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그림

세상다담 2017. 1. 26. 23:33





Olympia, Édouard Manet(1832-1883), 1863

Oil on canvas, 130.5 × 190 cm, Musée d'Orsay, Paris




에두아르 마네 (프랑스어: Édouard Manet, 1832년 1월 23일 ~ 1883년 4월 30일)는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이다. 19세기 현대적인 삶의 모습에 접근하려 했던 화가들중의 하나로 시대적 화풍이 사실주의에서 인상파로 전환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그의 초기작인 <풀밭 위의 점심식사 Le déjeuner sur l'herbe, 1863>와 <올랭피아 Olympia, 1863>는 엄청난 비난을 불러 일으켰으나 반면에 수많은 젊은 화가들을 주변에 불러모으는 힘이 되었는데, 이들이 후에 인상주의를 창조하였다. 이 그림들은 오늘날 현대미술을 창시한 분수령으로 여겨진다. 그의 화풍의 특색은 단순한 선 처리와 강한 필치, 풍부한 색채감에 있다. ( 출처 : 위키백과 )


♣ 올랭피아은 에두아르 마네가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그림이다. 규격은 190 x 130.5cm (51 x 74.8 in)이다. 프랑스는 1890년 클로드 모네의 공식적인 요청으로 그림을 취득하였고 현재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 중이다. 마네는 1863년 샬롱에 제출한 풀밭 위의 식사(Le déjeuner sur l'herbe)로 논란이 있었지만 1865년 파리 샬롱에 제출된 올랭피아는 비난거리였다. 특히 보수적인 사람들은 작품이 "음란하고 상스럽다"는 비난을 했다. 저널리스트 안토니아 프루스트가 회상하길 "만일 올랭피아가 파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관리자가 붙인 주의사항 때문일 것이다."라 말했다. 그러나 비판만 받은 것은 아니었다. 올랭피아의 지지자 였던 에밀 졸라는 올랭피아를 마네의 "걸작"으로 칭하고 "현재 다른 화가들은 비너스의 거짓만을 표현할때, 마네는 스스로 물었다. 왜 거짓말을 해야하는지 왜 진실을 얘기하지 않는지?"라 말했다. 올랭피아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에 영감을 받았다. 또 고야의 〈옷 벗은 마하〉(c. 1800)와 몇가지 유사한 점이 있다. 올랭피아는 흑인하녀가 있는 누드화도 참고하였는데 앵그로의〈오달리스크와 그 노예〉(1842), 프랑수아 레온 베노우빌레의 〈에스더와 오달리스크〉(1844), 찰스 제나베트의 〈오달리스크〉(1842)이다. 그 중 앵그로의〈그랑 오달리스크〉(1814)와 많은 비교를 한다. 마네는 다른 화가들과 달리 여신이나 오달리스크는 그렸지만 고객을 위한 고급 창녀는 묘사하지 않았다. ( 출처 : 위키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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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잠 (2016), 이구영, 대한민국


2017, 박근혜 대통령 : " 아무 거리낌 없이, 어떤 죄의식도 없이 그렇게 쉽게 (선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을 보면

그것이 지금 현재 한국 정치의 현주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Emperor Haute Couture (2011), Margaret Sutherland, Canada


