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넓은 집

(연이의 그림일기)

절정

댓글 9

산과들

2014. 11. 9.

 

'토요일, 종일 흐림

일요일, 전국이 맑음..'

주말 일기예보다

토요일에 가려고 계획했던 선운사(막판까지 경쟁이 치열했던 내장사는 거리,교통,시간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는 인파가 겁이나 포기) 단풍출사를 일요일로 미루고 토요일엔 친정엄마한테 가서

김장때까지 먹을 김치를 담그고 대봉시와 단감을 몽땅 따와서 주변 지인들에게 선심을 썼다^^

 

일요일 새벽..

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가슴이 시원해진다

은은하게 밝아오는 여명을 이고 집을 나선다

 

 

 

 

 

 

집에서 터미널까지 시내버스로 30분,

익산에서 흥덕까지 직행버스로 45분 걸렸는데 흥덕에서 선운사까지 가는 농어촌버스를 기다리는 텀이 무려 35분, 너무 길다

홀로 타기엔 다소 부담스럽지만 기.꺼.이 택시를 타고 선운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8시 25분..

택시요금을 계산하는 동안 관광버스 두 대에서 어마무시한 사진 장비들을 둘러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흠.. 택시까지 타고 왔는데 타이밍이 안좋군..'

 

매표소에서 5분만 걸으면 도착하는 선운사앞 도솔천에 이르렀을때는 이미 사진동호회일 것으로 보이는

관광버스 두 대에서 내린 아마추어 찍사들이 계곡을 따라 일렬종대로 쭉 늘어서 대포를 장전한 상태였다

모양도 다양한 대포 사이사이로 내 조그만 핑크빛 카메라를 절대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들이대는 찰나,

갑자기 하얀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물안개가 피어오르자 저마다의 대포에서 불빛이 번뜩이는건 말해 무엇하랴

 

오 이런..

물안개가 피어오르면서 매캐하고 역한 냄새가 풍겨온다

그러니까 이제 막 작은 산을 넘어온 아침햇살이 도솔천에 이르렀을때 느닷없이 피어오른 물안개는

저들이 사진을 위해 연막소독기로 뿌려댄 살충제였던 것이다

뿌려댄 양이 어찌나 많던지 그 냄새가 정말 역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온다

두통유발자들(이라 쓰고 미친것들이라 읽는다)..

20년 가까이 두통으로 고생을 하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중에 하나가 두통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집에와서 사진을 보니 정말 감쪽같다

그야말로 이른 아침 가을안개속을 뚫고 들어온 햇살과 붉은 단풍잎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단체 행동을 싫어하는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있었더라면 안개를 연출한답시고 연막소독기를 틀어대는

행위에 대해서 옳지 않다는 생각을 과.연 했을까 싶다

산속에 들면 숲을 볼 수 없듯이 한 발 뒤로 물러나 있을때면 보이는 것들이

한 발 앞으로 들여 놓기만하면 함께 묻어가는 동조의식에 금세 물들어버리고 말테니까..

 

산행을 하다보면 아직도 국립공원에서 취사를 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산에서 라면을 끓여 먹을 정도의 의식이라면 그들은 분명 먹다 남은 라면국물을 산에 쏟을것이다

과일껍질을 산짐승들의 먹이라며 무심코 던져버리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다

하지만, 사람이 먹지 않는 농약이 묻은 과일껍질이 과연 산친구들에게 온전한 먹이라고 볼 수 있는가..

나하나쯤이야 하는 마음들이 모이고 모이다보면 과거에 노고단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사람이 아닌 이땅의 모든 국립공원들이 기나긴 치유의 시간을 가져야 할지도..^^

 

 

 

 

 

 

 

 

 

 

 

 

      

 

 

연막을 벗어난 이후로는 정말 눈을 어디에 둘지 모를정도로 너무 좋았다

비록 날씨가 변덕을 부리는 바람에 빛이 숨바꼭질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정말 좋았다

 

 

이곳의 단풍은 사진으로는 구분이 안되지만 눈으로 보았을때의 빨강이 너무나 맑고도 예뻤다

 

 

 

 

도솔암마애불을 뵈오러 다녀오는 두 시간동안 스치는 바람에도 우수수 떨어진 낙엽은 도솔천에 별이불을 깔아 놓았다네

 

 

 

2014.11.9(일)

고창 선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