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노래

세상다담 2017. 2. 14. 23:05







결혼식날 울려퍼지는 결혼행진곡... 과연 어디서 나온 노래일까요? ^^




로엔그린 Lohengrin

출처 : 국립오페라단, http://www.nationalopera.org


[1막] 10세기 전반, 안트워프, 브라반트의 영주가 죽고, 왕자 고드프리트가 실종되자 왕자의 후견인이었던 텔라문트는 누나 엘자가 상속인이 되기 위해 동생을 살해했다며 국왕 하인리히에게 고한다. 그러나 사실은 엘자 다음으로 상속 권한을 가진 사람이 자신이기 때문에 누명을 씌우려 했던 것이었으며, 왕자의 실종 또한 그의 아내인 마녀 오르트루트의 마법에 걸려 백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국왕 하인리히는 엘자를 소환하여 당사자들의 결투를 통한 재판을 시행한다. 그녀를 대신해 싸우려고 하는 기사가 나타나지 않자, 그녀는 꿈에서 본 기사에게 자신의 결백을 위한 결투를 해줄 것을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자 백조가 이끄는 배를 탄 기사가 이들 앞에 나타난다. 기사는 자신의 이름과 출신을 묻지 않는다면 결백을 증명하고, 그녀의 남편이 되겠노라고 선언한다. 엘자는 흔쾌히 받아들였으며, 기사는 마침내 결투에서 승리한다. 


[2막] 엘자의 석방 축하연이 행해지는 동안, 결투에서 패배한 텔라문트는 아내인 마녀 오르트루트의 잘못된 예언과 판단 때문에 일이 잘못된 것이라며 그녀를 맹렬히 비난한다. 그러자 오르트루트는 백조의 기사가 결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마법을 썼지만, 그의 이름을 밝혀내거나 몸의 일부를 잘라내면 마법의 힘을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며 복수의 계략을 꾸민다. 엘자가 나타나자, 오르트루트는 자신이 위증자의 아내로서 의지할 곳 없다며 선처를 요구하여 마음 여린 엘자는 그녀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복수를 꿈꾸는 오르트루트는 엘자 옆에 머물며 기사에 대한 의혹을 끊임없이 불어넣어 마침내 엘자는 의심에 휩싸이게 된다.


[3막] 결혼식 날, 장엄한 혼례의 합창이 울려 퍼지고, 엘자와 기사는 신방으로 들어간다. 기사는 두 사람이 나눌 기쁨에 행복해 하지만, 의심에 휩싸인 엘자는 불안한 마음으로 결국 금지된 질문을 하게 된다. 때마침 기회를 노리던 텔라문트가 기사를 죽이려 여러 가신과 함께 칼로 덮쳤지만, 기사는 그들을 단번에 처치한다. 기사는 왕 하인리히에게 텔라문트의 시신과 함께 그가 자신을 죽이려했고, 엘자가 약속을 어기고 자신의 이름을 물었다고 고하며 그는 자신이 몬살바트 성배의 기사 로엔그린(성배의 왕 파르지팔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그리고 그는 마법에 의해 백조로 변한 왕자 고드프리트를 다시 되돌려놓은 뒤 영원히 떠난다. 후회 속에 로엔그린을 부르던 엘자는 동생의 품에서 정신을 잃어 결국 숨을 거둔다. 




     




♣ 로엔그린 Lohengrin 바그너의 초기 악극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파르지팔>을 쓴 볼프람 폰 에센바흐의 작품인 <로엔그린>을 기초로 바그너 자신이 직접 대본을 쓰고 작곡했다. 1850년 8월 28일, 바그너의 친구인 프란츠 리스트의 지휘로 독일의 바이마르 시에서 초연되었다. 8월 28일은 바이마르의 대문호 괴테의 탄생일로서, 리스트는 그를 기리기 위해 일부러 이 날짜를 잡은 것이었다. 바그너 자신은 바이마르 혁명에 가담한 죄로 스위스에서 망명 생활 중이었기 때문에 초연에 참석하지는 못했다. 총 3막으로 된 상당히 낭만스러운 작품이다. 바그너 생애 중 그의 명성과 인기를 확고히 하는데 크게 기여한 작품이다. 그의 생애 중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와 더불어 대중적으로는 가장 큰 인기를 끈 작품이다. 전작인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탄호이저>도 명작이지만 당시 대중적인 인기에서는 초기 세 작품 중에서 <로엔그린>이 가장 사랑을 받았는데, 소재, 스토리, 무대장치 등 여러 측면에서 청중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음악내외적인 장치를 갖추고 있다. 이 작품으로 인해 독일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국내외적으로 공인받을 수 있었다 할 수 있다. 대중적인 요소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음악사적으로도 바그너 후기 작품에서 확립된 Musikdrama의 전조적인 작품이다. 서곡 대신 전주곡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2세를 뿅가게 만든 작품이기도 해서 루트비히 2세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건축할 때 로엔그린에서 받은 영감을 맘껏 표출했을 정도였다.(노이슈반슈타인 성에는 백조머리가 조각된 문고리들이 있는데 이는 로엔그린의 영향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바그너의 후기작품들은 모두 루트비히 2세의 후원하에 작곡되었다. 로엔그린을 보고 맛이 가서 바그너의 열렬한 팬이 됐던 소년 루트비히2세는 청년이 되어 즉위하자마자 빚쟁이를 피해 은신하던 바그너를 찾아내어 빚을 모두 탕감해 주었다. <로엔그린>이 없었다면 바그너의 후기 작품들이 제대로 완성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 출처 : 나무위키, 로엔그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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