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노래

세상다담 2016. 12. 14. 23:03






 1711년 출판된 협주곡 작품집 《조화의 영감 (Op.3)》(L'estro armonico)의 여섯 번째 곡 (No.6)




♣ 안토니오 비발디 Antonio Lucio Vivaldi ( 출처 : 나무위키 )


1678년 3월 4일 베네치아 공화국 베네치아 출생 ~ 1741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사망. 이탈리아의 작곡가 겸 사제 겸 바이올리니스트. 바로크 시대의 가장 유명한 음악가 (비발디/바흐/헨델) 중 한 명으로, 그가 작곡한 《사계》(특히 '봄 제1악장')는 들어보지 않은 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세계 유명 음악가중 거의 유일하게 음악의 아버지인 바흐보다도 먼저 태어난 사람이다. 


베네치아의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 비발디를 임신하고 있던 어머니가 벽에 부딪혀 큰 충격을 받는 바람에 열 달을 다 못 채우고 칠삭둥이로 태어났다. 칠삭둥이가 얼마나 살까 했던 부모는 유아세례를 주지 않고 백 일을 넘겼는데, 비발디가 그 때까지 죽지 않자 5월 6일에야 세례를 주었다고 한다. 유전인 적발 때문에 붙은 별명은 '붉은 사제(il Prete Rosso)'인데, 붉은 머리를 주변 사람들이 썩 좋게 보지 않았다고 한다.


연약했던 비발디는 15세 때인 1693년 9월 18일 올레오 수도원에 들어갔지만 건강 문제로 집에서 출퇴근 배려를 받았는데, 그 때 아버지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25세 때인 1703년 3월 23에는 사제 서품을 받았지만 사제로서 직무에 충실하지 않았고, 바이올린 연주에 심취하거나 건강 문제를 핑계 삼아 미사 집전을 거르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또 45세 때인 1723년 이후로는 나이 차가 20살이 넘게 나던 여제자인 안나 지로의 심상치 않은 염문으로 비난받았다. 소프라노 가수였던 그녀는 비발디의 많은 오페라에서 주역을 맡았는데, 그녀는 언니와 같이 비발디가 병상에 있을 때 그의 집에서 그를 간호하면서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베네치아 시민들은 결국 비발디와 안나를 빈으로 내쫓았다.


앞서의 안나와의 불륜으로 베네치아에서 쫓겨나고 나서도 "나는 사랑과 베네치아를 맞바꾸었을 뿐이다."라고 할 정도로 자만심도 상당했던 듯 하다. 아무튼 바흐나 텔레만 등의 다른 작곡가들 같은 묵직하고 엄숙한 느낌이 별로 없었던 건 분명해 보인다. 상술했듯이 사제 치고 미사에는 별 관심도 없었다고 하며, 흥청망청 즐기는 것도 잘 했다고 한다.당시 베네치아에서 활약하던 극작가 골도니의 비발디 평인즉 "비발디는 바이올린 주자로서는 만점, 작곡가로서는 그저 그런 편이고, 사제로서는 영점이다." 비발디는 다음과 같은 골도니에 대한 평으로 응수했다. "골도니는 험담가로서는 만점, 극작가로서는 그저 그런 편이고, 법률가로서는 영점이다."


하지만 작곡할 때를 제외하고는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았으며 작곡을 하면서도 비발디 본인의 신앙심의 흔적이 나타나 있어 그가 결코 사이비 사제인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또 그 때 베네치아는 항구도시라 이런저런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었고 그만큼 분위기가 많이 문란했다고 하니 비발디는 그 당시의 평범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실제로 이런저런 소문 때문에 그를 파문시키려는 세력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끝내 파문은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성기 때는 전 유럽에 비발디의 이름이 알려져 있었지만, 말년에는 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식었기 때문에 빈이라는 타지에서 쓸쓸하게 객사하였다. 앞서 말했던 특유한 낭비벽 때문에 오페라 상영이나 바이올린 연주로 벌었던 재산도 바닥난 상태였기 때문에 극빈자로서 장례식을 치렀으며, 요제프 하이든이 그 당시 소년 합창단으로서 장례식에 있었다고 한다. 비발디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처럼 묘지가 이장되는 과정에서 유해가 분실되어 행방이 묘연하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잊혀 있던 비발디는, 20세기 초 그를 존경했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그의 비발디 편곡집이 재평가 받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숨겨져 있던 비발디의 곡들이 발굴되면서 합주협주곡과 바이올린 협주곡의 양식을 정립하는 데에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그리스·로마의 음악 → 서양 중세음악 → 르네상스 음악 → 바로크 음악 → 고전주의 음악 → 낭만주의 음악 → 20세기 서양음악




