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사회

세상다담 2010. 11. 1. 12:46

 

 

 

 

“두목, 사람들 좀 그대로 놔둬요. 그 사람들 눈 뜨게 해주려고 하지 말아요! 그래, 뜨여 놓았다고 칩시다. 뭘 보겠어요? 비참해요! 두목, 눈 감은 놈은 감은 대로 놔둬요. 꿈꾸게 내버려두란 말이에요...만일에...만일에 말이지요...”

 

 “만일이라니, 뭐요? 들어 봅시다!”

 

 “...만의 하나, 그 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당신이 지금의 암흑 세계보다 더 나은 세계를 보여 줄 수 있다면... 보여 줄 수 있어요?”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타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폐허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 그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생각했다.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낡은 세계는 확실하고 구체적이다. 우리는 그 세계를 살며 순간순간 그 세계와 싸운다... 그 세계는 존재한다. 미래의 세계는 아직 오지 않았다. 환상적이고 유동적이며 꿈이 짜낸 빛의 천이다. 보랏빛 바람(사랑, 증오, 상상력, 행운, 하느님)에 둘러싸인 구름... 이 땅의 아무리 위대한 선지자라도 이제는 암호 이상의 예언을 들려줄 수 없다. 암호가 모호할수록 선지자는 위대한 것이다.

  

: 그리스인 조르바, 98쪽, 니코스 카잔차키스, 열린책들, 2007.4.15. (초판 27쇄)

  

 

 

 


 

 

희랍인 조르바

Zorba The Greek, Alexis Zorbas, 1964, 142분

♣ 감독 : 마이클 카코야니스

♣ 출연 : 안소니 퀸, 릴라 케드로바, 앨런 베이츠, 이렌느 파파스

 

제37회 미국 아카데미 미술상, 촬영상, 여우조연상 수상

 

 

 

 

 

 

 

 

그리스인 조르바 - 6점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열린책들

 

조르바는 물레를 돌리는 데 거추장스럽다고 손가락을 잘라버리는가 하면, 여성의 치모를 모아 베개를 만들어 베고 자며 수도승을 꼬여 타락한 수도원에 불을 지르는 등 기행을 일삼는 인물이다. 그러나 조르바는 혼돈에 찬 인간이 아니다. 작가의 페르소나이자 지식인을 대표하는 주인공 오그레에게 조르바는 ‘절대 자유’의 초인과도 같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배운 이들이 지향해온 이상적인 인간상인 것이다.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야망이 없으면서도 세상의 야망은 다 품은 듯이 말처럼 뼈가 휘도록 일하는 것...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 성탄절 잔치에 들러 진탕 먹고 마신 다음, 잠든 사람들에게서 홀로 떨어져 별은 머리에 이고, 뭍을 왼쪽,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해변을 걷는 것... 그러다 문득, 기적이 일어나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동화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

: 그리스인 조르바, 186쪽, 니코스 카잔차키스, 열린책들, 2007.4.15. (초판 27쇄)
...내게는, 저건 터키 놈, 저건 불가리아 놈, 이건 그리스 놈,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새 와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놈, 이런 식입니다. 그리스 인이든, 불가리아 인이든 터키인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이냐, 나쁜 놈이냐? 요새 내게 문제가 되는 건 이것뿐입니다. 나이를 더 먹으면 이것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오, 여기 또 하나 불쌍한 것이 있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자 역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한다. 이자 속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있고, 때가 되면 뻗어 땅 밑에 널빤지처럼 꼿꼿하게 눕고, 구더기 밥이 된다.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 간이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

: 그리스인 조르바, 349쪽, 니코스 카잔차키스, 열린책들, 2007.4.15. (초판 27쇄)
“...만물은 각기 무슨 의미를 지닌 건가요? 누가 이들을 창조했을까요? 왜요? 그리고 무엇보다도...왜 사람들은 죽는 것일까요?”
“...왜 사람들은 죽는 것일까요?”
“모르겠어요, 조르바.”
“모르신다!”
“...아니, 두목, 당신이 읽은 그 많은 책 말인데... 그게 뭐 좋다고 읽고 있소? 왜 읽고 있는 거요? 그런 질문에 대한 해답이 책에 없다면 대체 뭐가 씌어져 있는 거요?”
“책에 씌어진 건 인간의 혼미(昏迷)에 관한 겁니다. 조르바, 인간의 혼미야말로 당신의 질문에 대답할 수가 있답니다.”

