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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다담 2017. 2. 23. 23:56





바티칸 시국(Stato della Città del Vaticano)은 이탈리아의 로마 시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경역할을 하는 장벽으로 둘러싸인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는 내륙국이자 도시국가이다. 바티칸 시는 바티칸 언덕과 언덕 북쪽의 바티칸 평원을 포함하며, 0.44㎢의 면적에 약 400명 정도의 인구를 지녔으며 면적과 인구로 보아 매우 작은 독립국가이다. 이전에 로마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반도 중부를 넓게 차지한 교황령(756-1870)이 있었으나, 19세기 이탈리아 왕국에 강제 합병되었고, 10년 후인 1870년에는 로마와 더불어 나머지 다른 지역도 모두 이탈리아에 합병되어 소멸했었다. 바티칸 시국은 이 교황령의 회복을 목표로 한 1929년 라테라노 조약의 체결로 독립을 성취하여 오늘에 이른다. 바티칸 시국은 교황이 통치하는 일종의 신권국가로,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총본부이다. 바티칸 시국의 공무원들은 대부분 성직자나 수도자로 이루어져 있다. 국제관계에서는 성좌(聖座, Sancta Sedes)로 호칭된다.





오늘은 그 이름도 유명한 성 베드로 성당으로 가게 될 건데요. 물론 그 전에 바티칸 박물관을 거쳐야겠죠~ ^^


그래서 딱 5가지만 보고 오려고 해요.

팔각정원에 '라오콘', 라파엘로의 방에 '아테네학당', 시스티나 성당에 '천지창조'

성 베드로 성당에 '피에타'와 '발다키노'


불과 5가지지만... 엄청난 5가지죠... 자~ 그럼 출발~ ^^





■ Musei Vaticani...



바티칸 박물관 (미술관)은 따로 건물 하나에 있는 게 아니고 시스티나 성당을 포함해서 바티칸 내에 있는 여러 미술관과 갤러리들을 통틀어 부르는 명칭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산치오 등의 대가들이 남긴 걸작 르네상스 회화들과 역대 교황들이 수세기에 걸쳐 수집한 막대한 미술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영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알려져 있지만, 바티칸 박물관 대신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라든지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언급되기도 하는 등 차이가 있다.



          


솔방울 정원(②)에서 박물관 전체 설명 좀 듣구요~ 정원을 가로질러 왼쪽으로 틀면요~ ^^ 




③ 팔각정원라오콘 , Λαοκόων, Laocoön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트로이 전쟁의 등장인물.


트로이의 아게노르의 아들로 다른 전승에서는 아게노르는 아이네이아스의 아버지인 안케세스와 형제지간이라고 하니 아이네이아스와는 사촌지간인 셈이고 트로이의 왕족이라고 할 수 있다. 아폴론 신을 섬기는 사제로 헬레노스, 카산드라와 더불어 트로이의 3대 예언자였다. 어떤 전승에서는 그가 아폴론 신의 사제로서 독신의 의무가 있었지만 이를 어기고 쌍둥이 아들 안티파스와 팀브라이우스(혹은 멜란토스)를 낳았고, 자신과의 맹세를 어긴 라오콘을 벌하기 위해 아폴론이 포세이돈 신의 제단에 제사를 지내던 라오콘과 두 쌍둥이 아들에게 포르케스와 카리보이아(또는 쿠리시아나 페리보이아)라는 큰 바다뱀 두마리를 보내 그들을 깔려 죽게했다고 한다. 다른 전승에선 라오콘이 트로이의 목마를 보고 이를 성 안에 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고, 심지어는 목마의 복부에 창을 던져 그리스군이 숨어있음을 확인하려고까지 했다. 그러자 그리스군의 편에 서 있던 포세이돈이 이에 분노하여 큰 바다뱀인 퓌톤 두마리를 보내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을 깔려죽게 했다고 한다. ( 출처 : 나무위키, 라오콘 )


















          


팔각정원(③) 지나서... 마차의 방 지나서... (④, ⑤) 긴 회랑을 걸으며 지도의 방도 지나고... 

( 근데 넘 많이 빼먹었당~ 사실 중간에 방~ 엄청 많아요~ ㅋㅋㅋ )


회랑 끝에서 또 왼쪽으로 틀면요~ ^^




⑥ 라파엘로의 방*아테네 학당 (Schola Atheniensis)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인 라파엘로 산치오가 교황 율리오 2세의 주문으로 27세인 1509-1510년에 바티칸 사도궁전 내부의 방들 가운데서 교황의 개인 서재인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에 그린 프레스코화. 서명의 방의 네 벽면은 각각 철학, 신학, 법, 예술을 주제로 벽화가 그려졌는데 이중에서 아테네 학당은 철학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가로 823.5cm, 세로 579.5cm 크기의 벽면에 모두 54명의 철학자가 배치되어 있다. 철학자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있는 공간은 이 벽화가 그려질 당시 도나토 브라만테가 설계해 막 공사에 착수한 성 베드로 대성당의 내부를 모티브로 1점 투시도법을 사용해 묘사되었다. 벽기둥 양쪽에 있는 두 석상은 왼쪽이 아폴론, 오른쪽이 아테나이다. 아폴론과 아테나는 이성과 지혜를 상징하는 신이므로 그림의 의미에 적합한 소재라 할 수 있다. ( 출처 : 나무위키, 아테네 학당 )










■ Aedicula Sixtina...




