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일 : 생장 피에드포르~론세스바예스(26.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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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산티아고 순례길

2019. 10. 30.


제1일 : 생장 피에드포르~론세스바예스(26.3km),8시간 30분


2019년 9월 19일


나폴레옹 루트라 불리는 피레네 산맥을 넘는 날이었다.

론세스바예스까지는 26킬로가 조금 넘는데,순례길에서 가장 힘든 구간으로 손꼽는다.

13킬로 떨어진 곳에 오리손 알베르게가 있긴 하지만,수용인원이 워낙 적어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숙박이 어렵다.

론세스바예스까지는 무조건 가야만 했다.

새벽 6시 40분에 알베르게를 나왔다.

까미노길을 미리 알아두지 않아 배낭멘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따라가면 될 줄 알았는데,어두운 새벽길 위엔 아무도 없었다.

잠시 헤맨끝에 성문을 나와 다리를 건너며 몇몇의 순례객들을 만났다.


안개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우의를 쓸 정도는 아니라 레인커버만 씌우고 그냥 걸었다.

산자락을 발아래 두며 계속해서 올라야 하는 길이었다.

습한데다 땀까지 섞여 연신 얼굴을 닦아냈다.





저 푸른 위에 그림같은 풍경들을 바라보며  한걸음 한걸음씩 이어갔다.

그러면서 피레네산맥의 탁 트인 풍광들을 보고싶어 하늘이 맑아지기만을 기도했다. 



참 예쁜 길이었지만,여유를 부리며 걸을 시간은 없었다.

가야할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완만한 포장길이었지만,조금씩 고도를 높혀야 하는 길이었기에 숨이 계속 턱에 걸려 있었다. 




스틱도 없이 참 여유롭게 잘 걷는 외국인 순례객..

내 갈길이 바빠 사진을 찍고는 이름도 못물어봤다.



피레네산맥 넘는 구간이 힘든 구간인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정말 힘들었다.

흙길로 된 오르막은 끝도 없이 계속 이어졌다.

거기에 시차적응도 안되었고,피로도 미처 다 풀지 못한 상태라 더욱 몸뚱아리가 무거웠다.

눈앞에 보이는 풍광으로 위로받으며 묵묵히 걸었다.






제법 고도가 높아졌다.

저 아래 힘겹게 올라오는 순례객들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산아래 그림도 화폭이 점점 넓어져 시원스러웠다.

다행히 안개비는 더이상 오지 않았다.




힘을 내요,세뇨리따 리~~~


배낭무게를 줄이느라 물은 500m하나만 넣었었는데,턱없이 부족했다.

고맙게도 물을 보충할 수 있는 식수대가 나와 벌컥벌컥 한병을 다 마시고,다시 채워넣었다.

가기전엔 물갈이하면 큰일이니 물은 꼭 생수를 사먹으려고 했었다.

하지만,그 생각은 하룻만에 바뀌었다.

식수대를 만나면 무조건 물을 보충했고,나중엔 개수대 물은 물론이고 화장실 물까지 벌컥벌컥 마셔댔다.

다 환경에 적응하게 되어 있었는지,아무 탈이 없었다.


2시간 반만에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는 오리손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안개로 휩싸여 사진에서 봤던 그 아담하고 예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몸이 축축해 세요도 찍고 몸도 녹일겸 안으로 들어갔다.


바욘에서 함께 기차를 탔던 영훈이를 만나 카페 꼰 레체를 주문해 빵이랑 함께 요기를 했다.

추워서 그랬는지,우유 들어간 따끈한 커피가 그만이었다.

화장실은 남녀가 함께 쓰는 곳,딱 하나뿐이라서 한참을 기다려 볼일을 봤다.

기다리며 일본에서 온 요오스케와 인사를 나눴다.

순례길에서 일본인은 아주 드물었다.동양인 중에는 한국인이 가장 많았고,그 다음으로는 대만인이 많았다.


드넓은 초원위로는

양이며 말들이 뛰놀고 있었다.

딸랑딸랑 소리가 들리면 양이나 말몰이를 하는구나~하고 생각하면 되었다.

그래서 까미노길 위엔 언제나 쿰쿰한 냄새는 물론이고 말똥이 정말 많았다.

노란 화살표를 잘 찾는것 못지 않게 말똥을 잘 피해 걷는것도 까미노길의 아주 중요한 요령이었다.





돌무덤이나 십자가는 까미노에서 자주 눈에 띄었는데,새벽길에 지날땐 조금 으스스할때도 있었다.

마을을 벗어날땐 꼭 공동묘지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져 그냥 까미노의 일부려니~했다. 


참내..내가 배낭을 메고 여기까지 올줄이야~~

아무리 곱씹어봐도 신기하기만 했다.

무턱대고 오고 싶은 마음에 6개월전에 비행기티켓을 끊고나서는 어찌나 겁나고 두려웠는지..

가끔 악몽도 꾸었다.

아무런 준비도 안했는데,맨몸으로 비행기를 타기도 했고,또 어느날은 여권을 잃어버려 꺽꺽대며 우는 꿈을 꾸기도 했었다.

이렇게 현실이 되어 까미노길 위에 있지만,가끔은 실감이 안나기도 했다.


아무리 혼자걷는 길이라지만,혼자 걷는다는건 상상할 수 없었다.

언니만큼 훌륭한 길동무는 없었다.

어느날,할 이야기가 있다며 도봉산역 커피점으로 불러내 `나,올 가을에 산티아고 갈꺼예요~`

첫마디는 이렇게 내뱉고는 그 다음은 `언니 안가면 나 혼자서는 못가요~같이 가주세요~`라는 속마음 대신에 `언니 안가면 나 혼자서라도 갈꺼야~`이랬다.

