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노래

세상다담 2016. 12. 27. 21:52






18세기 후반, 신성로마제국의 수도 빈(비엔나)에는 음악사에 빛나는 두 명의 거장이 살고 있었는데요. 네.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이름도 유명한 '모차르트(Mozart)'와 '베토벤(Beethoven)'이랍니다. 두 사람 다 고전주의 음악에 속한다는데요. 뭐, 모르겠고~ 그냥 아름다운 음악을 무척이나 많이 만든 사람들로 유명합니다. ㅎㅎㅎ 그럼, 두 사람은 알고 지냈을까요, 모르고 지냈을까요? 친했을까요? 안친했을까요? 짜잔~ 정답은 아래에~ 어쨌든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터키 행진곡(Turkish March) 』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두 곡 다 진짜 행진곡은 아니고, 제목도 요즘에 와서 그렇게 불릴 뿐이라는데요. 왜 그럴까요? 진짜로 궁금하신 분은 찾아보시리라 믿습니다~ 자, 오늘은 두 거장의 터키행진곡을 들어보고 비교해 보는 정도만으로 어떨까요? ^^



[  Turkish March  :  Mozart  vs.  Beethoven  ]




그리스·로마의 음악 → 서양 중세음악 → 르네상스 음악 → 바로크 음악 → 고전주의 음악 → 낭만주의 음악 → 20세기 서양음악



       


Mozart Turkish March                             Beethoven Turkish March



♣ Mozart Turkish March - Mozart Piano Sonata No.11 in A Major (K.331) - III. Alla Truca

 Beethoven Turkish March - L.v.Beethoven "The Ruins of Athens" (Op.113) - No.5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는 오스트리아의 서양 고전 음악 작곡가이다.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 35세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사망했다. 궁정 음악가였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고 그후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아들인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에게서 작곡하는 법 및 지휘를 배웠다. 주요 작품으로는 <교향곡 41번>,<피가로의 결혼>,<돈 죠반니>,<마술 피리> 등과, 최후의 작품인 <진혼곡>이 있다. 고전 음악을 완성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독일의 서양 고전 음악 작곡가이다. 독일의 본에서 태어났으며, 성인이 된 이후 거의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았다. 감기와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투병하다가 57세로 생을 마친 그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전환기에 활동한 주요 음악가이며, 작곡가로 널리 존경받고 있다. 현재 그는 음악의 성인, 악성(樂聖)이라고 불린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 가운데에는 〈교향곡 5번〉,〈교향곡 6번〉,〈교향곡 9번〉,〈비창 소나타〉,〈월광 소나타〉 등이 있다.




1683년경, 신성로마제국의 수도 빈(비엔나)   헐... 멋지다...



빈(영:비엔나)원시 시대부터 현재의 빈에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고, 기원전 15년에 로마군이 경계선을 세워 “빈드보나”라고 이름을 지었다. 게르만족이 거기를 차지할 때까지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800년대 후반에는 마자르족이 빈을 통치하였다. 독일 황제군이 900년대 후반에 빈을 정복하였고, 1150년에는 바벤베르크 가문의 주요 관저가 되었다. 1273년에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루돌프 1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빈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자리로서 번영하였다. 교통의 요지여서 11세기에는 십자군의 통로로서 융성하였고, 15세기 이후는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발전하였다. 전성기 시절엔 인구 200만을 넘나드는 대도시였다. 근세에는 오스만(현재 터키) 제국군이 두 차례(1529년, 1683년) 빈 문턱 앞까지 왔으나 모두 저지되었다.


모차르트의 전기작가인 오토 얀(Otto Jhan)은 모차르트가 베토벤의 천재성에 감탄했다는 일화를 전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베토벤이 17살이 되던 해인 1787년,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의 목적이 베토벤 자신은 모차르트를 만나기 위해서라고 단정짓고 있지만, 꼭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때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자연과 새로운 음악을 접하고 싶은 마음도 충분히 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모차르트는 베토벤이 만나고 싶다는 청을 듣고 거절할 마음도 있었지만, 베토벤의 고향인 본에서 유명한 작곡가라는 말에 베토벤을 만나게 된다. 모차르트의 요구에 의해 베토벤은 즉흥곡을 연주했는데, 모차르트는 베토벤이 그것을 암기하고 치는거라 여기고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그러자 베토벤은 평상시에 가장 자신있던 즉흥실력을 모차르트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모차르트에게 즉흥곡의 테마 주제를 요청한다. 흥이 일기만 하면 즉흥연주에 뛰어난 솜씨를 자랑하던 그였고, 베토벤의 뛰어난 연주는 모차르트를 감탄시키기에는 너무나 충분하였다. 그 즉흥곡을 듣고, 모차르트는 여러 친구들이 모여있는 옆방으로 뛰어가 이렇게 외쳤다. "저 사내를 잘 지켜보게, 나보다 유명하게 될 존재가 나타났다네."』솔직히 1787년의 베토벤의 최초 빈 여행에 관하여 확실하게 단정짓는 기록은 아무것도 없다. 그가 모차르트를 만났는지, 만났다면 어느정도 대화를 나누었는지, 또는 모차르트에게서 렛슨을 받았는지의 여부도 확인할만한 자료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토 얀이 주장한 것과 같이 베토벤이 모차르트와 만났다는 것을 뒷받침할 만한 뚜렷한 근거 또한 별로 찾아 볼 수 없다. 당시의 모차르트는 오페라 "돈지오반니"의 작곡에 전념하고 있어서, 사소한 방문객은 잘 만나주지도 않았던 터여서, 이때 당시에는 유명하지도 않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시골청년 베토벤에게 관심을 보였을리 없고, 모든 이야기는 사람들의 상상이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리라는 것이 근래의 통설이고, 국제음악계에서는 거의 기정사실로 짓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을 증명해줄 만한 물질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는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든을 통하여 오랜 기간동안 수없이 많은 교제를 하였고, 하이든에게서 레슨을 받은 기록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베토벤도 하이든이 영국의 런던에서 베토벤의 고향인 본으로 여행을 와서 잠시 쉬고 있을때 하이든을 찾아가서 재능을 인정받았고, 얼마후 비인으로 다시 건너가서 하이든에게 수많은 레슨을 받은 기록도 남아있고 피아노 소나타 1~3번 작품2는 하이든에게 헌정한 곡이다. 이와 같이, 베토벤과 모차르트가 실제로 만남을 가졌다는 주장은 증명해줄만한 자료가 하나도 없어 국제 음악계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지 않다. ( 출처 : 위키백과 )



[  Turkish March  :  Mozart  vs.  Beethoven  ]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터키 행진곡', 두 곡 다 들어보셨나요?
어느 쪽이 더 맘에 드셨나요? ^^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