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금융

세상다담 2011. 6. 8. 00:20

 

 

  

 

   자유 시장이 경제 발전을 위한 최선의 길이냐 하는 질문을 접어두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 질문과 관련하여 이 책에서 시종일관 그렇지 않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과연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은 실제로 천생연분이며 상호 보완적인 관계일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시장과 민주주의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충돌한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고, 시장은 '1달러 1표'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당연히 전자는 개개인이 가진 돈에 관계 없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동일한 비중을 둔다. 후자는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더 큰 비중을 둔다. 따라서 민주적인 결정은 대개 시장의 논리를 뒤엎는다. 실제로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은 대부분 민주주의에 반대했는데, 그것은 민주주의는 자유 시장과 양립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들은 민주주의는 가난한 다수가 부유한 소수를 착취하게 될 (누진소득세, 사유재산의 국유화 같은) 정책들을 도입할 수 있게 하고, 그에 따라 부를 창출할 동기를 무너뜨린다고 주장했다. (...)

   나는 민주주의와 시장 사이의 충돌을 지적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장 논리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1달러 1표'의 원리를 전면 부정함으로써 경제적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정치권력, 인맥, 혹은 사상성 따위의) 다른 기준에 근거한 불평등을 확산시켰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돈이 평등을 증진시키는 강력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돈은 특정한 인종, 사회 계급, 또는 직업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을 없애는 용해액으로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다. (...)

   그러나 시장 논리가 아무리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해도 '1달러 1투표'의 원리에만 의거해 사회를 운영해서는 안되고, 또 그럴 수도 없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게 되면 부자들은 자신들의 욕구 가운데 가장 하찮은 요소들까지 실현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조차 없다. 개발도상국에서는 해마다 말라리아로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고 수백만 명이 시달리고 있지만, 세계는 말라리아 치료약 개발보다는 살 빼는 약 개발에 20배나 많은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다. 또 건강한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절대로 매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법원의 판결, 공직, 학위와 (법률가, 의사, 교사) 특정 직업의 자격증 등이 그 예이다. 누구든 돈만 있으면 이런 것들을 살 수 있는 사회는 단순히 정당성뿐만이 아니라, 경제적 효율성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의사들이나 교사들의 자질이 적절한 수준 이하일 경우에는 노동력의 질이 떨어질 수 있고, 법원이 불공정한 결정을 내리게 되면 계약법의 효력이 훼손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시장은 둘 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초석이다. 그러나 양자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충돌한다. 우리는 양자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내가 이 책에서 줄곧 밝히고 있듯) 자유 시장이 경제 발전을 촉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주장과는 달리)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그리고 경제 발전 사이에 효과적인 순환이 존재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 나쁜 사마리아인들, 265~268쪽, 장하준, 부키, 2009. 11.

 

 

 

  나쁜 사마리아인들 - 10점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부키

 

<사다리 걷어차기>, <쾌도난마 한국경제>의 장하준 교수가 처음으로 보통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집필한 본격 교양 경제서. 자유 무역이 진정 개발도상국에게도 도움이 되는지, 경제를 개방하면 외국인 투자가 정말 늘어나는지 등 우리 시대의 현안들에 대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책이나 영화 등을 소재로 유쾌하면서도 신랄하게 답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