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사회

세상다담 2012. 6. 8. 22:50

 

 

   

 

 

   “ 유정아…… 고모는…… 위선자들 싫어하지 않아. ” 뜻밖의 말이었다.

 

   “ 목사나 신부나 수녀나 스님이나 선생이나 아무튼 우리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위선자들 참 많아. 어쩌면 내가 그 대표적 인물일지도 모르지…… 위선을 행한다는 것은 적어도 선한 게 뭔지 감은 잡고 있는 거야. 깊은 내면에서 그들은 자기들이 보여 지는 것만큼 훌륭하지 못하다는 걸 알아. 의식하든 안 하든 말이야. 그래서 고모는 그런 사람들 안 싫어해. 죽는 날까지 자기 자신 이외에 아무에게도 자기가 위선자라는 걸 들키지 않으면 그건 성공한 인생이라고도 생각해.

 

   고모가 정말 싫어하는 사람은 위악을 떠는 사람들이야. 그들은 남에게 악한 짓을 하면서 실은 자기네들이 어느 정도는 선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위악을 떠는 그 순간에도 남들이 자기들의 속마음이 착하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래. 그 사람들은 실은 위선자들보다 더 교만하고 더 가엾어…….

 

   바보같이, 지금 그거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야? 하고 나는 묻지는 않았다. 그런데 가슴 한구석, 내가 보여주기 싫어하는 내 속옷 깊은 곳의 흉터를 보여주는 것처럼 수치심이 몰려왔다. 나는 앞에 가는 승합차를 한 대 추월해버렸다. 차가 휘청하자 고모가 손잡이를 잡았다.

 

   “ 그리고 고모가 그것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아무 기준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남들은 다 남들이고 나는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물론 그럴 때도 많지만 한 가지만은 안 돼. 사람의 생명은 소중한 거라는 걸, 그걸 놓치면 우리 모두 함께 죽어. 그리고 그게 뭐라도 죽음은 좋지 않은 거야……

 

   살고자 하는 건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에 새겨진 어쩔 수 없는 본능과 같은 건데, 죽고 싶다는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다시 거꾸로 뒤집으면 잘 살고 싶다는 거고…… 그러니까 우리는 죽고 싶다는 말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말해야 돼. 죽음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하는 건, 생명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기 때문이야…….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라구? 누군데? 누가? 지가 뭔데 그러래! 하고 묻고 싶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가끔 너를 생각하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네가 위악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고모는 네가 그럴까봐 그게 싫어. 가슴이 너무나 아파…… 착한 거, 그거 바보 같은 거 아니야. 가엾게 여기는 마음, 그거 무른 거 아니야. 남 때문에 우는 거, 자기가 잘못한 거 생각하면서 가슴 아픈 거, 그게 설사 감상이든 뭐든 그거 예쁘고 좋은 거야. 열심히 마음 주다가 상처 받는 거, 그거 창피한 거 아니야…… 정말로 진심을 다하는 사람은 상처도 많이 받지만 극복도 잘하는 법이야. 고모가 너보다 많이 살면서 정말 깨달은 거는 그거야. ”

 

   나도 그 정도는 알아, 안다구, 하고 나는 말할 뻔했다. 그건, 나를 치료하고자 했던 신경정신과 의사들 앞에서 언제나 하던 말이었다. 그래, 유정이 너 아는 거 많지. 네가 나름대로 정신과에 관련된 서적 많이 읽은 것도 안다. 그런데 유정아, 아는 건 아무것도 아닌 거야. 아는 거는 그런 의미에서 모르는 것보다 더 나빠. 중요한 건 깨닫는 거야. 아는 것과 깨닫는 거에 차이가 있다면 깨닫기 위해서는 아픔이 필요하다는 거야, 라고 외삼촌은 말했었다. 더 아프기 싫어요, 라고 나는 대꾸했었다. 아마 까르르 웃었던가?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158~160쪽, 공지영, 푸른숲, 2005.6.25.(첫판6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6점
  공지영 지음/오픈하우스

 

한 여자가 있다. 나이는 서른 살, 살아 있을 이유도 살아갈 의지도 희망도 없다고 믿는 유정이라는 이름의 여자.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으로 인해 피폐하고 위태롭게 살아가는 그녀는 삶에 발붙이지 못하고 목숨을 끊으려 한다. 세 번째 자살시도 후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지루한 치료과정 대신 수녀인 고모를 따라 한 달간 사형수를 만나는 일을 택한다. 자신이 마음을 내주는 유일한 사람인 모니카 고모의 간곡한 청이었기에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따라나선 것.

 


 

     

죽음의 열차라는 것을 타고 싶다고 생각하고 나면, 세상의 가치들이 모두 헤쳐 모여, 했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중요해지지 않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 중요해졌다. 죽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왜곡된 것도 많았지만 제대로 보이는 것 또한 많았다. 죽음은 이 세상의 가치 중에서 최고의 영예를 누리고 있는 모든 소유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돈, 돈, 돈 하면서 돌아버린 이 세상에서 그것을 비웃을 수 있는 어쩌면 가장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었고, 누구나 한 번은 겪어야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201쪽, 공지영, 푸른숲, 2005.6.25.(첫판6쇄)
행위는 사실일 뿐, 진실은 늘 그 행위 이전에 들어 있는 거라는 거, 그래서 우리가 혹여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거……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205쪽, 공지영, 푸른숲, 2005.6.25.(첫판6쇄)
깨달으려면 아파야 하는데, 그게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아프려면 바라봐야 하고, 느껴야 하고, 이해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깨달음이 바탕이 되는 진정한 삶은 연민 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민은 이해 없이 존재하지 않고, 이해는 관심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관심이다.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248쪽, 공지영, 푸른숲, 2005.6.25.(첫판6쇄)
기도해주거라. 기도해. 사형수들 위해서도 말고, 죄인들을 위해서도 말고, 자기가 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나는 안다고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 위해서 언제나 기도해라.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305쪽, 공지영, 푸른숲, 2005.6.25.(첫판6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