2012, 하퍼 총리 측 : " 거슬리기(bothered)보다 우리도 즐겁다(amused). 다만 총리는 커피를 안 마시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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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화가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유화로 역사나 신화를 그리던 아카데미학파에서 벗어나 현실의 여인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기존의 고전파 작품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었다. 이후 마네는 인상주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인상주의 등 모더니즘 미술에 대한 정보는 모더니즘(미술) 항목을 참고하길 바란다. 오늘날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면 별로 파격적인 느낌을 받지 않겠지만,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고 발칵 뒤집어졌다고 한다. 우선 그림의 주인공이 살롱에 거는 그림에 주로 등장하는 여신이나 님프가 아닌 현실의 매춘부라는 것이 문제였다. 동양에 비하면 서양미술사에 누드는 많이 나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여신이나 요정으로 그린다/본다는 전제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즉, 어디까지나 비현실의 존재를 그린 것이었다. 하지만 마네가 그린 그림은 당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현실의 매춘부를 그린 거라는걸 인지할 수 있는 그런 그림이었다. 애초에 '올랭피아'라는 제목 자체가 당시엔 매춘부 이름으로 흔한 이름이었다. 오늘날 한국 입장에서 따지면 오피스텔에서 성매매하는 여자 이름을 그림 제목으로 붙인거나 마찬가지. 그리고 나체에 대한 의례적인 미화 없이 있는 그대로 보이는 벌거벗은 몸을 그린 것도 문제였다. 여신이면 뭔가 하늘거리는 천이나 성스러운 샘물 근처에 있어야 할것 아닌가? 아니면 천사가 주변에 있다던지. 하지만 <올랭피아>에서 보이는 머리에 달고 있는 꽃과 침대장식 등에서 싸구려 티가 매우 나는데다가, 여신의 누드를 그린 그림에 으레 아기천사들이 꽃을 들고 있는 것과 달리, 이 그림에서는 매우 현실적이게도 (당시 기준으로) 비천한 흑인 하인 여성이 꽃을 들고 있는 등 당시의 고상한 관객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천박한 작품이었다. 게다가 발부분에 있는 검은 고양이는 서양에서 '재수없음'의 상징이다. 프랑스어로 암고양이를 일컫는 단어 la chatte는 은어로 여성의 성기를 뜻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비속어로 여성의 음부를 조개 같은 것에 비유하는 것처럼 말이다. 거기에 그림 속 고양이의 꼬리는 꼿꼿히 서 있는데, 일부에서는 그 꼿꼿히 선 꼬리가 발기한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 그림이 불편한 두 번째 이유는, 그림 속 여자가 거만하게 날 노려다 본다는 것이다. 근데 이게 또 후대 학자들에게 큰 평가를 받는 요인이 된다. 왜냐면 이는 연극성을 제거한 것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대가 내 눈을 마주보지 않고 없는 듯이 행동하는 걸 '연극하는 것 같다'고 말하곤 한다. 이전 회화에서 그림 속 등장인물들은 마치 관람자가 없는 듯이 행동하는 것처럼 그려졌다. 이건 지금도 그렇다. 광고 속 모델이 당신을 공격할 듯이 잡아먹듯이 나오면 보는 사람은 불안할 것이다. 보는 사람 보기 좋게 그려진 그림, 다르게 말하자면 보는 사람 비위맞춰주려고 그린 그림은 등장인물을 정면을 노려보도록 그리지 않는다. 화면 밖 먼 곳을 보거나, 화면 속 다른 사람과 눈길을 주고받거나, 정 관객을 바라보도록 그려졌으면 상냥하게 바라보는 것처럼 그려진다. 모나리자를 생각해보자. 표현 방식도 매우 거칠다. 지금 눈으로 보면 저 정도면 봐줄만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앵그르 등을 비롯한 신고전주의 화가들이 그리던 여인들의 아름다운 누드와 비교해 보면 그렇지 않다. 당시 신고전주의 화가들은 정말 붓질을 여러번 공들여 했다. 붓질자국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에 반하면 마네의 그림은 붓질도 그대로 보이고, 입체감이나 음영감도 없어 평평한 느낌을 준다. 대신 물감을 여러번 바르지 않았기 때문에 채도가 떨어지지 않고 화사해 보이는 면은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욕을 먹었다. 연일 사람들이 몰려들어 주먹질을 하고 지팡이로 후려쳐서, 그림 앞에 경호원 3명이 대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다른 작품인 <풀밭 위의 점심식사> 역시 이와 비슷한 일을 겪게 되는데 화가 난 시민들이 지팡이를 휘두르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작품보다 높게 걸었다고 한다. 쉽게 빗대 설명하면, 남자들이 겉으로는 교양인 스러운 척 하지만 뒤로는 여대생 나이대의 여자와 놀아난다는걸 까발린거나 다름 없는거다. 이 느낌을 요즘 느낌에 맞게 표현한다면, 길거리 전광판에 고3 여학생이 벌거벗은 채 날 노려보는 느낌정도라 하겠다. 그 충격과 분노를 이해 할 수 있겠는가? 남자들이라면 뻘쭘하거나 당황하거나 찔리거나 화내거나 욕을 할 것이다. 150년 전 프랑스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우산으로 찔러대서 결국 높이 매다걸어야 했을까. 시대를 앞서간 화가의 비극이라면 비극이랄까. 물론 현재는 작품의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고가의 작품이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중. 참고로 마네가 실제로 매춘부를 모델로 그린 것은 아니다. <올랭피아>의 모델이 된 빅토린 뫼랑은 화가 지망생이었다. 정작 뫼랑은 화가가 되려고 모델을 한 것인데 당시 예술계에서 남자들의 텃세에 밀려 별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고 한다. 2017년 대힌민국에서는 최순실 게이트를 풍자하는 의미로 패러디되었다가 도덕적 선을 넘었다는 논란에 휘말려 전시가 중단됐다. 링크 상세는 더러운 잠 문서 참조. 위와 같이 올랭피아에 얽힌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은 이 논란에 대해 150년전의 일이 이 땅에서 다시 재현되고 있는 것에 한탄하고 있다. 다만, 안철수 문재인이 성관계를 맺는 그림을 그린 최지룡이 법적 처벌을 받지는 않은 전례가 있어 표현의 자유의 기준을 놓고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출처 : 나무위키, 올랭피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