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사회

세상다담 2012. 6. 25. 02:01

 

 

 

 

정호경 신부님. 마지막 글입니다.

 

   제가 숨이 지거든 각각 적어놓은 대로 부탁 드립니다. 제 시체는 아랫마을 이태희 군에게 맡겨 주십시오. 화장해서 해찬이와 함께 뒷 산에 뿌려 달라고 해 주십시오. 지금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3월 12일부터 갑자기 콩팥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뭉퉁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었습니다. 지난 날에도 가끔 피고물이 쏟아지고 늘 고통스러웠지만 이번에는 아주 다릅니다. 1초도 참기 힘들어 끝이 났으면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됩니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재작년 어린이날 몇 자 적어 놓은 글이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2007년 3월 31일 오후 6시 10분

권정생

 

 

 

 

권정생 (權正生, 1937~2007))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경북 안동 일직면에서 마을 교회 종지기로 일했고, 빌뱅이 언덕 아래 작은 흙집에서 살았다. 전쟁과 가난 때문에 얻은 병마와 싸우면서 작고 약한 것들에 대한 사랑으로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한국 아동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면서 자연을 파괴하는 문명의 횡포를 비판한 사상가이자 전쟁을 반대하고 통일을 염원한 평화주의자, 교회의 잘못을 꾸짖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2007년 5월 17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쟁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걱정하였고, 인세를 어린이들에게 써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1969년 기독교아동문학상에 단편동화「강아지똥」이,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무명 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었고, 19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강아지똥』 『사과나무 밭 달님』 『몽실 언니』 『바닷가 아이들』 『점득이네』 『하느님의 눈물』 『밥데기 죽데기』 『랑랑별 때때롱』 등 많은 어린이책과 소설 『한티재 하늘』,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산문집『우리들의 하느님』 들을 펴냈다.

 

 

 

 

 

 

■  재작년 어린이날 몇 자 적어 놓은 글(2005년)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 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 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 다녀 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은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 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것이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 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 저기 뿌려 주기 바란다. 유언장 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 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 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 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0일 쓴 사람 권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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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