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사회

세상다담 2012. 11. 25. 23:42

 

  

  

심사평 - 어린이 눈높이에서 현실을 장악하다

  

   이원수와 권정생을 잇는 우리 어린이문학의 저류에는 분단의 현실을 자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민족문학적 담론이 면면히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동화 장르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한 지난 십 년 동안 이런 현실주의적 전통을 이어 가는 작품을 쉬 만날 수 없었다. 이는 90년대 초반 사회주의권의 몰락 이후 민족과 같은 거대 담론에서 개인과 같은 미시 담론으로 관심사가 이동한 한국 문학의 전반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분단 체제는 우리 사회를 상식 이하 수준으로 끌어내리곤 한다.

  

   분단 체제는 공기처럼 투명하게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있어 가끔 절대량이 부족할 때에나 답답함을 느낄 뿐 평상시에는 그 누구도 의식하며 살지 않는다. 전쟁과 이산을 겪은 세대가 점점 고령화 될수록 이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하지만 천안함 사태에서 보듯 이 민족 모순은 언제든 수면 위로 올라와 우리 숨통을 바싹 조일 만큼 거대한 뿌리를 갖고 있다.

  

   문학은 허구지만 때로는 실제 현실보다 더 명징하게 현실을 인식할 수 있게 한다. 이런 면에서 분단과 민족 문제는 우리 작가들이 놓쳐서는 안 될 긴장의 끈이다. 그러나 민족 문제를 ‘말하는 것’만으로 의미를 가졌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이 분단 체제를 공기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세대에게 ‘분단은 악, 통일은 선’이라는 낭만적 접근은 아무 의미가 없다. 지난 십 년 동안 소재와 주제의 확장을 통해 기존 동화의 통념과 금기를 깨 온 것처럼 이제는 우리의 전통적 현실주의 흐름을 불러내어 상상력을 갱신할 필요가 있다.

  

   제1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봉주르, 뚜르』의 등장은 이런 현실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엄마 아빠를 따라 프랑스로 간 주인공 봉주는 새로 이사한 집 책상 한 귀퉁이에서 한글로 쓴 ‘사랑하는 나의 조국, 사랑하는 나의 가족’, 그리고 ‘살아야 한다’라는 글자를 찾아낸다. 낯선 땅에서 발견한 의미심장한 한글 낙서에 자극을 받은 봉주는 이 낙서의 주인공을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봉주는 비밀에 쌓인 토시라는 아이를 만나고, 우리의 비극적 현실인 분단 문제를 접하게 된다.

  

   이 작품의 미덕은 단순히 분단 문제를 ‘소재’로 했다는 데 있지 않다. 최고 미덕은 시종일관 어른의 계몽 의지에 함몰되지 않고 현실 아이들의 사고와 시선을 장악한 채 서사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는 작품의 주요한 코드 중 하나인 ‘우정’의 생성과 헤어짐을 통해 완성된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미덕은 분단 문제를 말하기 위해 우정을 끼워 넣은 것도 아니고, 우정 뒤에 분단이 배경처럼 자리 잡은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봉주와 토시의 우정과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분단은 씨실과 날실처럼 교직되며 켜켜이 서사를 쌓아 간다. 우정과 분단 어느 한 요소라도 허술하게 짜였다면 이 작품의 전체 구조는 허물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런 구조 외에 감정의 과잉 없이 사건을 관조하며 현실 법칙에 따른 서술의 객관성을 유지해 나가는 문장 또한 돋보인다. 서술의 객관성을 확보한 문체는 무언가를 가르치고 이끌어야 한다는 동화의 통념을 벗어나 어린이의 시선을 유지하는데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한다. 그 밖에 추리소설적 방식을 차용하여 작품의 흥미를 잃지 않게 하면서도 문학적 진정성을 놓치지 않은 점, 서유럽 지역으로 우리 동화의 시공간을 확장해 나간 점 등을 높이 사 심사위원들은 큰 이견 없이 만장일치로 이 작품을 대상으로 결정했다.

  

   분단이나 통일이라는 말과 무관하게 살아가던 한 아이가 어떻게 우리 사회의 가장 첨예한 모순과 부딪치게 되는가를 섬세하게 보여 준 이 작가의 앞길은 아주 길고 멀리 뻗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유영진(어린이문학평론가)

예심 : 김리리, 김지은, 이현, 본심 : 유영진, 임정자, 장주식

 

  

: 봉주르 뚜르, 심사평(212~215쪽), 한윤섭, 문학동네, 2010.10.8.(초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