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심리

세상다담 2009. 12. 10. 23:37

 

 

 

 

 

 

 

 

 

 

 

 

 

 

 

 

 

 

에밀에밀 - 8점
장 자크 루소 지음, 이환 옮김/돋을새김

 

 

 

분   야

철학, 교육

평   가

추   천

아이를 장차 어떤 사람으로 키울까 고민하시는 분

소   개

 

루소는 사회를 위한 교육보다 인간 자체를 위한 교육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인간임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교육은 세 가지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자연, 인간, 사물이 그것이다. 자연은 인간을 내적으로 성장시키고 인간은 그 성장을 활용하도록 돕는다. 반면 사물은 그것과 부딪쳐 얻는 경험의 측면에서 교육을 돕는다. 모든 교육은 이 세 가지 스승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세 가지 스승의 가르침이 서로 조화롭게 이루어질 때만이 인간은 제대로 교육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 중 자연의 교육은 우리의 관할 밖에 있다.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사물의 교육도 이와 비슷하긴 하지만 전혀 통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단지 인간의 교육만이 우리가 주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또한 전적으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어느 누가 한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인물들의 언행을 슬기롭고 용의주도하게 통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모든 교육엔 나름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교육을 기술의 관점에서만 보면 그것은 전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기술이다. 어느 누구도 이 세 가지 교육을 조화롭게 응용할 수 없다. 단지 목표치에 근사하게 접근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행운이 따라야 한다.

 

   그런데 그 목표란 무엇인가? 어떤 것이 교육의 목표가 돼야 하는가? 그것은 자연의 교육이다. 이 자연의 교육이 다른 두 가지의 교육을 이끌어야 한다. 앞서 말한 세 가지 교육의 원만한 조화를 위해선 우리의 능력 밖에 있는 이 교육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12~13쪽)

 

   변질되기 이전의 최초 성향에 모든 것을 조화시키는 것만이 진정한 교육이다. 앞서 말한 세 가지 교육이 단지 다르기만 할 뿐이라면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 가지 교육은 서로 대립될 뿐만 아니라 모순적이기도 해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경우 최초의 성향에 모든 것을 조화시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연과 사회제도는 양립돼 있으므로 우리는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인간을 만들 것인지 시민을 만들 것인지를. (15쪽)

 

   자연인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 그는 단지 독립된 실체일 뿐이다. 반면 시민은 분모에 의해 값이 결정되는 분자와 같은 사회적 존재이다. 훌륭한 사회제도란 인간의 본성을 유연하게 변화시켜 그 사회의 가치에 맞게 상대적인 존재, 즉 ‘나’를 ‘우리’라는 공동체로 융합시키는 제도이다. 이 제도 안에서 ‘나’는 더 이상 단순한 개체가 아니다. 전체를 의식하고 사고하는 사회적 유기체 속에서의 ‘나’이다. (15쪽)

 

   만물을 최선의 상태로 있게 한 자연은 인간 역시 처음에는 그러한 상태로 있게 했다. 자연이 애초에 부여한 것은 인간의 자기 보존에 필요한 욕망과 그것을 충족할 만큼의 적절한 능력뿐이었다. 그 밖의 모든 능력은 필요할 경우 발달하도록 인간의 내면 깊숙이 숨겨 놓았다. 욕망과 능력의 일치가 이루어져 불행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 원초적 상태에서뿐이다. 하지만 숨어 있는 인간의 능력이 활동하자마자, 그 능력 가운데 가장 활발한 상상력이 다른 능력들을 앞질러 간다. 이 상상력은 선이든 악이든 관계없이, 그 지평을 넓혀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그것을 조장한다.

 

   그러나 대상에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그 대상은 멀어져간다. 잡았다고 생각해서 보면 그 대상은 이미 그 전의 대상이 아니다. 만족은 결코 욕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인간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결핍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결핍을 느끼게 하는 욕망 때문이다. (63~64쪽)

 

   흔히 인간이 약하다고 말을 하는데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 약하다는 것은 어떤 관계에 대한 상대적 표현 아닌가? 욕망에 비해 가진 능력이 더 월등하다면, 벌레 같은 미물이라 할지라도 그 존재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가진 능력에 비해 욕망이 더 크다면, 사자나 영웅이라 할지라도 그 존재는 약하다고 할 수 있다. 무릇 만물은 본성에 충실할 때 강하다.

 

   인간 역시 그렇다. 인간이 인간 그 이상의 존재가 되고자 한다면 약할 수밖에 없다. 능력을 키우면 강해질 것이라는 믿음은 그러므로 편견에 불과하다. 능력보다 오만이 커질 때 오히려 그 능력은 줄 것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가진 능력 안에 머무를 수 있다면 우리는 항상 만족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나약함은 불평할 일도 없거니와 약하다는 느낌조차 갖지 않을 것이다. (64~65쪽)

 

   하지만 자연의 인간을 길러내기를 원한다고 해서 그를 미개인으로 만들어 숲속으로 쫓아보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통념에 끌려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 보고 느낀 것외에 어떠한 권위에 의해서도 지배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268쪽)

 

   그를 필요한 말만 할 뿐 수다스럽지 않다. 세상 만물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이 얘기할 수가 없다. 사람들이 기울이는 관심, 즉 자기에 대한 관심과 자기 말에 대한 관심을 정확히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은 무엇이든 얘기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288쪽)

 

   에밀, 현명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사라지지 않을 아름다움 외에는 집착하지 말아라. 네게 주어진 조건 안으로 네 욕망을 국한시켜라.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을 먼저 하라. 필연의 법칙을 도덕률로 삼아 집착하지 않도록 하라. 잃는 법을 배워라. 삶을 관조함으로써 초월하는 법을 배워라. 역경 속에서도 견디는 법과 의무에 충실히 하는 법을 배워라.

 

   그러면 너는 운명에 지배당하지 않을 것이며 행복할 것이다. 욕망의 파도에 아랑곳없이 평화로울 것이다. 부서지기 쉬운 것을 갖고 있을지언정 깨지지 않을 것이며 아무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음에도 풍족할 것이다. 세론에 지배받지 않는 너는 언제까지나 자유로울 것이다.(349쪽)

 

 

http://blog.daum.net/hjandej2009-12-10T14:37:340.3810

 

 

" 당신은 스승이시군요. "
" 스승이라, 그게 뭐요? 스승은 무슨 지식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제자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사람이오. 제자가 지닌 최선을 다하는 힘을 고취시키는 사람이지. "

: 포르토벨로의 마녀, 118쪽,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08. 1.
스승과 제자 사이의 차이는 단 하나다. 스승이 제자보다 덜 두려워한다는 것. 그래서 스승은 제자와 함께 탁자에 앉거나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앉을 때, "한번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을 던질 수 있다. 하지만 절대로 "이렇게 하면 나처럼 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만의 유일한 길과 목적지가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스승은 제자가 이미 맞닥뜨린 것뿐 아니라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올지까지 두려워하더라도, 자기 세계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

: 포르토벨로의 마녀, 318쪽,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08. 1.
좋은 책이 너무 많네요. 세상다담님 부자시네요 ^^
그쵸? 남는 건 책 밖에 없다니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