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芸 아끼시의 미쓰비시그룹 창업자 [이와사키 야타로]의 생가를 방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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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 高知県 [고치현]

2011. 5. 6.

 

호암 이병철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 국제 학술 심포지엄에서
[야나기마치 이사오] 게이오대 교수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삼성과 미쓰비시 두 그룹의 창업자가 인물을 중요시 했던 점을
닮았다고 언급했는데, 그외에도 닮은 점이 또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 창업한 회사명에 각각 미쓰비시상회 그리고 삼성상회 등
     商會란 단어를 사용한 점
㉡. 태어난 곳도 당시로서는 두 분 모두 외진 농촌이었으며,
㉢. 자수 성가한 후 고향의 발전에 투자 등 기여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
㉣. 생가는 멋지게 복원하여 많은 분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 

    주고 있으며,

㉤. 생가에 소요되는 경비는 모두 회사에서 부담하는 점

㉥. "미쯔"나 "삼"은 모두 숫자 3을 의미하는 것까지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자기가 태어 난 고향에 공장을 짓거나 투자를 하여 고향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인지상정으로서 일반적으로 대그룹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경남 의령 출신 대재벌 그룹인 삼성에서 돌아 가시기 전에도 그러했겠지만 지금도 선친의 고향을 내버려 두고 있듯이 생가 유지에만 신경을 쓰는 것 이외에는 전혀 지원이 없다고 하여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호암]이 생전에 하신 말씀

 

 한발만 앞서라.
모든 승부는 한발자국 차이이다.


그런데, 1987년 11월에 돌아 가셨으니 2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무소식이랍니다, 늦어도 수천만 발자국 이상 늦어지고 있군요.

 

이곳 고치현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회사의 창업자가 또 한 분 있더군요, 바로, 카시오시계로 유명한 그 회사의 창업자도 고치현 출신인데 이분도 전혀 투자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번 방문에서 그나마 투자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곳 출신 기업가가 가게를 오픈했더군요, 모든 여성들의 아니 일부 여성들이 갖고 싶어 하는 "루이비통"의 일본 총판 사장이 이곳 출신이어서 명동이나 광복동처럼 명품가(街)도 없는 고치현에 가게를 오픈했더군요, 

 

 

현대의 고[정주영] 회장은 님북이 나눠져 있어서 갈 수 없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생전에 소 천한 마리를 이끌고 원산으로 간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와사키 야타로]가 여러분을 그의 생가를 안내합니다,

 


2009년도에 이어서 두 번째로 고치현지사의 초청으로 지난 1월 일본을 다녀 왔습니다. 당시는 서부 고치현을 주로 돌아 다녔는데 이번에는 고치시와 동부쪽을 안내해주더군요,

 

오늘 소개할 곳은 일본의 재벌 미쯔비시그룹이 창업자인 [이와사키 야타로] (1835 ~ 1885)의 생가입니다. [이와사키]는 원래 신분이 낮은 하급무사였는데 메이지유신의 기틀을 마련한 일본의 국민적 영웅 [사카모토 료마] (1836 ~ 1867)와 동향이었으나, 메이지유신 실세들과 유착 관계로 미쓰비시 성장의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지만 [료마]와 서로 교분은 없었다고 합니다. NHK 대하 드라마 "료마전"에서는 두 사람이 교우한 것으로 각색된 것입니다.

 

[사자왕]이 30년전 직장 생활할 때 당시 미쓰비시직원들과 거의 매일 만난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가까]란 직원이 위급 상태에 빠져 사경을 헤맬 때 부산대학 병원으로 긴급 후송해서 목숨을 건진 일이 있어서 생명의 은인으로 불리우며 몇 년 후 동경 미쓰비시 본사에서 만났을 때 생명의 은인이라고 술을 너무 많이 먹이는 바람에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그 회사의 창업자가 살던 생가에 발을 디딛게 될 줄은 예전에 미쳐 생각하지 못했었지요.

 

고치현 아키시에 어서 오이소 ~ 지도의 좌측 상단에 생가 표시있음


고치현청의 요청으로 안내를 맡아 주신 [노부오 오쯔보](66세, 大坪 信雄)씨는 아키시 상공관광수산과 소속으로 자원봉사를 하는데 제약회사 "로쉬"에서 근무했었다고 하는데 한국어는 하지 못하고 일본어로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생가 입구가 보입니다. 생가는 미쓰비시본사의 자금으로 유지 보수되고 있다고 합니다,

 

울타리를 대나무로 쳐 둔 것은 비상시에 화살로 사요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당시는 사무라이직을 사고 팔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급무사직을 팔아서 농부가 되고 그 자금으로 이 집을 지었고, [료마]집안은 전당포를 했었는데 그렇게 번돈으로 사무라이직을 사서 하급무사직 신분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하급무사직을 팔아서 농부가 된 후 집을 짓게 되었을 때 사무라이 집안만 가능한 "가부키" 문 그리고 마루 밑에는 "식기다이"(?)를 설치했기 때문에 일반 주택과는 다르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돈으로 부족하여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래 붉은 글씨로 표시된 부분을 보세요, 문을 열다가 손이 미끄러져서 창호지가 찢기지 않도록 대각선으로 나무를 덧대어 놓았군요, [사자왕] 어릴 때 문을 열다가 창호지가 잘 찢어져서 항상 보기 싫었고, 부모님이 수시로 창호지 작업을 귀찮아 하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지금 집안 일에 꼼짝을 하기 싫은데 그때 당시 창호작업을 하시던 부친을 잠시 회상합니다,

 

아래 사진은 천정입니다. 가정집인데도 불구하고 아주 특이하게 만들어져 있으며 천정이 많이 높아서 겨울에 난방비가 많이 들겠더군요, 공사비가 부족하여 나무들을 구입하지 못하여 다른 재목을 사용하거나 덧대었고 합니다. 그 부분 사진을 촬영했는데 보이지가 않는군요,

 

옛날식 초갓집입니다, 근대식으로 지으면 비용도 저렴한데 지금은 볏짚으로 집을 짓는 비용이 엄청 비싸게 먹힌다고 합니다. 물론, 몇 년마다 교체할 때마다 미쓰비시에서 비용을 부담한다고 합니다만, 그룹 이미지 때문에 부담하는 것이지 고치현의 발전에는 기여하는 바가 전혀 없다고 합니다. 미쓰비시 공장도 없고 고용 창출할 수 있는 시설 자체를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우리네 사고방식으로는 이해가 아주 힘든 부분입니다,

 

어느 정도 돈을 모은 후 창고를 지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지붕에 기와을 얹었고, 창고 들어 가는 입구에 계단을 설치하여 물품을 입출고하는데 불편을 준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미쓰비시의 로고가 발전하게 된 이력을 명시했습니다,

 

아래 자료는 가이드이신 노부오 오쯔보](66세, 大坪 信雄)씨가 보여 준 것입니다,

 

 

아래 창고에 현재 사용하고 있는 미쓰비시 로고가 사용된 것이 보입니다,



 

아래 골방에서 자랐던 모양입니다,

 

 

가이드이신 노부오 오쯔보]씨와 고치현청 근무 통역인 광주 아가씨 [김 혜영]씨

 

 

어릴 때 자던 방쪽 밑에 담벼락을 둘러 보니 일본에서는 보기 드물게 우리네 촌에서 보던 스타일과 비슷해서 의문이 생기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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