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영혼

세상다담 2013. 3. 31. 12:23

 

   

  

  

사랑은 타인의 자유에 대한 절대적 존중을 전제로 한다.

사랑하도록 강요받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수십억 개의 은하계로 구성된 거대한 이 우주에서 우리가 알기로 인간만이 자유를 부여받은 유일한 피조물이다. 거대한 우주에 비춰볼 때 너무도 미미한 존재일지라도 인간은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인간이 자유를 가진 존재이며, 이 자유가 그로 하여금 사랑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에 인간의 존엄성이 있다.

  

   사람들이 내게 “왜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는 걸까요?” 라고 물으면 나는 그저 이렇게 대답한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이지요.” 이 우주 전체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어딘가에 자유를 가진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행성에 사는 미미한 존재에 불과한 인간은 우주에 짓눌려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파스칼이 말한 것처럼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사랑하면서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우주보다 위대하다. 사랑이 있기 위해서는 대양과 빙하와 별만으로는 족하지 않으며 자유로운 존재들이 있어야만 한다. 인간의 자유는 때때로 두려움을 줄 수 있을지언정 소멸될 수는 없다. 다행히도 우리에겐 은총이라 부르는 하느님의 도움이 있다.

  

   나는 종종 배의 이미지를 이용해 이 문제를 설명한다. 우리의 자유는 돛을 펼치기 위해 밧줄을 잡아당기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배를 나아가게 할 수 없다. 바람이 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성령인 바람이 불더라도 돛이 퍼져 있지 않다면 그때도 배는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나아가게 하기 위해 우리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거기다가 기수를 정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에 방향을 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라고 나는 덧붙이고 싶다. 인간은 키를 잡고 돛을 편다. 그제서야 성령께서 그를 항구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자유가 잔혹한 결과로 인도할 수도 있다. 나는 사랑할 수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목적도 없이 자유롭기만을 원하고, 변덕에 따라 내 자유를 사용한다면, 그 자유는 금세 파괴될 것이다. 자유가 이것이나 저것을 할 수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가르칠 줄 몰랐다. 자유가 사랑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동물들도 사랑을 한다. 하지만 자유 없이 사랑한다. 동물들은 그들을 결정짓는 본성에 의해 사랑을 한다. 그들도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거나 죽임을 당하기도 하지만 새끼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그들과 싸울 것이고 본능에 따라서 행동할 뿐이다. 인간만이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자유는 교육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유는 개인의 자기중심주의에 봉사하는 것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그럴 경우 자유는 타인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게 될 것이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폭력과 전쟁과 끝없는 증오의 악순환을 낳게 될 것이다.

  

   그렇다, 자유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인간보다 동물을 좋아하는 게 아닌가 )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존재하기 위해 치러야 할 값이다. 자유가 없다면 사랑도 없을 것이며, 인생은 흥미도 의미도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하루는 한 여자 친구가 자신의 어린 딸과 나눈 얘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그녀가 딸에게 믿음에 대해 설명하던 중 어린 딸이 말했다. “그런데 엄마,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다니 하느님이 큰 실수를 하신 거예요! 자유가 없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이 별처럼 제자리를 돌며 절대로 싸우는 법이 없었을 테니까요.” 그러자 그녀의 엄마가 대답했다. “네 말이 맞다. 그런데 네가 말하는  그 실수를 하느님이 하지 않으셨더라면 너는 너를 사랑하는 엄마를 갖지 못했을 것이고, 나는 나를 사랑하는 딸을 갖지 못했을 거야. 우리는 그저 옆에 붙어 있는 자동인형 같았을 거야.” 그것이 어찌 좋겠는가?

  

: 단순한 기쁨, 105~108쪽, 피에르 신부, 마음산책, 2010.12.25. (1판33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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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이유, 『자유』 그리고 『사랑』

  

    

     

 

  단순한 기쁨 - 8점
  아베 피에르 지음, 백선희 옮김/마음산책

 

'프랑스 최고의' 혹은 '금세기 최고의 휴머니스트'라는 말이 따라붙는 1912년생 피에르 신부는 사르트르와 까뮈 등 '절망의 교사들'과는 정반대의 인생관을 설파한다. 그는 '부조리와 신비' 중에서 삶을 '단순한 기쁨'으로 채워주는 것은 신비라고 말한다. 삶은 어렵고 사람들은 악하기도 하지만, 그 속에 희망이 숨겨져 있다는 신비한 이치를 굳게 믿는 것 말이다.

   

 

 

책으로 담는 세상 ^^*

이형진(세상다담) 010-8317-2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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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내가 아무렇게나 사용하거나 내 변덕에 따라 사용하면 할수록 자유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특성을 지녔다.
그와 반대로 내가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보다 더 사랑하기 위해 자신이 갈망하는 어떤 일들을 단념하기를 받아들인다면 나의 자유는 더욱 커진다. (126쪽)
서양은 자유를 우상처럼 숭배하는 개념에 사로잡혀 더이상 그 자유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광적인 상태에 빠져 있다.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기 위해 자유롭겠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단절과 궁지와 공허 그 자체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내면적 해방의 가능성을 가져다줌으로써 이와 같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유를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179쪽)
사람이 늙으면 '떠나기 전에 네가 아는 걸 말하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되거든요. 그리고 내가 아는 건 삶이 자유에 바쳐진 시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자유를 통해 우리는 영원한 사랑이신 하느님과 만남을 위해 사랑하는 법을 배울수가 있지요. (103쪽)
희망과 소망을 다르다. 희망이란 삶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 <단순한 기쁨>, 피에르 신부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사르트르는 썼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반대라고 확신한다. 타인들과 단절된 자기자신이야말로 지옥이다. - <단순한 기쁨>, 피에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