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사회

세상다담 2011. 9. 14. 00:08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구멍과 그 구멍에 빠진 네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한다는 거야. 그래서 네가 큰길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 있는 거라고.” “하지만 구멍은 원래 여기에 있었어요!”

아니야. 구멍은 제가 지고 온 거야. 네 영혼에 붙여서. 네 마음 깊은 곳에 귀찮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득했을 거야. 게다가 죄책감까지 느끼고 있었을 테고. 그러다 이 길을 지나가게 되었고, 한적한 이 길에서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겠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거예요!” 마르크는 무척 놀랐다.

“자, 생각해 보렴. 생각을 해 봐.”

“무슨 생각을요?”

“그걸 모른다면 네가 아직 구멍에서 나올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거야.”

“준비가 되었다니까요! 도와주세요!” 마르크는 거지에게 손을 내밀었다. (…)

  

 

“한번 해 보자꾸나.” 거지가 한숨을 쉬었다.

“가슴까지만 빠졌으니, 사분의 삼이라……. 좋아. 나는 완전히 빠졌었거든. 내가 빠진 구멍은 어마어마해서 그냥 묻혀 버렸지.”

두 사람은 손을 굳게 맞잡았다. 거지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는 힘껏 마르크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마르크는 1센티미터도 올라오지 못했다.

“계속하세요! 계속하세요!”  “하고, 있잖, 아…….”

하지만 아무리 젖 먹덕 힘까지 써 가며 애를 써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거지는 기침을 쿨럭이며 나자빠졌다. (…)

 

 

아무도 자신을 구멍에서 꺼내 줄 수 없을 것이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 엄마들, 연인들, 시각 장애인, 경찰들, 기자처럼. 그들은 서로 바라보았다. 거지는 힘없이, 마르크는 절망에 빠져…….

“미안하구나, 얘야.” 거지가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요?”

“그 순간이 오면 나올 수 있을 거야. 그 전에는 안 돼.”

“어떤 순간요?”

“네가 구멍을 이기는 순간.”

“구멍을 이긴다고요? 그럼 아저씨처럼 일주일이나 지나야 된다고요?”

중요한 것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네가 구멍을 이기고 나올 수 있느냐야.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아질수록 마르크는 우울해졌다. 이 아저씨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만일…….

“가실 거예요?” 남자가 손수레 손잡이를 잡는 것을 보고 마르크가 물었다.

“나도 내 길을 가야지.”

“도와달라고 말씀 좀 해 주세요.”

지금 네게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도움이 아니라 바로 너 자신을 이기는 거야. 아까도 말했잖아.

“하지만…….”

“생각을 해라, 얘야. 생각을. 어제 네가 이 거리에서 왜…….”

왜라니? 거지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너는 꼭 나올 수 있을 거야.” 애정이 담긴 미소를 지으며 거지는 마르크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 구멍에 빠진 아이, 135~139쪽, 조르디 시에라 이 화브라, 다림, 2009.2.17. (초판 1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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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느닷없이 구멍에 빠져 버린 소년 마르코. 빠진 이유와 빠져 나올 방법보다, 우리 가슴을 더 아프게 하는 건... 바로 마르코를 향한 우리들의 대답입니다. "도와주세요!" "내 나이에? 골치 아픈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 "천사들을 데리고 조용히 산책하는 엄마들을 방해하다니...", 신사는 말없이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마르크에게 던졌다, "어떻게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겠어요. 아이들은 행복하니까요.", "비켜서란 말이다! 장님이 오면 길을 비켜 주는 법이야.", "네가 지옥 한가운데 있는 구멍에 빠졌다면 도와줄 수도 있을 게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란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구멍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지금도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또다른 구멍에 빠져 있는 누군가에게, 조금 더 나은 대답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

 

 

 

  구멍에 빠진 아이 - 10점
  조르디 시에라 이 화브라 지음, 리키 블랑코 그림, 김정하 옮김/다림

 

황당하고 독특한 이야기 속에 담긴 삶의 철학과 날카로운 풍자가 담긴 이야기. 열 살짜리 평범한 꼬마, 마르크.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엄마 아빠가 별거 중이라는 점. 그날도 주말을 맞아 아빠 집으로 가는 길에 구멍에 빠진 것이다. 너무나 당황스러워 화도 내보고 힘도 써보지만 구멍은 더 단단히 몸을 조일 뿐이다. 결국 마르크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마르크의 얘기는 들어줄 생각도 안 하고 잔뜩 자기 얘기만 늘어놓고 가 버린다.