⑦ 시스티나 성당천지창조 (天地創造)는 타나크의 율법서 토라의 첫 권인 창세기(구약 모세오경 창세기) 1장 1절에서 2장 4절 전반(前半)에 기술되어 있는 이야기이다.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져 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가이자 화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그림(1508-1512)이 유명하다. 이에 의하면 야훼는 천지창조 이전에도 존재하여 천지 만물을 6일 간에 걸쳐 창조하였다고 한다. 제1일에는 빛이 있으라 하여 빛을 만들고, 제2일에는 천공(天空), 제3일에는 땅과 식물(植物), 제4일에는 태양과 달 그리고 별, 제5일에는 물고기와 새, 제6일에는 기타 동물과 이를 지배하는 인류를 야훼 신의 형상을 따서 만들었다. 제7일에는 창조의 일이 완성되었음을 축복하여 휴식하고 이 날을 성스럽게 하였다.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야훼 신이 천지를 창조한 조물주라고 믿고 있다. 이 이야기는 본문비평적(本文批評的)으로는 제사법전(祭司法典)에 속하며 현재의 형태로 된 것은 대략 기원전 5세기경으로 본다. 바빌로니아의 천지창조 신화의 영향을 받았다. 바빌로니아 신화의 경우에는 서로 싸우는 여러 신들이 등장하는 데 반하여 구약에 있어서는 일신교적 신관(一神敎的神觀)의 기초 위에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 출처 : 위키백과, 천지창조 )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등등 등등 등등... 시스티나 성당에  그야말로 가득 찬 그림들...

이건 실제로 보지 않고선 그 놀라움을... 어찌 말로...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바티칸 교황청에서 제공하는 가상현실~ 짜잔~ ^^




시스티나 성당 (Aedicula Sixtina)은 바티칸 시국에 있는 교황의 관저인 사도 궁전 안에 있는 성당이다. 건축 양식이 타나크에 나오는 솔로몬의 성전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전하며,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산드로 보티첼리 등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이 그린 프레스코 벽화가 구석구석에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서도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오 2세의 후원을 받으면서 1508년에서부터 1512년 사이에 성당의 천장에 12,000점의 그림을 그렸다. 시스티나 성당은 1477년에서 1480년 사이에 기독교의 오래된 옛 대성당(Cappella Magna)을 복원했던 교황 식스토 4세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 기간에 피에트로 페루지노, 산드로 보티첼리, 도메니코 기를란다요를 포함한 화가 무리는 모세와 그리스도의 생애를 묘사한 프레스코화 벽판 시리즈를 만들었다. 그 그림들은 1482년에 완성되었으며, 1483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기념 미사 때 식스토 4세에 의해 축성되었다. 식스토 4세의 치세 이래, 시스티나 성당은 교황이 종교적·직무상의 활동을 하는 장소로서의 소임을 해 왔다. 오늘날에 이곳은 전 세계의 추기경들이 모두 모여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종교적 의식인 콘클라베를 여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 출처 : 위키백과 )










■ Basilica Sancti Petri...







성 베드로 대성당*피에타 Pietà (1498-1499)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대리석, 174cm × 195cm


조각상의 구도를 보면 성모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무릎에 안고 있는 삼각형 형태인데, 성모를 예수보다 훨씬 크게 조각해 부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도록 했다. 이는 이전까지의 피에타는 물론이거니와 동시대에 그려진 페루지노의 피에타와 비교했을 때 어색하지 않은 구도가 확연히 드러난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반영하면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지지만, 인위적으로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취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게 한 미켈란젤로의 재능이 빛을 발한 부분이다. 이를 두고 '피에타는 인간이 아닌 하느님께 보여드리기 위한 작품이기 때문에, 90도 각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신체비율이 완벽하게 들어맞도록 만들어졌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정교한 예수의 근육묘사와 마리아의 옷주름을 보면 가히 조각으로 이렇게까지 묘사한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느낄 수 있다. 성모 마리아의 얼굴은 예수보다 젊게동안 묘사되어 있는데, 어머니가 아들보다 젊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 조각 완성 당시부터 있었다. 이에 대해 미켈란젤로는 그의 전기를 쓴 제자 아스카니오 콘디비(Ascanio Condivi, 1525-1574)에게 '순결한 여자들이 순결하지 않은 여자들보다 젊음을 더 잘 유지하는데, 티끌만큼도 추잡한 욕망의 때가 묻지 않은 육체를 가진 동정녀라면 말할 것도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특히나 이 피에타가 유명한 이유는 미켈란젤로가 남긴 수많은 조각들 중에서 그의 서명이 남아 있는 유일한 작품이기 때문으로, 성모 마리아의 어깨띠에 "MICHAEL·ANGELVS·BONAROTVS·FLORENT·FACIEBAT(피렌체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만들었다)"라고 새겨져 있다. 조르조 바사리의 <예술가 열전>에 의하면 피에타가 대중에게 처음 공개됐을 때 사람들이 롬바르디아 출신의 2류 조각가가 만들었다고 하자 미켈란젤로는 그 말에 화가 나 밤중에 몰래 성당으로 들어가 자신의 이름을 새겼지만, 뒷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서 이후에 자신이 만든 작품에는 서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 출처 : 나무위키, 피에타 )











