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사회

세상다담 2012. 7. 26. 06:12

   

   

 

   

선백의 생애 - ②

윤일주 ( 註. 윤동주 시인의 친동생 ) 

 

 

   상경하자 두분 다 연전 ( 註. 1938 ~ 1941, 연희전문학교 문과, 現 연세대학교 ) 에 입학하고 그후부터 집에 오기는 1942년까지 매년 2회 여름과 겨울 방학 때뿐이였습니다. 따라서 그 시절의 나도 추억도 단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눈앞에 선한 그 정답던 모습은 사각모에 교복을 입은 형님이 아니라 베바지, 베적삼에 밀짚모자를 쓰고 황소와 나란히 서있는 형님입니다. 고향에 돌아오면 그날로 양복은 벗어놓고 우리 옷으로 바꾸어 입고는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일을 도왔습니다. 소꼴도 베고 물도 긷고 때로는 할머니와 마주앉아 매돌도 갈며 과묵하던 그도 유머를 섞어가며 서울이야기를 하던것입니다. 이러한 생활속에서도 남몰래 쉬는 한숨을 나는 옆에서 가끔 들은듯합니다. 그것은 사소한 일로 상함을 입어 끓어오르는 시흥집안 어른들의 일을 돕지 않고는 마음을 놓지 못하였습니다. 관유함이 그의 의지를 지탱케 못하였을지나 결코 우유부단하지는 않았습니다.

  

   룡정 ( 註. 現 중국中國 지린성吉林省 옌볜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룽징시龍井市 ) 은 인구 10만명에 가까운 작지 않은 도시였으나 대학생인 그는 아무 쑥스러움 없이 베옷을 입은 채 거리로 소를 이끌고 다녔습니다. 그럴 때에도 그는 릴케나 발레리의 시집 또는 지이트이 책을 옆에 끼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초저녁이면 의례 하는 산책에 동생인 나는 그의 손목을 잡고 같이 거니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였는지 모릅니다. 가로수가에서 북원백추(北原白秋)의 “고노미찌”를 콧노래로 부르기도 하고 숲속에 앉아 새로 뜨는 별과 먼 강물을 바라보며 손깍지를 낀채 묵묵히 앉았을 때에는 그의 얼굴에 무슨 동경과 감정이 끓어오름을 년소한 나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작로를 걷다가도 부역하는 시골아낙네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고싶어하고 골목길에서 노는 아이들을 붙잡고 귀여워서 함께 씨름도 하며 한포기의 들꽃도 차마 못 지나치겠다는 듯 따서 가슴에 꽂거나 책갈피에 꽂아놓군 하였습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註. 1941. 11. 20. 作, "서시" 中에서 )

  

   하는 연약한것에 대한 애정의 표백은 그의 천품의 기록이였습니다. 방학때마다 짐속에서 쏟아져나오는 수십권의 책으로 한 학기의 독서의 경향을 알수 있습니다. 나에게 고가와동화집을 주며 퍽 좋다고 하던 일과 수필과 판화지 《백과 흑》 7, 8권을 보이며 판화가 좋아 구독하였으며 기회가 있으면 자기도 목판화를 배우겠다고 하던 일이 기억됩니다. 이리하여 집에는 근 8백권의 책이 모여졌고 그중에 지금 기억할수 있는 것은 앙드러지이드전집 기간분 전부, 도스토예프스키 연구서적, 발레리시전집, 프랑스명시집과 키에르케고르의것 몇권, 그밖에 원서(原书) 다수입니다. 키에르케고르의 것은 연전 졸업할즈음 무척 애찬하던것입니다.

  

   1941년 12월, 연전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졸업장과 함께 정성스럽게 쓴 시고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들고 왔었습니다. 그것은 초판 77부로 출판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채 소중히 지니고 다녔습니다.

 

     

                      서 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더 공부하고싶었던 그는 1942년 “참회록”이란 시를 써놓고 도일하여 립교대학에 적을 두었습니다. 그간 마지막으로 집을 떠난 것은 그해 7월 여름방학 때였습니다. 그때에는 병환으로 누워계시는 어머님의 침대에 걸터앉아 이야기동무로 며칠을 보내다가 뜻밖에 속히 떠나게 되었습니다. 동북대학에 있던 한 친우의 권유로 이 학교 입학수속 치르러 오라는 전보까닭이였습니다. 놀이터에서 돌아온 나는 그가 떠났음을 알자 눈물이 글썽하였습니다. 늘 정거장에서 맞고 바래주던 그와 그렇게 헤여짐이 최후의 작별이 될줄이야 어찌 알았겠습니까. 떠나면서도 어머님걱정을 뇌이고 또 뇌이더랍니다. 아마 운명때까지 눈앞에 어머님의 모습만 어른거렸을것입니다.

  

   동북대학 ( 註. 1942, 당초 일본 미야기현 도호쿠東北대학이 아닌 도쿄東京 릿교立教대학 영문과에 입학 ) 에 간줄안 형에게서 무슨 의도에서였는지 동지사 ( 註. 1942 ~ 1943, 교토京都 도시샤同志社대학 ) 영문과로 옮겼다는 전보가 오자 아버지는 좀 노여운 기색이였습니다. ( ③ 에서 계속 )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82~191쪽, 윤동주, 연변인민출판사, 2011.2.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10점
  윤동주 지음, 신형건 엮음/보물창고

 

기존의 판본과 달리 어린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윤동주의 동시들을 제2부에 모아 놓았다는 점,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는 '청년 윤동주'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산문을 수록했다는 점, 그리고 시인의 극적인 생애와 시 세계와의 연관성을 짐작해 볼 수 있도록 상세한 연보를 덧붙였다는 점 등이 이 책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