: 그리스인 조르바, 414~415쪽, 니코스 카잔차키스, 열린책들, 2007.4.15. (초판 27쇄)
법이 명하는 대로 자진해서 행하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친 현자(賢者)가 누구였던가? 필연에 순응하고 필연적인 것들은 자유 의지의 행위로 바꾸어 놓으라고 한 사람은? 이게 해탈이나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비참한 방법이지만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항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필연을 극복하여 외부적 법칙을 영혼의 내부적 법칙으로 환치시키고 존재하는 것을 깡그리 부정하고 자기 정신의 법칙에 따른 새 세계를 창조하려는 인간의 긍지에 찬 동키호테적 반동이 아닐까! 이것은 결국 자연의 비인간적인 법칙을 반대하고 지금 존재하는 것보다 더 순수하고 우수하고 도덕적인 새 세계를 창조하려는 행위가 아닐까?

: 그리스인 조르바, 417쪽, 니코스 카잔차키스, 열린책들, 2007.4.15. (초판 27쇄)
“조르바, 내 말이 틀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소위, 살고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돈 벌고 명성을 얻는 걸 자기 생의 목표하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또 한 부류는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인류의 삶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그걸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지요. 이 사람들은 인간은 결국 하나라고 생각하고 인간을 가르치려 하고, 사랑과 선행을 독려하지요. 마지막 부류는 전 우주의 삶을 목표로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나무나 별이나 모두 한 목숨인데, 단지 아주 지독한 싸움에 휘말려 들었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요. 글쎄, 무슨 싸움일까요? ... 물질을 정신으로 바꾸는 싸움이지요.”

: 그리스인 조르바, 429쪽, 니코스 카잔차키스, 열린책들, 2007.4.15. (초판 27쇄)
압제자 터키로부터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1단계 투쟁, 우리 내부의 터키라고 할 수 있는 무지, 악의, 공포 같은 모든 형이상학적 추상으로부터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2단계 투쟁, 우상이라고 일컬어지는 것, 우리가 섬기는 중에 우상이 되어 버린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3단계 투쟁...

: 그리스인 조르바, 482쪽(작가론), 니코스 카잔차키스, 열린책들, 2007.4.15. (초판 27쇄)
1908년 아테네에서 대학을 마치고 파리로 간 카잔차키스는 이곳에서 생철학자(生哲學者) 앙리 베르그송을 만난다. 베르그송은, 그가 자서전에서 민족 시인 호메로스 다음으로 꼽은 사람이다. 그는 베르그송의 철학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베르그송에 따르면 인간이 보편적으로 경험해 온 기나긴 진화의 역사는, 경화된 메카니즘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를 창출하기 위한 <생의 도약 elan vital>의 역사다. 따라서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부단한 창조의 영원을 향한 도약과 생의 충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가 베르그송에게 경도된 것은, 인간 존재란, 신이 어떤 목적에 따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딛고 넘어가게 마련된 단계에 불과한 것, 따라서 <신>이라고 하는 것은 그 도약의 디딤돌로 인간이 창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자기의 예감을 베르그송의 생철학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인연을 끊고 <삶>과 외로운 싸움을 벌이기로 마음먹은 호전적인 청년에게 이 만남은 충격적인 시대 사조의 체험이었다.

: 그리스인 조르바, 489쪽(작가론), 니코스 카잔차키스, 열린책들, 2007.4.15. (초판 27쇄)
참 자유인을 알고 싶다면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보거라"
하신 선생님이 계셨는데...
조금 읽다 내팽쳐 둔 그리스인
다시 챙겨 읽어보아야 할까 보네요
ㅎㅎㅎ. 네, 조르바, 간이 좀... 무척 큰 참 자유인이다 싶어요. ^^*
<그리스인 조르바>를 벌써 세 번째 읽고 있습니다. 저도 똑같은 출판사의 책을 읽었는데요.

'혼미'라는 말의 의미가 뭔지 잘 모르겠어서 네이버에서 검색을 했더니 이 블로그로 들어오게 되었네요.

昏迷의 사전적 의미는 ①정신(精神)이 흐리고 멍하게 됨 ②사리(事理)에 어두운 상태(狀態)인데

도대체 '책에 씌어진 건 인간의 혼미에 관한 것이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네요..
“...아니, 두목, 당신이 읽은 그 많은 책 말인데... 그게 뭐 좋다고 읽고 있소? 왜 읽고 있는 거요? 그런 질문에 대한 해답이 책에 없다면 대체 뭐가 씌어져 있는 거요?” “책에 씌어진 건 인간의 혼미(昏迷)에 관한 겁니다. 조르바, 인간의 혼미야말로 당신의 질문에 대답할 수가 있답니다.” : 그리스인 조르바, 414~415쪽, 니코스 카잔차키스, 열린책들, 2007.4.15. (초판 27쇄)

음...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뭘까요?

① 내 스스로는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던 답을 찾기 위해서?
② 나와 마찬가지로 답을 찾으려는 누군가의 시도를 읽어내고 위안받기 위해서?

만약 두 번째 경우라면, 책 속에 담겨진 게 '인간의 혼미(昏迷)'라는 말이 맞을 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