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미래

세상다담 2012. 3. 1. 01:23

 

  

 

   

조선시대에 들어 중국 통일제국의 힘은 조선이 맞서기엔 너무 거대해져서 조선은 자립과 안전을 보장받는 대가로 사대주의 노선을 택하게 되었어. 명나라가 쇠하고 만주의 금(金)나라가 강성해지는데도 조선은 금과의 친선을 거부하고 친명 정책을 고수하다가 만주족의 대대적인 침략을 두 번이나 받았고 조선 왕실은 강화도로,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떠났지. 중국의 침략만이 아니야. 일본 침략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변화하는 외세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내부 권력 투쟁에 온 힘을 쏟던 조정은 결국 1592년 일본의 대대적인 침략을 받았고 조선 정부는 황급히 신의주로 피신했어. 지배 계급이 떠나자 모든 재난은 남은 백성들의 몫이 될 수밖에……. 북한이 1950년 6월 25일 전면적인 남침을 개시해 한국 전쟁이 터지자 국민들에게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방송을 내보내면서 서울을 사수하겠다고 장담하던 한국 정부는 북한군의 남진을 늦추기 위해 한강 다리를 끊어버리고 황급히 부산으로 정부를 옮겨버렸지. 정부만 믿고 서울에 남았던 시민들이 당한 고초야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

 

자, 이러한 환난과 외적 침입의 소용돌이에서 백성들이 뼈저리게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왕과 조정은 나와 내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지 못한다. 나와 내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사람은 나 자신 외엔 아무도 없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백성들은 낫과 죽창을 들었고 거대한 침략 세력에 분연히 일어나 맞서 싸웠던 거야. 백성을 지켜야 하는 의무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지배계급. 이들에 대해 백성들이 갖는 심정은 어떠했을까? 끝없이 반복되던 외적의 침략에 시달려야 했던 한반도의 백성들은 지배 계급에 대한 불신과 냉소주의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이웃과 하나 되는 공동체 의식을 지니게 되었지. 험난한 역사에서 비롯된 이러한 의식은 지금까지도 한국인들의 기본 정서로 깔려 있어. 이는 곧 한국인들이 지배 계급을 불신하고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 드센 민족성을 지니고 있다는 얘기야. 자신과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 이웃과 힘을 합쳐야 했던 만큼 한국인의 공동체 의식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강하다고 할 만하지. 농업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널리 행한 두레, 품앗이 전통이 그 대표적이 예야.

 

(…) 지배 계급에 대한 불신과 냉소, 자신을 지키기 위한 공동체 결성은 이미 조선 사회부터 한국인의 의식에 뿌리박힌 수평적 구조로 드센 국민성에 가미되어 수직적 사회구조에 굴복하지 않는 저항 의식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지.

 

두레, 품앗이로 상징되는 한국인의 공동체 의식은 구성원이 모두 동등하다는 수평적 의식이 그 기본으로 공동체 안에서 동등한 위치를 벗어난 구성원은 스스로 그 공동체를 떠나거나 떠밀려서 떠날 수밖에 없어. 한국 사회의 공동체란 구성원간의 수평적 관계가 전제 조건인 셈이야. 수평적 관계에서 남보다 크게 앞서는 것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남보다 뒤지는 것으로, 한국적 공동체의 필수 조건인 평등관계를 깨뜨리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야. 자존심이 강한 한국인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즉 공동체 구성원에게 뒤떨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지. 그래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도 생긴 거야. 가장 가까운 사람이 잘되는 것을 곱게 보지 못하는 심리는 질투라기보다는 ‘내가 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해석일걸. 남에게 뒤떨어진다는 사실은 곧 자신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것은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면목이 서지 않는 치명적인 것으로, 다시 말해 ‘체면’을 잃는 것이지. 한국인들이 체면을 생명처럼 여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 그래서 한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은 바로 체면을 상하게 하는 말들이야. 이런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한국인들은 음식 값을 서로 내겠다고 다투는데 이런 장면은 다른 나라에선 구경하기 어렵지.

 

이처럼 한국인들에겐 아직까지도 잠재의식 깊숙이 공동체 의식이 자리 잡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두레 의식은 변함없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 앞에서 설명한 대로 한국인에겐 자기 방어를 위해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보니 결국 사회 속에서의 자신이란 결코 ‘혼자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이며 공동체 안의 하나로 인식되지. 공동체에 속하면 반드시 공유(公有), 즉 함께 소유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이는 정신적, 물질적으로 일정부분을 함께 지니는 것이며 이 공유 부분을 한국인들은 정(情)이라고 불러. 친구의 경우, 친할수록 공유 부분이 커지고 이 공유 부분의 크기가 곧 정의 깊이가 되기도 하지. 이 점은 이웃 나라 일본인들은 물론 외국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인들의 특징이기도 해. 일본인들은 절대로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을 체질화하여 공동체 안에서도 철저하게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있어. 이에 비해 공유부분이 클수록 관계가 더욱 끈끈해지는 한국인들은 자신의 영역 일부가 침범당해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상대방 영역의 일부를 침범하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해. 이런 점은 작게는 친구 관계부터 이웃 관계는 물론 직장에서도 그렇고 넓게는 한국인들의 공동체까지도 해당되지. 만약 이런 공유 부분이 부담스러워서 이를 거부할 경우에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어.

 

그러나 정(情)으로 연결된 한국인의 공동체는 철저하게 배타적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지. 남을 공격하기보다는 외부의 위험을 막고 공동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목적을 지닌 공동체이므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 이외에는 모두 투쟁의 대상이거나 철저한 무관심의 대상이고 자신의 공동체 이익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싸우지만 심한 경우에는 집단 이기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있어. 가령 한민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에서 장애인 시설을 늘려야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자기 집 근처에 짓는다고 하면 지역 공동체의 이익에 어긋난다고 반대하는 경우도 있고, 지면 곧 끝장이라는 강박관념에서 대화나 타협보다는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하지. 그러나 보니 서로 다른 공동체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고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이해관계가 얽힌 ‘밥그릇 싸움’은 더욱 극단적으로 되기 쉬어. 약사들과 한의사들 간의 대립만 봐도 그래. 같은 성격의 공동체이면서도 입장이 서로 다르니까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것도 폐쇄적인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어.

 

한국의 공동체들이 구성원들의 보호를 위해 존재하다 보니 한국인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많을수록 자기 방어에 유리해지고 자신의 보호는 물론, 사회에서 유리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 여러 공동체에 가담하는 사람이 많아. 한국 사회에서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폭넓은 공동체에 몸담아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사람일수록 힘을 가지게 되는 거라고. 공동체 구성원들은 품앗이하듯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면서 ‘연줄’을 만들고 외부에 대해서는 배타적이어서 공동체들은 폐쇄적이게 마련이야. 학연, 혈연, 지연 등으로 이루어진 공동체 의식으로 직장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에 편 가르기, 연고주의가 광범위하게 뿌리내려 있고 심지어는 지역간에서 지역감정이 심각해. 국민 화합과 국가 발전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어 있어.

 

드센 국민성과 지배 계급에 대한 불신과 냉소주의. 여기에 배타적 공동체주의, 즉 끼리끼리만 똘똘 뭉치되 공동체 안에서도 남에게 지면 안 된다는 철저한 평등 사상과 경쟁심이 자신보다 뛰어나거나 우수한 존재는 인정하지 못하는 강한 자존심을 심어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과격하고 극단적인 민족이 되었던 거라고.

 

 

: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제9권 우리나라, 123~134쪽, 이원복, 김영사, 2011.8.27. (1판 176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