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넓은 집

(연이의 그림일기)

모과나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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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야기

2008. 11. 3.

 

모과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향기로운 열매를 약제로 쓰는 약용과수였다.

열매를 목과,명려,명사 등으로 부르며 과일 중에서 가장 못생긴 편이어서 흔히 못생긴 사람을 가리켜 '모과같이 생겼다'고 비유한다.

모과나무가 우리나라에서 과수로 가꾸어진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조 허균이 쓴 도문대작에 다른 과일들과 함께 모과는

예천에서 가장 맛있고 배같이 즙이 많은 것이 생산된다고 주산지까지 기록하고 있다.

 

모과나무는 재질이 붉고 치밀하며 광택이 있어 아름다울 뿐 아니라 단단하면서도 공작이 쉬운 우수한 용재로 높이 평가되어

화류목.화려목,화리목 등으로도 불렸다.  또한 모과나무의 용재는 자단과 동일하게 다루어 고급 가구재로 쓰였으며 모과나무로

만든 장농을 화류장이라 하여 자단,화류 등으로 만든 진품 화류장의 모조품으로 화류장 구실을 했다(자단은 열대산이었으므로

귀한 물건이었던 만큼 그럴 법한 일로 여겨진다).  화류는 주로 고급가구로서 사방탁자,문갑 등도 만들었으며 오늘날에는 드물게

보는 귀중한 이조 민속목기에 속한다.   

 

모과나무가 즐겨 가꾸어진 참뜻이 약용수였던 용재였던 간에 그 역사가 오랜 것은 남아 있는 노거수로 미루어 알 수 있다.

모과나무는 정자목으로 훌륭하다.  꽃은 분홍색으로 아름답고, 줄기는 비늘 모양으로 벗겨져 무늬가 있으면서도 매끄럽고,

과일은 노랗게 익으면 가지가 휘어 늘어지고 향기가 진동하니 가히 즐겨심는 수예에 속했을 것이다. 

 

모과는 과일이면서도 과육이 석세포로 되어 있어 생식을 할 수 없어 과일대접을 못 받고 천대받지만 향기만은 비길 데 없이

사랑받아 화초 못지 않게 풍류를 즐기는 선비의 문갑 위에 한자리 차지하고 모과다움을 과시했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슬기롭게 모과를 과일로 이용한 민속식의 개발에 힘썼음을 엿볼 수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모과속이라 하여 모과의 껍질을 벗기고 푹 삶아 으깨어 받쳐 꿀과 물을 친 다음 되직하게 조린 모과정과도

있었고,  모과를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찹쌀 뜨물에 죽을 쑤어서 생강즙을 탄 모과죽도 만들었으며,  모과편이라 하여 모과를

푹 쪄서 껍질을 벗기고 속을 뺀 다음 가루로 만들어 녹두가루를 섞고 꿀을 쳐서 끓여 만든 별미나는 모과떡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다만 모과차와 모과술만이 전수되어 애용되는 민속식일 뿐이다.

 

또한 모과는 약재로 기침,감기,천식,목 쉰데,토사,곽난,각기 등에 민간약(민속약)으로 쓰였다.

 

                     

                                                                                                                                    『한국민속식물』 가운데...

 

 

 

 

    

                                                                                                    모과꽃

 

 

 

 

내장산 원적암 인근에는 수령 300년의 모과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이 모과나무는 워낙 나이가 많으시다보니 군데군데 홈이 파여 있는데

파여진 홈에 어느날 내장산의 명물 단풍나무 씨앗 하나 날아와 둥지를 틀었다.

 

가을이 되니 할아버지 모과나무는 무겁다며 잎도 열매도 훌훌 벗어던지는데

곁방살이를 하는 단풍나무는 곱게 단풍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