 


 

     

개는 한숨을 쉬고 나서 결론을 내리듯 한마디 더 덧붙였다. “나는 지금 아주 오랜만에 사람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 네가 내 말을 알아듣는다면, 그건 우리가 크기도 같고 수준도 같기 때문일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니, 모르겠는데.” “비슷한 사람들끼리만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단 말이야. 서로가 상대방보다 더 잘났다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다고. 그게 인간들의 문제야. 개들도 말을 하지만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할 뿐이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란 말이지.” “그게 그렇게 쉬운 문제야?” “물론이지. 진실은 언제나 가장 단순하니까.”

: 구멍에 빠진 아이, 58쪽, 조르디 시에라 이 화브라, 다림, 2009.2.17. (초판 1쇄)
“뭐 하나 알고 싶지 않으세요?” 마르크는 쓸쓸한 눈으로 기자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있는 절반 정도의 사람들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적당히 행동해요. 나머지 반은 자신을 평범하다고 생각하면서 세상에 묻혀 자신만을 위해 살고요.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특권을 누리고 싶어 해요.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이나 눈보다는 영혼이 먼 시각 장애인들처럼요. 그리고 자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 안에 갇혀 살아요. 허둥지둥 길을 지나던 부부나 아이를 데리고 가는 엄마들이나 다 똑같았어요. 각자 자기들만 생각했지요. 마치 뚝 떨어진 하나의 섬처럼요.”

: 구멍에 빠진 아이, 109쪽, 조르디 시에라 이 화브라, 다림, 2009.2.17. (초판 1쇄)
“나도 너처럼 모든 일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 “너보다는 내가 더 많이 살았잖아. 하지만 내가 모든 일에 다 확신을 갖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 한 가지만 기억해. 똑똑한 사람들은 언제나 뭔가를 궁금해하고 토론을 해. 한데 게으른 사람들은 언제나 모든 일에 대해 확신에 차 있어. 달리 이야기해볼까? 이 세상의 문제는 게으른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항상 확신을 갖고 있는 반면에 현명한 사람들은 의심에 차 있다는 거야.”

: 구멍에 빠진 아이, 146쪽, 조르디 시에라 이 화브라, 다림, 2009.2.17. (초판 1쇄)
세상에 문제가 생기는 근본적인 원인은,
어리석은 사람들은 확신에 차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의문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 버트런드 러셀
우리 시대의 자화상과 같은 작품이군요. 잘 보았습니다.
한가위 명절은 잘 보내셨는지요? 이제 새로운 시작입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네. 요즘 예리한 아동문학에 문득문득 마음을 챙겨보게 됩니다.
편집장 님, 우리 함께 명절증후군 극복해요. ^^*
음... 잘 읽어 보았습니다. 요약해 두니 이 작은 책 속에 참 깊고 심오한 내용이 있었던것 같네요.
문득문득 보여지는 책의 표지는 아이들이 읽는 동화라는 이유로 무시한 게 아닌가 싶어요.
어쩌면 나 자신도 나 혼자만의 구멍에 빠져 주변을 보지 못했던건 아닌가 싶네요.
먼저 키높이를 낮추고 마음을 열어야 좀더 잘 보여지지 않을까 싶네요.
네. 생각해보면 정말 우리는 우리 자신만의 구멍들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오직 자신의 높이에서만 보이는 사람들을 전부라고 믿고 지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