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넓은 집

(연이의 그림일기)

만추의 불일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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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들

2014. 11. 16.

 

◎ 갈등

금요일 오후,

우연군에게서 집에 내려오겠다는 전화가 왔다

고요하던 가슴에 파문이 인다

이 가을이 끝나기 전에 지리산에 가고 싶다..

 

주말에 여고동창생들 졸업 30주년 기념행사가 있는데

느닷없는 우연군의 출현으로 마음이 급히 지리산으로 기울어 버린다

'어쩌나.. 각지에서 모여드는 친구들이 모두 학수고대한 날인데..'

 

남편에게 문자를 보내 우연이랑 지리산 가고 싶은데 차를 쓸 수 있냐고 물었다

언제나 단답형인 남편으로부터 '써' 라는 답문자가 왔다

 

하지만, 전주 사는 절친에게서 끈질긴 설득이 시작된다

'그래, 좀 더 생각해보자..'

 

밤새 이런저런 다양한 꿈들을 꾸었다

경험으로 비추어볼때 흉몽도 있고 길몽도 있었다

지리산이냐 동창모임이냐를 두고 갈등하는 두 마음을 그대로 꿈으로 보여준 모양이다

어느쪽을 택해야만 길몽일지는 답이 정해져 있다

동창 모임에 나가면 나쁜일이 생길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다

하지만 7년 만에 남편에게 차키를 넘겨받아 먼 길을 떠나려하는 나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제법 큰 똬리를 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날 세차는 물론 주유 만땅으로 채웠으니 운전만 하면 된다는 남편으로부터 차키를 건네받는다

어쩌면 우연군으로부터 집에 내려오겠다는 전화를 받는 그 순간에 이미 마음이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예보와는 달리 하늘이 트이지 않은 날씨다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가지 말까..' 하는 마음이 없지않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도 아직 끝나지 않은 갈등은 계속된다(이건 순전히 날씨탓이다)

'남원에서 빠져나가 다시 돌아갈까?'

휴대전화를 확인해보니 몇 통의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그중에는 결혼 이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학창시절 집이 정읍이어서 호남선 열차를 타고 다녔던

통학생멤버 다섯 명중에 한 명인 영희에게서 온것도 있다

'00야 정말 오랜만이다 그치? 오늘 행사에 올 수 있지? 보고 싶어서..'

전주 절친에게서도 왔다

'너 설마 정말 지리산 간건 아니지?'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사실은 나보다 더 걱정이 많을 근무중인 남편(가는 동안 우연이에게 몇 번이나 문자가 왔다)에게 잘 도착했다는 인증샷을 보냈다

결국엔 지리산에 오고야 말았다^^

 

 

쌍계사에 도착해보니 하늘이 조금은 트여 늦가을스런 햇살이 포근히 내리고 있다

그래, 이제 동창모임은 잊고 만추의 지리산 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보자

 

 

 

 

폭포 가는길엔 아직 제 빛을 발하고 있는 단풍이 참 곱다

 

 

 

 

 

 

 

 

모두 드러내지 않고 살짝살짝 보여주는 가을산의 여백이 참 좋다

 

 

 

불일평원을 지나자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사실, 불일폭포에 가려고 나선 길이었지만 폭포에 물이 내릴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가을가뭄이 심했고 폭포에 올라가는 동안에도 계곡이 거의 말라있었기에..

아, 그런데 기대하지 않았던 폭포수 소리에 머릿속에 박하사탕이 들어간것처럼 정신이 맑아진다

 

 

 

 

  봄. 불일폭포

 

 

폭포에서 나와 갈림길에서 잠시 갈등을 한다

폭포수의 근원을 보고 싶다는 생각과 지리산에 들고도 지리산을 보지 못했기에 좀 더 올라 지리산을 보고싶다는 생각..

결국 삼신봉 방향으로 좀 더 올라보기로 한다

 

 

해발 600고지에 있는 폭포에 가뭄에도 물이 내리는게 신기해 산을 올라보니

아래쪽보다 더 큰 계곡이 폭포 위쪽에 있었다

길이 없어 내려가지는 못했지만 멀리서 바라봐도 크고작은 폭포들과 제법 깊은 소가 있었다

오, 놀라워라~

 

30분 가량을 올랐지만 하늘은 여전히 폭포에서 볼때나 다름없는 8부능선에서 바라보는 위치다

적어도 30분 이상은 더 올라야 지리산을 볼 수 있을것 같은데 짧은 늦가을의 해가 부담스러워 그냥 하산하기로 했다

다음에 꼭 청학동에서 시작되는 삼신봉을 오르고 쌍계사로 하산하는 일정을 짜보리라 굳.게 다짐하고서..

 

 

 

 

 

 

 

 

 

쌍계사에는 때 이른 동백이 피고 지고..

 

 

◎ 후회

돌아오는 길에도 뒤푸리라도 가자며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정말 뒤푸리라도 갈걸 그랬다)

무.사.히 집에 돌아와 근무중인 남편에게 다시 주차 인증샷을 보내고 저녁을 먹고 쉬는데 고3 담임쌤으로부터 문자가 온다

'키큰 00, 너 기다렸다 ~^*^'

아침에 또 다시 문자 한 통이 들어온다

'익산에 사니까 당연히 올줄 알고 미리 연락 안했는데 왜 안왔니? 많이 보고 싶었는데..'

1학년때 같은반이었고 집이 같은 방향이어서 일부러 학교에서 집까지 한 시간 가까이 되는 거리를 같이 걸어다녔던 이향이에게서 온 문자다

오 이런..졸업후 한 번도 못만났지만 친구 얼굴은 엊그제 본듯 또렷이 기억이 날만큼 가까웠던 친구인데..

또 다른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나를 기억해주고 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이렇게 많은데.. 

친구들에게도 쌤에게도 많이 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