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1000)/한국여행(충청)

지민이의 식객 2020. 10. 26. 07:03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서 그런지 충청남도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데요. 태안이라는 곳에서 문양목이라는 사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가담했다가 후에 1908년 7월 한인소년병학교 사관양성을 통해 항일 무장투쟁을 했던 사람입니다. 

 

1903년 경기도 인천에서 서당교사로 재직중 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 미국인의 노동자 모집에 응하여 도미,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트에 거주하며 항일민족운동을 하였던 사람의 생가터가 이곳에 남겨져 있습니다.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이자 충남 태안의 대표적인 애국지사인 옥파 이종일 선생과 함께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은 우운 문양목(1869년 6월 7일~1940년 12월 25일) 선생은 도산 안창호 등과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고 합니다.  

문양목선생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많지가 않지만 이렇게 흔적으로 남아 있으니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볼 수 있습니다. 

생가터에는 외삼문이 있고 안쪽에는 사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선생은 1910년 11월 2일과 9일 대한인국민회 기관지 신한민보에 ‘신한국 건설책은 국민단체를 완전하게 하는 데 있을 따름이다’는 글과 ‘국민단체완전책(國民團體完全策)’이란 논설을 투고했다고 합니다. 


1918년 11월 선생은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임원으로서 파리평화회의 청원대표 파견과 뉴욕에서 열리는 ‘약소국동맹회의’에 대표 파견을 결정했는데 이를 위한 대대적 모금운동에 나선다는 결정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3.1운동 확산에 기여했습니다.

문양목생가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몽산리 석가여래좌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에 의하면 예전 이곳에는 대나무 숲이 무성하였으며, 죽사(竹寺)라고 하는 사찰이 있었다고 합니다. 대좌는 지대석(地臺石) 위에 중대석(中臺石)을 올리고 그 위에 다시 복련좌(伏蓮座)와 앙련좌(仰蓮座)를 놓았습니다. 모서리가 깨어져 나간 맨 위의 앙련좌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보존이 양호하다고합니다.

선생은 꿈에 그리던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40년 눈을 감았습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문양목 선생은 저의 어머니의 외조부님이십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선생의 손자 손녀분이 계신데 유공자로 등록하기가 쉽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