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知短期大學 日韓交流그룹"의 [나카노 마사아키]氏 ~ 두 번에 걸쳐서 고치현 지사의 초청으로 방문시 두 번 모두 초대를 하면서 2차 노래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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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 高知県 [고치현]

2012. 1. 3.

 

日本 高知短期大學 日韓交流그룹"의 [나카노 마사아키] (中野 雅朗)씨와

그의 아름다운 부인 두 분에게 감사를 드리며,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아름다운 추억의 장으로 남깁니다.

 

 

* [사카모토 료마]의 고향이어서 공항이름도 '고치료마공항'이라고 합니다.

 

처음 만나게 된 동기는 2009년 1월 고치신문에 "한국에서 온 블로거 [사자왕]의 방문" 기사를 읽고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 와서 고치현에서 마지막 저녁 시간을 통역을 맡은 광주 아가씨 [김 혜영]씨와 [나카노]씨 부부 같이 식사를 하고 2차로 문현동 출신의 여성이 운영하는 "부산"이라는 상호의 노래방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부인이 노래를 아주 잘 하시더군요,

 

두 분의 초대로 맛있게 먹었던 치보 (千房)의  오코노미야끼 식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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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당시 분명히 한국에서 만난 적이 있는 분으로 기억이 되는데 [나카노]씨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몇 년전인지는 모르지만 지인이 누군가를 만났을 때 마침 인사를 시켜 주는데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길을 묻거나 도움을 주어야 할 경우 빠지지 않고 나서는 것을 즐기는 [사자왕]으로서는 고치현에서 서울을 가기는 편리해도 부산오기는 쉽지 않는 교통편인데 부산대학교에서 어학 연수중이라는 것과 진주를 다녀 온다는 내용을 들은 것이 생각나더군요.

 

그런데 어느 분이 모시고 왔는지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당시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더군요.

 

올해 1월에 또 고치현 지사의 초대로 두 번째 다녀 왔는데 이번엔 저녁 식사를 [사자왕]이 대접할려고 미리 [김 혜영]씨를 통해 부탁해 두었는데도 안되더군요. 이번에는 3차까지 갔었습니다. 2차 분위기가 안 좋다고 작년에 갔던 '부산' 바으로 다시 찾아 갔답니다,

 

얼마 전 그분의 집 전화번호를 [김 혜영]씨를 통해서 파악하여 전화를 드렸습니다. 이번 10월에 진주 유등 축제 기간에 우리나라를 방문한다고 하더군요. 이때 2차 3차로 가서 술도 마시면서 노래를 부를만한 노래방을 미리 찾아 두어야 할텐데 아는데가 없어서 걱정했었습니다만, 여행으로 인한 피곤함을 호소하는데다가 다음 날 아침 진주로 가신다고 하여 저녁 식사와 광안대교 드라이브만 하고 호텔로 안내했습니다,

 

은퇴 후 한국에서 온 분들의 관광 가이드 또는 통역 일을 자원하여 봉사하고 계신다고 하는데 [나카노]씨가 직접 작성한 본인의 프로필을 소개합니다, 일부 몇 개 단어는 이해를 돕기 위하여 수정했습니다,

 

제목 : 일한교류와 나

작성자 : 나카노 마사아키

2008년도 고치단기대학 한국 진주산업대학교

사회인 학생 국제 교류 보고서 2009년 3월

 

< 처음에는 >

 

 내가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80 년대 후반이었다. 특히 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된 전년에 일어난 "대한 항공 폭파 사건"은 남북으로 찢어저버린 한반도의 역사를 깊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사건에 대한 여러 각도의 보도나 분석을 통해서 이웃 나라인 한국에서 생긴 정치 대립과 그 배경에 있는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후,  몇 번의 군사 정권을 겪고 나서 한국이 스스로 민주화를 쟁취하는 과정에 압도되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현실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극복해야 할 과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 나라의 말을 통해서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고, 한국의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근현대의  일본과의 역사를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되었다.

 

< 일한 교류 사업에 참가하고 >
 
 한국방문은 2001년에 고치단기대학과 진주산업대학교 교류사업에 참가한 게 처음이었다. 그 당시에는 일본 문부상에 의한 교과서 검정 등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반발했기 때문에 우리 서로 교류를 중지하다가  재개되어서 한국에 간 것은 12월의 크리스마스 직전이었다. 방문단은 다마키, 서은경 선생님을 비롯한 9명의 적은 인원이었지만 정말 충실한 내용이었다.

 

  처음으로 한 홈스테이, 경주에서의 남산 등산, 남원의 판소리 공연, 크리스마스 이브에 첫눈이 내린 부산 등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3년후에는 다시 진주를 방문했다. 그땐 일본과 한국의 양 대학이 학술문화교육 교류협정을 맺고, 양쪽의 학생이 서로 진주와 고치의 역사와 풍토를 한국말로 소개하고, 사물놀이도 볼 수 있었다. (옆의 사진은 지리산 청학동에서 민속 의상을 입은 나, 여기에는 사진이 없습니다.)

그 다음해 진주산업대학 방문단이 왔을 때에는 " 한류 붐 "에 대해 의견을 서로 교환하고, 토목 현장을 시찰하는 등 얻은 바가 많았던 의의있는 교류였다.

