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영혼

세상다담 2009. 12. 23. 10:59

신도 버린 사람들신도 버린 사람들 - 10점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김영사

 

 

 

분   야

자기계발

평   가

추   천

힘든 삶을 극복하거나, 훌륭한 아버지가 되고 싶은 분

소   개

 

[강추] 노예보다 아래, 닿는 것조차 금지된 카스트인 달리트의무가 역경을 헤치고 멋진 아버지가 되는 이야기.

 

 

 

 

 

 

 

 

  나에게 아버지는 늘 곁에 있고 칭찬을 입 밖에 내는 법이 없는 분이었다. 우리 사이에는 말이 필요 없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가 모든 걸 말해 주었다. 아버지의 그 표정 한 번이면 나는 산이라도 옮길 수 있었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시작하던 때가 기억났다. 집에 오는 손님들마다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대개는 판에 박힌 재미없는 대답을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자누 형이 똑같은 걸 나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작가가 되고 싶어.” “너는 정말 구제불능이다. 빈털터리 거지가 되고 말 거야. 너, 작가가 잘 사는 거 본 적 있어?” 형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베란다에 서서 훌쩍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는 형이 달래려는 건 줄 알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나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아빠 좀 봐봐. 사람들은 말할 거야. 의사가 돼라, 엔지니어가 돼라, 아니면 변호사가 돼라... 하지만 누구의 말도 들어서는 안 돼.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 그게 옳아. 아빠도 너한테 이게 되라느니 저게 되라느니 말하지 않을 생각이다.”

 

  아버지는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면 늘 그랬듯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빠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한 가지뿐이야. 뭘 하든 최고가 되라는 것. 도둑이 되고 싶어? 좋아. 하지만 솜씨가 대단해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게 만들어야 해. 온 세상 사람들이 너를 보고 ‘야, 진짜 훌륭한 도둑이다! 어쩜 이렇게 솜씨가 대단할까?’라고 감탄하게 만들란 말이야.”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고, 아버지도 이가 다 빠진 입을 벌리고 씩 웃었다. “그것보다 못한 것에 만족해서는 안 돼. 알아들었니?” 이 말을 할 때도 아버지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었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아버지의 투박한 인생철학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건 내 마음 깊은 곳에 영원히 뿌리를 내렸고, 내 야심의 추진력이 되었다. (292~293쪽)

 

 

 

 

 

  1986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다(아버지)는 거의 그림자만 남은 상태였지만 정신은 어느 때 못지않게 또렷했다. 다다는 마지막 순간까지 또랑또랑한 총기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다다는 내가 한 연구에 대해 물었다. 경제와 관련된 주제를 일반적인 용어로 알아듣게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했지만 최선을 다했다.

 

  다다의 다음 질문은 “그걸로 보통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다다는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간과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정확히 짚어 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다다는 그런 나에게 주의를 주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연구를 많이 해도 길거리의 사람들을 돕지 못한다면 전부 낭비일 뿐이다.

 

: 신도 버린 사람들, 342쪽, 나렌드라 자다브, 김영사, 2007. 9.  

 

 

 

 

http://blog.daum.net/hjandej2009-12-23T01:59:410.31010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을 때도 생각났다. 몇 시간씩 연구를 하던 때였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여섯 자녀를 키운 어머니는 그만 좀 쉬라고 닦달을 했다. 그러지 않아도 먹고 마실 것 충분한데 뭐가 걱정이 돼서 일만 하냐는 것이었다. 하루는 하도 잔소리를 하니까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호통을 쳤다. 그러고는 학위는 운전면허 같은 거라고 설명했다. 면허를 따면 계속 운전을 해야지, 그럼 그걸 그냥 썩히나? (293쪽)
어느 날 남편이 배가 꼬이고, 뒤틀리고, 설사를 하는 토사곽란을 일으켰다. 남편은 배에 불이 난 것 같았고, 음식만 들어가면 배를 움켜잡고 뒹굴었다.
온갖 종류의 약초와 약을 구해 왔다. 민간처방을 쓰기도 했다. 이슬람 성자인 파키르도 찾아가고 무당도 찾아갔다. 뭐든 하라는 대로 다 했다. 그런데 소용이 없었다. 누군가 호부 장식과 구슬이 달린 검은 목걸이를 남편의 목에 걸라고 했다.
나는 암담한 심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산을 옮기는 게 낫지. 남편에게 그걸 걸라고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그가 고통에 겨워 소리치는 말들, 심지어 험한 욕설도 묵묵히 들어 넘겼다.
“나는 당신 아내예요. 나만 혼자 남겨두고 죽게 놔둘 수는 없어요.”
그러고는 좀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무지개가 뜨려면 비와 햇살이 모두 필요하다는 말 기억해요? 그 말을 나한테 해준 사람이 누구였죠?”
이 말을 들을 그의 눈이 반짝였다.
“우리는 아이들을 낳고, 바바사헤브의 말처럼 그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서 가르쳐야 해요. 그러니까 당신을 지금 죽게 할 수는 없어요.”
나는 평정을 유지하려고 이를 악물었지만,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당신을 살릴 수 있으면 뭐든 할 거예요. 나도 며칠동안 물 한 모금 못 마셨어요. 나 좀 도와주면 안 돼요? 당신을 살릴 수 있게 도와줄 수 없냐고요. 이것 좀 차주면 안 돼요?”
나는 남편을 붙들고 애원했다. 남편이 나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심장이 벌렁거리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잠잠한 남편의 태도가 폭풍이 밀려오기 전의 고요함 같아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하지만 폭풍은 불지는 않았다. 그는 마땅찮은 걸 무릅쓰고 목을 내밀었다. 그리고 체념한 듯 말했다.
“그래서 당신이 행복하다면 그렇게 해.”

: 신도 버린 사람들, 211~212쪽, 나렌드라 자다브, 김영사, 2007.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