버지라는 말을 듣자 상대가 황후인지 궁녀인지 구경하던 사람인지를

모르는지라 먼눈만 희번덕거렸다.

"아버지라니! 누가 날더러 아버지래? 나는 아들도 없고 딸도 없소.  무남독녀 외딸 하나

물에 빠져 죽은지가 벌써 삼 년이오.  누가 날더러 아버지라 하는 것이오?"

 

"애고 아버지! 아직도 눈을 못 뜨셨소?  제가 바로 인당수에 빠져죽은 청이어요. 

아버지, 제발 눈을 떠서 아버지 앞에 있는 청이를 보소서."

 

심 봉사는 깜짝 놀라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게 웬 말이냐?  우리 청이가 살았다니,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죽은 우리 청이가 살아

오다니! 어디 내 딸 얼굴 좀 보자!"

 

왕비는 어쩔줄 몰라 이리 두리번 저리 두리번하는 아버지를 보고 더욱 슬피 울며 매달렸다.

"애고 아버지! 제 효성이 부족하여 제 몸은 살아나고 아버지는 눈을 못 떴으니, 제가 다시

죽어서 옥황상제께 호소하여 아버지 눈을 띄우리다.  아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