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노래

세상다담 2017. 3. 2. 23:56








수상음악 Water Music (HWV 348~350) 이탈리아에 머물던 헨델은 1710년 6월부터 독일 하노버 궁정의 악장으로 일하게 되고, 같은 해 1년 간의 휴가를 얻어 영국으로 건너간다. 휴가 기간인 1711년 2월, 영국 런던에서 공연한 오페라 <리날도>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헨델은 자신의 고용주인 하노버 공국의 게오르그 루드비히 선제후(選帝候) 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영국에서의 성공과 환대가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더구나 독일 하노버 궁정은 영국에 비한다면 오페라에 대한 인기가 시들했다. 이리저리 궁리하던 헨델은 1712년에 다시 한 번 게오르그 선제후에게 허락을 받아 영국으로 건너가는데, 그는 다시 하노버로 돌아가지 않고 영국에 정착해버린다. 그리고 당시 영국 국왕이었던 앤 여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으며 음악가로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런데 헨델을 적극 후원했던 영국의 앤 여왕이 1714년 사망하고 하필 자신이 배신했던 하노버 공국의 게오르그 루드비히 선제후가 영국 왕(조지 1세)으로 선출된다. 약속을 어긴 헨델에게 크게 분노하고 있던 게오그르 선제후, 아니 이제 조지 1세에게 헨델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지 1세의 복수를 두려워한 헨델은 1717년 조지 1세가 영국을 방문하자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서둘러 곡을 작곡했다고 하는데, 바로 이 곡들이 헨델 기악음악의 대표작이 된 수상 음악(Water Music)이다. 이 수상 음악은 말 그대로 물 위(水上)에서 연주하기 위해 작곡된 음악으로, 헨델은 자비를 들여 악사 50명을 배에 태워 왕과 귀족들이 탄 배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연주시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행스럽게 조지 1세는 악사들에게 연주를 세 번이나 더 하도록 명령했을 정도로 이 수상 음악을 크게 마음에 들어했고 딱히 헨델을 처벌하지 않았다고 한다.




Hendel Water Music Suite (full), https://youtu.be/A3N-OJTpikc


  - Water Music Suite No.1 in F major (HWV 348)

    I. Overture   II. Andante e staccato   III. Allegro   IV. Presto   V. Air   VI. Minuet   VII. Bourree   VIII. Hornpipe   IX. Andante


  - Water Music Suite No.2 in D major (HWV 349)

    I. Overture   II. Alla hornpipe   III. Minuet   IV. Presto   V. Minuet   VI. Bourre   VII. Country Dance


  - Water Music Suite No.3 in G major (HWV 350)

    I. Allegro   II. Alla hornpipe   III. Minuet   IV. Lentement   V. Air




조지 프레드릭 헨델 (George Frideric Handel, 1685 - 1759)은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이다. 음악의 어머니로 불린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헨델은 영국 정착 후, 앤 여왕의 총애를 받으며 오페라 작곡가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말년 런던에서 이탈리아 오페라의 인기가 시들자 오라토리오 작곡에 힘을 쏟아 <메시아> 같은 명곡을 남겼으며 가난한 음악가 구제회에 1000파운드를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다. 영국의 국가적인 음악가로 존경을 받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바로크 시대] 바흐와 헨델 : 는 요한 제바스티안 (1685-1750)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1685-1759)이 등장함으로써 절정을 이루어 일단 정리되었다고 하겠다. 이들 두 사람은 다른 17세기 초기의 대가들과는 달리 새로운 형식이나 양식을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의 요소를 각각 독자적인 방법으로 자기 것으로 소화시켜 완성시켰다. 이들은 모두가 독일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여러 나라 양식을 받아들여 혼합 또는 융합시켰다는 점에서도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생애나 인격이 매우 다르듯이 음악도 여러 점에서 다르다는 점은 흥미있는 일이라 하겠다. 우선 바흐는 일생을 통하여 국외에 나간 일이 없고 여행이라 해도 기껏해야 함부르크 정도였지만, 헨델은 독일, 이탈리아, 영국에서 그의 일생을 보냈으며 특히 마지막에는 영국에 귀화한 국제인이었다. 바흐는 두 번의 결혼에서 20명이나 되는 자녀를 두었고 끊임없이 신변의 자질구레한 잔근심으로 고민하였음에 반하여 헨델은 결혼도 하지 않고 항상 모험을 즐겼다. 뿐만 아니라 바흐가 독일에서도 이름높은 전통적 음악가의 집안에서 성장하였음에 반하여 헨델에겐 전혀 음악가 조상이 없었으며 또한 그가 음악가가 되려는 뜻을 부친은 완강하게 반대하였다. 인격 면에서도 바흐는 겸손하고 경건하며 때로는 완고했음에 비하여 헨델은 보다 세속적이며 겉보기에 화려하고 귀족적이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두 사람의 차이는 그대로 음악에도 나타나 우리의 흥미를 끈다. 작곡에 쓰는 악곡형식으로서 바흐는 오페라를 제외하고는 당시 있었던 대부분의 형식을 다루었으나 역시 주력은 교회 칸타타나 오르간 작품 같은 교회 음악이라고 하겠다. 한편, 헨델의 대부분의 작품은 오페라와 오라토리오였는데, 그의 오라토리오는 매우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것으로 말하자면 종교적 제재에 의한 오페라 같은 것이었다. 또 바흐의 작품 대부분이 교회나 궁정에 근무할 때 요청에 따라 쓴 실리적인 것이었음에 비하여 헨델은 틈이 나는 대로 아무런 목적이나 필요성도 없이 작곡하였다는 점도 흥미롭다고 하겠다. 안타까운 점은 두 사람은 같은 독일 태생이며 태어난 해도 같은 그들이었지만 단 한번도 만나지 못 했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들의 가문과 음악적 특성, 성격의 차이 때문에 만날 기회를 갖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바흐와 헨델은 독일에서 성장하고 그 전통을 익힌 뒤에 주위 여러 나라의 갖가지 양식을 받아들인 점에서는 모두가 공통되나 그것을 어떻게 혼합시키고 융합하여 자기 것으로 했느냐의 점에서 두 사람은 매우 다른 경지의 높이를 이룩하고 있는데, 그들이 취한 태도에서의 근본적인 차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에 집약된다고 하겠다. 두 사람이 모두 폴리포니의 대가이나, 바흐의 음악에서는 폴리포니가 지배적이며 헨델의 음악은 호모포니가 지배적이다. 바흐의 성악곡의 최대 특징은 기악적이란 점에 있다. 즉 그 성악 멜로디는 종종 연주가 곤란할 정도로 기악의 이디엄에 가깝다. 한편, 헨델은 보다 성악적 표현법이 풍부한 작곡법을 택하며, 기악작품에서까지도 본질적으로는 성악의 이디엄 바탕으로 쓰고 있다. ( 출처 : 위키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