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문화·여행

세상다담 2011. 9. 7. 00:08

 

  

 

 

다음 날 아침, 나는 밝은 햇살을 받으며 소렌토 마리나(요트나 모터보트 따위의 정박지)를 향해, 경사가 매우 심하면서도 아름다운 비아 다 마이오 도로를 따라 걸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카프리는 별로 볼 것도 없었다. 항구 주변에는 보기 흉한 상점이며 카페, 페리 예약 사무소 등이 나른하게 서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이런 업소들은 전부 닫혀 있는 것 같았고, 주변에는 부두에서 한가하게 밧줄을 감고 있는 뽀빠이 팔뚝을 한 선원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도로는 가파른 경사를 이루며 산비탈을 향해 나 있었다. 그 옆에는 ‘카프리 6km’라고 씌어진 표지판이 서 있었다! “ 6km라고? ”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나는 믿을 수 없으리만치 쓸모없는 이탈리아 여행 책자를 두 권이나 갖고 있었단 말이다. 너무 쓸모가 없어서 제목을 싣는 일조차 하고 싶지 않을 정도니, 둘 중 한 권은 제목이 『이탈리아 가자(Let's go Italy)』가 아니라 『다른 가이드북 사러 가자(Let's Go Get Another Guidebook)』이었어야 한다고만 해두자. 다른 한 권은 포더에서 나온 책이었는데(앗, 결국 이름을 밝히고 말았다!), 둘 중 어디에서도 깎아지른 산을 몇 킬로미터나 올라가야 카프리 시내가 나온다는 말은 전혀 언급도 하지 않았다. 두 권은 모두 페리에서 살짝 뛰어내리면 바로 카프리 시내인 듯이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두에서 본 카프리 시내는 구름 속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산 위까지 올라가는 케이블 철도라고 할 수 있는 푸니콜라레는 물론 운행하고 있지 않았다. 버스나 택시, 심지어 당나귀라도 있나 싶어 주변을 돌아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어서 나는 결국 한숨이나 내쉰 다음 긴 등산을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산길은 매우 가팔랐지만 아름다운 빌라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경치로 조금 위안이 되었다. 길은 뱀이 지나간 자리처럼 S자 모양으로 길고 구불구불했다. 그러나 1.5km 정도 올라가자, 덤불숲에서 나온 가파르고 이리저리 꼬인 계단들이 눈에 띄었다. 더 가파르기는 했지만 카프리 중심부까지 가는 지름길인 듯했다. 나는 그리로 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토록 끝없는 계단은 내 평생 본 적이 없었다. 계단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계단 양쪽은 회반죽으로 칠한 빌라의 벽에 면해 있었고, 향내 나는 관목이 계단 위에 늘어져 있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매혹적이 광경이었지만 이런 가파른 계단을 300개쯤 오르고 난 뒤에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땀으로 범벅이 된 나머지 아름답든 말든 감상할 여력이 없었다.

  

산비탈은 지형이 불규칙해서 정상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 보이다가도, 모퉁이를 돌아서면 또다시 계단이 펼쳐지고, 마음은 또다시 저만큼 멀어져 있었다. 나는 계속 허우적허우적 벽에서 벽으로 비틀대며 걸었다. 그날 먹을 장을 봐서 검은 옷을 입고 걸어 내려가던 세 여인이 숨을 헐떡이고 새근대며 침을 흘리면서 걷는 내 모습을 대단히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았다. ‘카프리까지 올라가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가지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리라’는 생각만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 저 위에 뭐가 있는지는 몰라도 그건 온통 내 차지가 될 테니까. 마침내 주택들이 가까워졌고, 집들은 레고 블록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계단은 자갈돌로 된 가파른 골목길이 되었다. 마침내 아치 밑을 통과하여 한 발짝을 내딛자 내가 세상에서 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 나왔다. (광장은 독일인과 일본인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나는 호텔 카프리에 방을 잡았다.
“ 이름 한 번 잘 지었군요. 이름 생각해 내는 데 시간 좀 걸렸겠는데요? ”

 

 : 발칙한 유럽산책, 235~237쪽, 빌 브라이슨, 21세기북스, 2011.4.15. (1판 14쇄)

  

 

 

Capri, Italy. (and The Blue Grotto)

 

 

※ 카프리 섬(이탈리아어: isola di Capri)은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 주 나폴리 현에 딸린 섬으로, 나폴리 만 입구, 소렌토 반도 앞바다에 위치한다. 섬 전체는 용암으로 뒤덮여 있으며, 온난한 기후와 아름다운 풍경의 관광지로 유명하다. 특히 로마 시대부터 알려진 ‘푸른 동굴’은 길이 53m, 너비 30m, 높이 15m의 해식동굴인데 햇빛이 바닷물을 통해서 동굴 안을 푸른빛으로 채운다.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 8점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저자에게 여행은 뭔가를 얻기 위한 노력이라기보다 그 시간을 즐기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때문에 책에는 유럽에 대한 정보보다 작가가 그려낸 인간적인 모습의 유럽이 담겨져 있다. 때로 특정 민족과 그 문화에 대한 비판이 거침없이 드러나지만, 그의 독설과 풍자는 누군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무릎을 치며 웃게 만든다.