※ 바로크(Baroque) 음악이란 1600년 무렵부터 1750년 무렵까지의 음악을 가리키는 말이다. 바로크란 말은 원래 포르투갈어의 ‘균형이 잡히지 않은 진주(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으로서 미술양식에서 빌려 쓴 말이다. 이것은 르네상스의 안정된 균형미에서 떠나, 형식과 균형을 깨뜨리고서 강력한 표현을 중히 여기는 양식을 말한다. 바로크 음악의 특징은 합주 협주곡에서 독주와 합주 소리를 대비하는 효과를 내는 것과 통주저음이라는 새로운 화성을 사용하는 것이 있다. 이 밖에 으뜸화음과 딸림화음을 중요한 화성으로 사용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바로크 시대에 장조와 단조의 조성이 확립되었고, 바로크의 후기에 이르러서 오늘날과 똑같은 박자법이 완성되었다. 그 당시의 음악에는 성악곡이나 기악곡이 많지만, 모음곡 · 소나타 · 푸가 등에도 뛰어난 작품이 많았다. 그보다 더 먼저 발전한 것은 오페라다. 바로크 시대의 유명한 작곡가로는 이탈리아의 스카를라티와 비발디, 프랑스의 라모, 독일의 쉬츠 등이 있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음악가는 역시 이 시대의 음악을 완성했다고 하는 바흐헨델이다. ( 출처 : Daum 백과, 바로크 음악 )



클래식 음악에서 작품번호 표기법 , http://blog.daum.net/hjandej/6027658

이탈리아 -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外 , http://blog.daum.net/hjandej/6027688



[음악사] 바로크 음악 - 비발디, 바흐, 헨델, http://blog.daum.net/hjandej/6027786

사랑ㅣ Violin Concerto in a Minor Op.3-6 (RV356) - Vivaldi, http://blog.daum.net/hjandej/6027768

침잠ㅣ Suite No.3 (BWV1068) II. Air, 'on the G String' - Bach, http://blog.daum.net/hjandej/6027793

만남ㅣ 'Arrival of the Queen of Sheba' from Solomon(HWV67) - Handel, http://blog.daum.net/hjandej/6027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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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maso Albinoni - Adagio, https://youtu.be/Su1BozJLnU0

토마소 알비노니(Tomaso Albinoni, 1671년 6월 8일, 베네치아 ~ 1751년 1월 17일, 베네치아) 는 바로크 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이탈리아 작곡가이다. 베네치아 태생으로 50여 곡의 오페라를 작곡하였으며, 기악 작곡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소나타와 협주곡은 최근에 높이 재평가되고 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그의 작품을 칭찬하고 그 테마에 기초를 둔 3곡의 푸가를 작곡한 바 있다. 그는 이 밖에도 주요 작품으로 심포니아·협주곡·실내악곡 등을 다수 남겼다. ( 출처 : 위키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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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주 협주곡 「조화(調和)의 영감」 Op.3, Concerto grosso "L'Estro Armonico" Op.3

비발디는 협주곡의 형태, 즉 빠름 · 느림 · 빠름의 3악장으로 이루어지는 구성을 확립했다. 이 제3번 「조화의 영감」이라는 제목의 협주곡집은 비발디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바흐나 헨델 등의 창작에 커다란 지주가 된 작품으로서 12곡으로 이뤄졌고, 각각 다른 독주 악기와 관현악이 합주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12곡의 악기 구성은 다음과 같다.

① D장조, 바이올린 4개와 관현악
② g단조, 바이올린 2개와 첼로와 관현악
③ G장조, 바이올린과 관현악
④ e단조, 바이올린 4개와 관현악
⑤ A장조, 바이올린 2개와 관현악
⑥ a단조, 바이올린과 관현악
⑦ F장조, 바이올린 4개(첼로의 조주)와 관현악
⑧ a단조, 바이올린 2개와 관현악
⑨ D장조, 바이올린과 관현악
⑩ b단조, 바이올린 4개와(첼로의 조주)와 관현악
⑪ d단조, 바이올린 2개와 첼로와 현악
⑫ E장조, 바이올린과 관현악.

비발디는 1678년 경 출생일 것이라는 점 이외에는 알려져 있지 않으므로, 이 곡이 1715년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비발디의 나이 40세 무렵의 작품일 것이라 추정하는 수 밖에 없다. 당시 이탈리아의 크레모나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 비올라를 만드는 뛰어난 장인(匠人)이 태어나, 그가 만든 바이올린이나 첼로는 그때까지 없던 멋진 악음(樂音)을 울렸는데, 이것이 비발디의 창작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 명기로서 높이 존중되는 스트라디바리우스라 일컫는 바이올린 · 비올라 · 첼로가 그것이며, 그 훌륭한 악음은 현악의 세계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비발디의 창작은 이 새로 개척된 심원한 현의 세계로 날아가 풍부한 기품이 있는 서정의 흐름을 유려하게 그리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합주 협주곡 「조화(調和)의 영감」 Op.3 (최신명곡해설 & 클래식명곡해설 - 작품편, 2012. 5. 31., 삼호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