성 베드로 대성당 (Basilica Sancti Petri)은 바티칸 시국 남동쪽에 있는 대성당을 말한다. 바티칸 대성당(Basilica Vaticana)이라고도 부른다. 성지 가운데 하나이자 기독교 세계의 모든 교회 가운데 가장 거대한 교회로 유일무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개신교를 제외한 기독교의 전승(애초에 개신교는 전승을 인정하지 않는다)에 따르면, 서기 67년에 순교한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자 로마의 초대 주교, 즉 교황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대성당을 건립했다고 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이 로마의 수많은 교회 가운데 가장 유명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으뜸 교회는 아니다. 로마 교구의 대성당의 명예를 지닌 교회는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이다. 성 베드로의 시신이 대성당의 제대 아래에 묻혀 있는 까닭에 옛날부터 교황이 선종하면 그 시신을 제대 아래에 안치해오고 있다. 대성당은 4세기 이래 이 장소에 있었다. 대성당의 건설은 1506년 4월 18일에 시작되어 1626년에 완료되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그 종교성과 역사성, 예술성 때문에 세계적인 순례 장소로 유명하다. 르네상스부터 바로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계의 거장들이 주임 건축가 직책을 계승하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지은 건축 작품으로서 당대의 가장 거대한 건물로 여겨진다. 로마의 모든 초창기 성당들처럼 성 베드로 대성당 역시 입구가 동쪽에 있으며 후진(後陣)은 서쪽 끝에 있다. ( 출처 : 위키백과 )




성 베드로 대성당*발다키노 Baldacchino

천개(天蓋), 원래는 값비싼 견직물, 금란(金襴) 을 의미하였으나 나중에는 그 뜻이 변하여 옥좌(玉座) ·제단 ·묘비 등의 장식적 덮개인 천개를 가리키게 되었다. 대리석 ·목재 ·금속 등 으로 만들고 4개의 기둥으로 받쳐진다. 초기의 작례(作例)는 라벤나나 로마의 바실리카에서 볼 수 있으며, G.베르니니의 설계에 의한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의 천개는 르네상스 시대의 발다키노의 유행을 촉진시켰다.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최초의 건축 설계안은 청동으로 된 웅장하게 성 베드로 대성전의 제대을 높이 뒤덮는 캐노피(차양)인 <성 베드로의 발다키노(1624년-1633년)>와 성 비비아나 성당(1624년)의 파사드(입면)였다. 1629년 <발다키노>가 완성되기 전, 교황 우르바노 8세는 그에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성 베드로 성당의 건축 작업의 모든 직무를 맡겼다. 그는 바르베리니(우르바노 8세의의 본명) 교황을 위한 무덤을 대성전에 설계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와 대성당의 종탑 설계에서의 오판으로 인해 베르니니는 교황 인노첸시오 10세 팜필리의 눈밖에 나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후원이 끊기지는 않은 상태에서, 교황 알렉산데르 7세 키지의 임기에 베르니니는 성 베드로 대성전을 장식하는 데에 다시 중요한 역할을 얻어, 성당 앞 부분의 열주랑과 광장 설계안이 채택되었다. 바티칸으로 향하는 스칼라 레지아 입구와 대성당 안에 있는 애프스(교회 건축에서 동쪽으로 반원형으로 들어간 작은 방) 안에 있는 성 베드로의 의자(Cathedra Petri) 또한 그의 걸작들 중 하나이다. ( 출처 : 위키백과, 잔 로렌초 베르니니 )


TV ES PETRVS

ET SVPER HANC PETRAM AEDIFICABO ECCLESIAM MEAM

TIBI DABO CLAVES REGNI CAELORVM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산 피에트로 광장 (Piazza San Pietro)은 바티칸 시국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전의 바로 앞에 조성된 광장이다. 광장은 로마 시의 보르고 리오네 구역과 동쪽으로 접경을 이루며, 최대 30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성 베드로 광장의 설계자는 잔 로렌초 베르니니이다. 베르니니는 성 베드로 대성전을 설계하면서, 가톨릭교회가 그곳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있다는 뜻을 전하고자 했다. 그는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돔을 머리로 두고, 반원형의 회랑 두 개를 팔로 묘사함으로써 성 베드로 대성전이 두 팔을 벌려 사람들을 모아들이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성 베드로 광장 양편에 각각 네 줄로 늘어선 토스카나식 기둥 284개와 벽에서 돌출된 기둥 88개로 이루어진 베르니니의 회랑은 1656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667년에 완공되었다. 16m 높이의 원기둥꼴 대리석 기둥 위에 있는 140개의 성인상은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조각한 것이다. ( 출처 : 위키백과, 성 베드로 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