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영혼

세상다담 2010. 10. 21. 12:42

 

 

  

  

“너는 네 자신의 삶에 적극적이냐, 아니면 소극적이냐?”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기 전, 누군가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했을까? 아마도 잠시 뜸을 들인 후, “적극적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을 했을 것이다.

 

적극적인 삶.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태도의 삶’을 떠올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의 삶에 ‘이만하면 됐지’라며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흘려보내고 있을지라도, 나는 내 삶을 통해 무언가를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말을 들려주고 싶었을 테니까.

 

그런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우슈비츠, 다카우 등 네 곳의 강제수용소에 옮겨 가며 갇혀 지내야 했던 정신과 전문의 빅터 프랭클이라면 어떤 대답을 했을까? 본인의 의지는 아닐지라도 어쩔 수 없이 소극적인, 말 그대로 스스로 그 무엇도 이룰 수 없는 비활동적인 그리고 피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답했을까?

 

적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창조적인 일을 통해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주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반면에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예술, 혹은 자연을 체험함으로써 충족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 두 가지가 거의 메말라 있는 삶에도, 외부적인 힘에 의해 오로지 존재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지고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삶에도 목적은 있다. 물론 그에게는 창조적인 삶과 향락적인 삶도 모두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 122쪽, 빅터 프랭클, 청아출판사, 2007. 12. 30. (초판3쇄) 

 

죽음조차 무덤덤해져버리는 비정상적인 상황, 이에 따른 심리적 반응으로 1단계 충격, 2단계 무감각, 3단계 자유를 거치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아름다움과 예술, 유머와 행복을 찾아내며, 삶의 가능한 의미를 찾아 버텨 가는 그의 3년.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은 나는, 이제 삶에 대한 태도가 적극적인지 소극적인지를 묻는다는 것은 삶의 진정한 핵심에서 벗어난 질문임을 깨닫는다. 글쓴이의 말처럼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 (138쪽)’을 배웠기 때문이다.

 

삶이 우리에게 언젠가는 무언가를 건네줄 것이라는 기대로 긍정적인 하루를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고민하고 찾는 태도에 있다. 다시 말하자면, 삶의 핵심은 자신만의 삶의 목적을 스스로 찾는데 있는 것이다.

 

이제 삶에 대해서라면 누군가 나에게, 아니 내가 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너는 네 삶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내가 살다 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 질 수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 10점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청아출판사

 

오스트리아의 신경학자, 정신과 의사.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겪었던 극한적인 체험을 정신분석학적이고 실존주의적으로 기록하였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심리치료법 로고테라피를 창안하여 프로이트와 아들러에 이어 빈 정신요법의 제3학파를 이루었다.

 


 

     

강제수용소에 있었던 우리들은 수용소에도 막사를 지나가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런 사람이 아주 극소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도 다음과 같은 진리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 120쪽, 빅터 프랭클, 청아출판사, 2007. 12. 20. (초판3쇄)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 122쪽, 빅터 프랭클, 청아출판사, 2007. 12. 20. (초판3쇄)
적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창조적인 일을 통해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주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반면에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예술, 혹은 자연을 체험함으로써 충족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 두 가지가 거의 메말라 있는 삶에도, 외부적인 힘에 의해 오로지 존재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지고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삶에도 목적은 있다. 물론 그에게는 창조적인 삶과 향락적인 삶도 모두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곳(나치수용소-세상다담)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 - 심지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 를 제공한다. 그 삶이 용감하고, 품위 있고, 헌신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이와는 반대로 자기 보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동물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 힘든 상황이 선물로 주는 도덕적 가치를 획득할 기회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권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그리고 이 결정은 그가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기도 하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 122~123쪽, 빅터 프랭클, 청아출판사, 2007. 12. 20. (초판3쇄)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포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 우리에게 던져준 과제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바로 이것이 개개인마다 다른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 어떤 사람도, 어떤 운명도, 그와는 다른 사람, 그와는 다른 운명과 비교할 수 없다.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는 경우는 하나도 없으며, 각각의 상황은 서로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때로는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이 그에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행동에 들어갈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반면에 어떤 때에는 더 생각할 시간을 갖고,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하게 할 수도 있다. 때로는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가야할 때도 있다. 각각의 상황들은 각각 그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갖는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비롯된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단 하나만 있는 법이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 138~139쪽, 빅터 프랭클, 청아출판사, 2007. 12. 20. (초판3쇄)
현대 사회에 만연해 있는 우울증과 공격성, 중독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면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실존적 공허(자신의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등)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한다. 연금생활자나 나이든 노인들이 느끼는 위기감 역시 이와 같은 종류의 것이다. 게다가 이런 실존적 공허는 가면을 쓰거나 위장을 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좌절되면 사람들은 권력욕으로 그 좌절을 대신 보상받으려고 하는데, 여기에는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권력욕인 돈에 대한 욕구도 포함되어 있다. 한편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가 좌절된 것에 쾌락을 추구하는 의지가 대신 자리를 잡는 경우도 있다. 실존적 좌절을 겪은 사람들이 종종 성적 탐닉에서 그 보상을 찾으려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 179쪽, 빅터 프랭클, 청아출판사, 2007. 12. 20. (초판3쇄)
..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비롯된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단 하나만 있는 법이다....
이 말이 마음에 듭니다.
저도 늘 그렇게 생각합니다.
최선의 삶은.. 우리가 늘 선택의 기로에 섰을때 선택한 그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죽음의 수용소에서... 비록 두께 얇지만, 내용 두터운 책이었어요.
아마 곧 다시 읽게 될 거 같아요. 작은샘 님, 이 책 보셨나요?
아뇨? 아직 못 읽어봤네요^^다담님이 찍어놓으신 별 다섯개짜리 보고 읽어보고 싶은 욕심은 생깁니다^^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이 누군가에게 던질 만한 질문은 아니고, 오히려 인간은 삶으로부터 무엇을 위해, 왜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기에 행동을 통해 대답해야 한다고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작가 빅터 프랭클은 말한다. 참으로 기발한 발상의 전환이다. 묻기보다 대답해야 한다니...

: 책에게 말을 걸다, 170쪽, 오정화, 북포스, 2011.1.5. (1판 1쇄)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은 나는, 이제 삶에 대한 나의 태도가 적극적인지 소극적인지를 묻는다는 것은 삶의 진정한 핵심에서 벗어난 질문임을 깨닫는다. 글쓴이의 말처럼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 (138쪽)’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나에게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대신 나는 나의 행동을 통해 나의 삶에게 내 삶의 의미를 대답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