 


 

     

덴마크 사람들은 바보스러우리만치 법을 잘 지킨다. 덴마크에서 가장 심각한 범죄라야 자전거 절도다. 우연히 입수하게 된 1982년 자료에 의하면 그해 코펜하겐에서는 살인 사건이 6건뿐이었다고 한다. 유사한 규모의 도시인 암스테르담의 205건, 뉴욕시의 1688건과 크게 대조되는 수치다. 코펜하겐은 치안 상태가 너무도 좋아서 마르그레테 여왕은 아말리엔보르 궁에서 상점가까지 평범한 시민처럼 매일 아침 걸어서 꽃과 야채를 사곤 했다고 한다. 그때 여왕을 경호했던 한 덴마크 사람에게 정말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놀란 표정으로 답했다. " 우린 모두 그러는데요? "

: 발칙한 유럽산책, 172쪽, 빌 브라이슨, 21세기북스, 2011.4.15. (1판 14쇄)
스웨덴의 사회주의는 부와 성공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었다. 국민 모두를 가난하고 낙후된 국영 기업의 노조 대표로 만드는 것이 사회주의자들의 주요 목표인 영국과는 판이하다. 스웨덴은 수년 동안 내게 완벽한 사회의 전형으로 보였다. 그 완벽성을 위해 치른 대가가 살인적인 물가와 즐거움이라고는 전혀 없는 삶의 방식이었다는 사실만 해도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하물며 온 천지에 널린 쓰레기와 식자층의 몰상식한 노상방뇨라니, 이건 정말 해도 너무 했다.

: 발칙한 유럽산책, 201쪽, 빌 브라이슨, 21세기북스, 2011.4.15. (1판 14쇄)
스위스의 미덕 중 하나는 바로 국민들이다. 이들은 청결하고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며, 준법정신이 투철하고 근면하다. 실은 너무 근면한 나머지 국민들은 70년대에 실시된 국민 투표에서 주당 근로 일수를 줄이는 데 반대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문제다. 이들은 심각하게 무덤덤하고 지독히도 보수적이다. 전 유럽이 학생들의 혁명으로 들끓었던 1968년에 제네바에 살았던 내 친구 하나는 제네바에서도 학생들이 봉기를 하기로 했다가 경찰이 허가를 내주지 않자 시위를 취소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1971년까지 여성에게는 투표권도 없었다. 전 세계에서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지 50년이나 지난 후에야 스위스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졌고, 스위스의 아펜젤 이너호덴에서는 1990년까지 주정부 투표에서 여성이 배제되었다. 이들은 점잔을 빼고 무자비할 정도로 이기적인 성향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수십만 명이나 데려오면서도 시민권 주는 것은 거부했다. (스위스에서 다섯 명 중 한 사람은 외국인이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외국인 노동자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 발칙한 유럽산책, 295쪽, 빌 브라이슨, 21세기북스, 2011.4.15. (1판 14쇄)
여행서적을 보는 즐거움도 여행을 하는 것만큼 보람되고 행복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네. 이 작가 글은 무척이나 시원통쾌해서 더욱 즐거웠어요. ^^*
편집장 님도 오늘 행복한 하루 되셨겠죠?
우와~ 경치 멋있다.
푸른 동굴, 정말 신비롭죠? ^^*
사실 정보는 인터넷만 뒤져도 나오는 거니깐요~
여행을 하면서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게 더 좋은 여행책일지 몰라요~^^
저도 이 책 읽을까 말까 하고 있었는데... 지금 읽는 책 다 읽고 읽어봐야겠어요~^^
빌 브라이슨... 정말 까칠하답니다.
그런데도 왠지 끌리더라구요. ^^*
작년에 여행에 관한 책 중, 후지와라 신야의 '동양기행1,2'를 읽었습니다.
다소 주관적입장에서 그 나라의 특정한 장소에서 경험한 것에 대한 감성풍부한 글이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우리나라 여행작가 이지상 님의 ' 낯선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다면' 은
여행에 대한 자세나 관점, 느낌 경험등을 세세히 적혀 있어서,
여행에서 내가 무엇을 느끼고 왜 여행을 필요로 하는 지에 대해
숙지할 수 있었고, 여행에 대한 총체적 내용을 산문형식을 빌어 기술한 참 좋은 책이었습니다,

세상다담님이 소개한 책
'유럽여행' 은 어떠 책일 까 참 궁금하네요.
음...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읽은 책을 간단히 요약해 놓곤 하는데... 이렇게 적어 놨었네요. ^^*

"유럽. 인류의 가장 세련된 문화가 숨쉬는 곳? 천만에. 까칠한 빌 브라이슨에겐 똑같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일뿐."

이젠 영국에 거주하는 미국인, 빌 브라이슨이 젊었을 때 여행다녔던 유럽을 다시 한 번 똑같이 다녀본답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요? 모든 것이 그 때처럼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은 것은 왜일까요? 유럽 각 국가별, 민족별 단점들을 콕콕 짚어 나열키도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똑같고, 어디나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란 그의 바탕 마음이 왠지 다정스럽게 다가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