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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 2012. 4. 18. 22:45

운문면의 구룡산(九龍山), 발백산(髮白山) 봉우리들이 그 힘을 한층 뿜어낸 이곳, 산길이 평평하지 않고 험하다는 말이 실감나는 곳이다. 마을 주변이 태산이고 골 안엔 아득하리 만큼 깊으며 계천을 따라 뚫린 산길은 양의 창자와 유사하다. 아무리 살펴봐도 이런 산촌에 어떻게 많은 주민들이 살고있는지 의문스럽다. 아마도 살기 좋은 곳이며 세상의 더러움이 미치치 않는 그 무엇이 숨어있는 비경이 아닌가 싶다. 1530년경에 서원인 염호봉 공이, 1500년 중엽에는 수원인 백삼룡 공이 그리고  1500년 말경에는 경주 이씨가 이곳 산세에 마음을 빼앗겨서 입촌하여 각각 마을을 열어 나갔다 한다. 후손의 복을 바라고, 또한 부귀현달(富貴顯達)을 기원도 하였거니와 이 곳 형국을 믿고 의지한 것이 더 큰 비중을 점유하였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석현(石峴), 장전(長田)

돌고개, 돌밭이라 부르며 석현(石峴)마루에 취락된 마을이다. 계천(溪川)이 야(也) 형으로 흐르고 일자로 뻗은 구릉에 자리한 마을로 암반을 뚫은 길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산촌의 그림과 같은 풍취다. 이런 풍취에 마음을 사로잡혀 선경임을 자처하면서 선유(仙遊)한 자취가 계변(溪邊)에 남아 있다. 마을 입구 계천 가운데 큰바위에 있는 소나무는 천년만세간에 풍우설상에도 수절한 듯 마디마디가 고초를 말해 주는 것 같고 입암(立岩) 전면에는 석정(石亭)이라 암각되어 있다. 석정 주변 석벽에도 만송정(晩松亭), 담양대(膽仰臺), 일신탕(日新湯)의 제목하에 풍경과 인격도야 시가 새겨져 청절표천추(淸節漂千秋)를 읊고 있다.

돌밭, 돌고래

지면일대가 암반이다. 즉 돌뿐인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동명이다. 죽장망혜(竹杖芒鞋)의 시인 묵객들이 과연 이런 곳이 있는 줄을 알았는지?  알았다면 어떤 표현을 했을까?

긴밭, 진밭(長田)

산기슭을 등고선에 따라 개간하였기 때문에 사래가 긴 밭이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이를 장전으로 표기한 것이다. 지난날에는 목화 농사를 많이 했으나 현재는 수리로 인해 논으로 많이 전환되었다.

생미(生美), 산양(産孃)

경주 최 공이 처음 동네터를 잡고 식수로 한 우물을 파고난 뒤 이상하게도 이 마을에서 미인이 많이 태어나서 생미(生美), 산양(産孃)이라 불렀다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별명이고 지리지에는 산양리(山陽里)라 기록되어 있다. 산양(山陽)이라 하게 된 것은 마을이 산 중턱에 있어 동향이라 양지 바른 곳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신당(新當)

가장 늦게 형성된 마을로 새로 취락된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소천리는 세 마을(石峴, 山陽, 神堂)이 합쳐진 이름이다.

같은 소나무로서 동질감을 느낍니다.
사시사철 변함없는 늘 푸르름이 좋고, 세월흐름이
갈수록 더 멋스럽고 듬직한 말이없는 노송은 세상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세상은 역시 믿을건 소나무밖에 없지요.(1등)
언제나 그자리에 항상 변함없는 고향소나무처럼

나의 살던 고향은 소나무 산골
솔의향기 송화꽃 가득한 동네
소나무꽃 솔내음 향기로우운
그속에서 놀던때가 그립습니다. (ㅎㅎ)(ㅎㅎ)(ㅎ)

--*--영영소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