 

<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 >
 
  작년 3월에 고치시청을 정년퇴직하고, 5 월말부터 11월 상순까지 부산대학교 국제교류교육원에서 한국어 3,4급을 이수하고 중급과정을 합격 수료했다. 부산시는 인구 약 400만으로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고속 페리로 3 시간 소요되는 아주 가까운 곳이다.

 

 다녔던 대학은 금정산 기슭에 있었고, 하숙집에서 걸어서 5 분 정도였지만  왕복하는 길이 가파른 산길과 같았다. 그 대신에 조용한 주택가로 솔밭하숙이란 이름대로  10그루 정도의 소나무와 채소를 심어놓은 밭에 둘러싸인 2층 건물이었다. 그곳에서 중학교 국어 교사 4 명 가족과 부산대학교에 다니는 10 명 정도의 한국 남녀학생들과 같이 살았다. 비용은 아침 저녁 식사 포함해서 한달에 45 만원인데, 다다미 여섯 장 정도 방으로 풀로링과 봉당, 책상이 두 개에 책장과 옷장까지 있는  온돌방이었다. 여름에는 호박 덩굴이 뻗어져 올라 가며, 계절마다 장미꽃이나 석류나무, 능소화가 피는 곳으로 집 주인의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대학 수업은 9 시에서 12시 50분까지 진행되는 데 20분간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제2교시가 시작하며 수업중에는 모국어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으며, 어길 시에는 벌금을 부과했기 때문에 무엇보다 집중력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초급에서 함께 진급한 사람인데, 20 대 전반의 남녀(반에서 여자가 3 분의 1), 한 반은 16명으로 편성되었고 한급에  두 개의 반이 있었다. 중국인이 85%, 일본인은 한 반에 2~3명, 프랑스인과 러시아인도 있었다. 한 학기는 10 주 이고, 시험이 두 번 있었다. 

 

 시험에는 받아쓰기, 말하기, 작문이 있고, 3 급에서는 속담의 해석과 활용, 한국요리 만드는 법, 자기 나라의 옛날이야기 줄거리 등을 이야기하였다. 4 급에서는 " 내 인생에 변화를 준 것  ",  " 내가 한국 대통령이 된다면 " 등의 제목으로 발표나 연설을 하는 것이었다. 자유작문은 400~600 자로 쓰는데 4 급에는 " 시민들 위한 전지 "라는 내용을 발표하는 과제로 나는 나의 고향출신의 시인 " 마키무라 코 "가 쓴 시 " 간도 파르티장의 노래 "를 소개하고 그가 살았던 시대를 설명하는 팸플릿을 만들었다. 수업 중에는 이런 과제에 대해 발표해야 했기때문에 예습을 해야 했다.
     
 또 수업 일환으로 영화 감상하는 시간도 있었다. 3 급에는 한국어 자막이 있고, 4 급에는 자막없는 영화를 보고 서로 감상을 말하는 시간도 있었다. 과외 수업에는 역사 유적지에 버스 투어(큰 버스로 6 대)와 문화 체험으로 장구 실습, 한지 세공 등 여러가지 경험을 하게 되었다.(과외 수업비는 모두 대학교가 부담함)

 

 < 진주 개천 예술 축제 >
 
 그해에는 부산대학교에서 6월에, 고치단기대학에서 8 월에, 그리고 10 월 3 일에 정범석씨가 초대해 주셔서 세 번째로 진주를 방문했다. 그때 마침 연휴로 고향에 돌아가는 정범석씨의 조카 부부와 같이 진주 경유해서 하동까지 3시간(평일이면 1시간 30분 소요)이 걸려서 겨우 도착했다.
 
 개천 축제 개회식을 비롯하여 진주성의 라이트업, 남강에는 배다리가 걸려서 강에는 무사의 모습이나  무엇인가 영동이 뜨고 몇 만개의 제동이 비추는 야경은 환상적이고 아름다웠다.  다음 날에는 거리에서 행진하는 왕조시대의 무사대나, 말을 타면서 활을 쏘는 무예 등은 웅장한 퍼레이드를 볼 수 있었다.

 

 이틀간 정범식씨는 나를 데리고 다니며, 또한 대학의 게스트하우스에서도 하릇밤 같이 잤기 때문에 매우 피곤해 보였다. 그러면서 정범석씨가 말했다. "나카노씨가 한국을 사랑하는 것처럼 저는 일본을 사랑해요." 이것이야 말로 이 교류 사업의 성과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교류 사업을 통헤 더옥더 우호를 깊게 해야 저도 한국말에 정진하면서 더 시야를 넓히고 일한 관계를 촉진하겠다고 생각해요.

 

 또한  한국에 살았던 동안 신세를 진 이형래 선생님을 비롯하여 진주산업대학교의 여러분, 부산대학교의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한 많은 학우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며 이 보고를 마치고자 한다.

 

당시 2차로 갔던 '부산' 술집에서의 [최지우]씨 이외의 다른 여성은 싫다는 日本 高知靑年의 동영상 사랑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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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술집의 [최경숙] 여사장의 또순이 활동이 신문에 게재된 내용

 

 

 

2009년 당시 촬영했던 두 부부의 동영상 장면 및 인물 사진을  허락받고 올리겠다고 미루다가

그만 사진을 분실하여 올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2011년 부산 방문 때에도 촬영을 할 생각을

미쳐 하지 않아서 사진이 없지만 원고만이라도 올리겠다고 작성해 둔 것을 이제야 올립니다.

 

[나카노 마사아키] (中野 雅朗)씨 부부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