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심리

세상다담 2008. 7. 22. 23:18
 

더러운 유전인자를 제거하라!


19세기 후반 찰스 다윈은 생존경쟁을 통한 자연선택이 생물 종의 진화를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스펜서는 진화의 생존경쟁이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나약한 존재들의 소멸은 자연법칙의 순리라고 역설했고, 최적자생존이라는 자연법칙을 위배하여 허약한 형질을 재생산하는 정부의 사회복지 정책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골턴은 이러한 사고에 기반하여 우생학을 창안했다. 우생학은 그리스어(eugene)에서 온 말로 “출생이 좋은(good in birth)”이라는 의미이다. 말 그대로 우생학은 “잘난 태생에 대한 학문”이었다. 골턴은 우생학을 “인종의 타고난 질을 개선하는 모든 영향을 다루는 과학이자, 인종의 타고난 질을 최대한으로 이롭게 발전시키는 모든 요인을 연구하는 과학”으로 정의하면서 신중한 결혼을 통해 천재를 만들거나 하층계급의 출산율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이후 골턴의 우생학은 과학적 담론의 경계를 넘어 구체적인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졌고, 이것은 서구 사회에 지우기 힘든 흔적을 남겼다. 당시 서구의 많은 사람들은 과학에 대한 믿음이 컸던 만큼 우생학이 야기할 수 있는 부정적 폐해에는 관심이 없었다. 우생학자들은 과학적 근거도 없이 자의적인 판단만으로 사회적 부적자들을 제거했고, 정치적 사회적 인종적 차별을 정당화했다. 우생학은 승자의 논리를 대변하며 애초부터 정해져 있는 결론을 생물학이라는 과학의 권위를 빌어 정당화했다.

특히 독일의 우생학은 인종위생, 강제불임, 안락사, 집단학살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전개되었다. 독일의 우생학은 19세기 말 독일사회의 급격한 산업화과정에서 파생된 사회문제와 계급간 출산율 차이가 야기한 인적 구성의 불균형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초기의 우생학은 생물학에 엄밀한 지적 기반을 두었고, 인종적 정치적 색깔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와 대공황의 여파는 우생학의 인종주의적 색채를 강화시켰고, 1933년 나치의 집권 이후 우생학은 유대인, 동부 유럽인들을 인종적으로 구분하고 열등시하는 정치적 운동으로 급속히 변질되어 갔다. 미국 불임법의 영향으로 제정된 1933년 독일의 불임법은 자의적인 판단에 의거해 신체적 허약자로 분류된 4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거세하려 했다. 1935년 제정된 뉘른베르크법은 독일 인종의 우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혼혈을 금지하고, 결혼 전 건강검사를 의무화했으며, 독일인이 아닌 독일 내 모든 거주자의 권리를 박탈하기도 했다. 결국 히틀러의 우생학 정책은 안락사로 귀결되었다. 나치는 신체적 허약자들과 아리안 인종이 아닌 다른 인종들을 ‘살 가치가 없는 생명’으로 간주했다. 1939년 장애 아동에 대한 안락사를 시작으로 1943년 성인 안락사가 종료되기까지 독일내 28개 안락사 센터에서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제거되었다. 안락사는 최종결정의 전초전이었고, 이것은 홀로코스트라는 전대미문의 대량학살로 귀결되었다.

당시 독일의 우생학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유전의 고정성에 기댄 정치적 사회적 인종적 편견에 있었다. 우생학자들은 인간의 도덕적 특성에서 신체적 특성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가진 모든 특성을 유전적 특질로 환원시켜버렸다. 이것은 인간 능력의 근본적 차이는 선천적인 차이이며, 선천적 차이는 유전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의 위계질서는 인간 본성의 당연한 귀결이라는 생물학적 결정론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유전자가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더군다나 유전성과 불변성을 등치시키는 것은 과학적 오류이고, 이것은 생물학적으로 가장 큰 실수이다. 때문에 생물학적 결정론은 사이비 과학적 난센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생학자들은 생물학적 결정론에 기초하여 정치사회적 차별을 정당화했고, 이러한 차별은 개인의 생식 자유까지도 침해했다. 누가 누구를 출산하고 양육할 것인가라는 본질적 문제에서 우생학은 폭력적 도구 역할을 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생학은 틀린 이론이자 질 나쁜 이데올로기였다.

과거 우생학은 그것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 강제적인 입법이나 물리적인 구금, 그리고 특정 사회 집단의 희생을 강요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생학은 항상 폭력을 동반했고, 20세기 역사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텍스트가 아니라 반복 가능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교양세계사, p.525~527, 동서역사문화연구회, 2007. 4, 우물이있는집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