아,진짜..나라는 사람은 정말 웃기는 짬뽕이었다..ㅎㅎ 



누구는 열심히 걷고,누구는 등대고 누워있고...

열심히 걷는 바로 저 우리우리한 뒤태의 주인공은 영훈이었다.

마지막 산티아고까지 함께 걸을 줄은 저때만해도 몰랐었다.

영훈이가 만들어준 특급 스파게티를 먹게 될 줄은 저때만해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냥 지나가는 인연이려니~했었다.





안개속에서 오아시스를 만났다.

바로 푸드트럭이었는데,음료며 과일들을 팔고 있었다.

바나나와 오렌지쥬스로 요기를 좀 했다.

스페인어를 썼더니 아주 좋아했다.별것도 없었다.

그냥 `도스 쑤모 데 나랑하 뽀르파보르!`이러면 끝이었다.




노란화살표와 함께 까미노의 시그날이 되었던 신발..

이런 모습을 까미노길 위에서 아주 많이 볼 수 있었다.


날이 개기 시작했다.

산아래 풍경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된걸음끝에 받는 선물이구나~했다.




큰 교훈하나를 얻었다.

무조건 앞사람만 따라가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것과 노란색 시그날을 잘 살펴야 한다는 것,두가지였다.

바닥에 써있는 숫자만 보고 무작정 따라가는게 아니었다.

가다보니 자전거가 다니는 길이었다.

우리말고도 열명 넘게 알바를 한 셈이었는데,누구랄것도 없이 그냥 앞사람만 보고 따라갔다는것이었다.

왔던 길을 다시 걷는다는건 큰 곤혹이었다.

맥이 빠져 다리힘이 풀려 막 후달거렸을 정도였다.






다시 까미노길을 찾고나니 햇살은 따가워지고,하늘은 점점 파래졌다.

안개는 점점 걷히기 시작하더니,산자락마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오르막이 너무 힘들어 기절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언덕에 올라서자마자 배낭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는데,산자락이 예술이었다.

만약 알바를 안했더라면 못봤을 풍경이라 생각하니,신은 참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된 걸음끝에 이런 달콤함을 주셨으니 말이다.







산자락을 빙글빙글 돌며 걷는 길이 이어졌다.

산그림은 마치 스위스의 알프스 자락처럼 보였다.

구름까지 얹혀져 있으니 그림이 따로 없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길이 계속 이어졌다.

너무 힘드니 점점 멋진 풍광으로도 큰 위로가 되지 못했다.



롤랑의 샘을 만났다.

누구랄것도 없이 다 쉬어간다.

나도 남은 물을 다 마시고 다시 또 보충했다.


드디어 프랑스 국경을 넘는 순간이었다.

나바라 주에 들어섰다는 표지석 하나로 스페인으로 진입했음을 알려주었다.  




샤프란이라는 꽃들이 인사했다.

빠에야에 들어가는 그 노란색 향신료의 정체가 바로 이 샤프란인데,조금이라도 높은 지역이다 싶으면 어김없이 피어있었다.

지나가는 한국인 순례객한테 꽃이름을 알려주니 샤프란이란 섬유유연제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폐허가 된 국경초소를 지나고도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은 끝이 없었는데,

햇살이 따가워서 더 곤혹스러웠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눈부셨다.

하지만 그 햇살의 고마움을 알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정상에 오르기 전,한차례 숨을 고르고..







마침내 안부에 닿았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자니,외국인 순례객이 뭐라뭐라 그랬다.

갑자기 쫄아서 못알아듣고 우물쭈물하고 있으니,그 옆에 앉아있던 한국학생이 해석해주는데, `사진찍었으니 모델료를 달라`~는 뜻이었다.

알고 봤더니,레오네오란 그 브라질 순례객이었는데,그 때가 인연의 시작이었다.

첫 만남때도 참 위트있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레푀더 안부에서 조금 내려가니 길이 두갈래를 갈라졌다.

경사진길 4.1km,완만한길 5.6킬로..

선택의 기로에서 언니랑 나는 조금이라도 걸음수를 줄여보겠다고 경사진 길을 택했다.


급하게 내려오는 길 양옆으로는 키 큰 나무들이 빼곡하게 늘어져 있었다.

대부분 순례객들이 완만한 길을 택했는지,한동안 우리말고 딱 한사람만 있을뿐,아무도 없었다.





노란색 화살표는 그 어디라도 그려져 있었다.

바닥은 물론이고,담벼락,신호등,그리고 나무까지..

더러는 알베르게 표시까지 노란색으로 표시되어 있어 주의해야했다.



500m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고 숲을 벗어나자마자.마지막 철문을 통과하며 드디어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다.


곧바로 오른편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공립알베르게로 갔다.

시내를 가려면 왼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2킬로 이상을 가야만 했다.


알베르게는 180명넘게 수용하는 대규모 알베르게였는데,

사람들이 많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만했다.접수처말고도 따로 안내만해주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차례가 와서 접수하고 여권과 순례자여권을 차례로 보여주니 세요를 찍어주었다.

그 다음엔 침대를 지정받고,저녁과 아침까지 신청해서 24유로를 냈다.


안내하시는 분이 침대까지 안내해 줬는데,아예 다른 건물이라 건물 밖으로 나가 방으로 안내했다.

18명이 한방을 쓰는데,침대는 다 2층침대였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남녀구분없이 썼다.


불편한 잠자리,그리고 거친 음식에 익숙해져야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아울러 눈치도 빨라야 한다는것..

그래야 샤워실에서 줄을 안서고 쓸 수 있고,식사시간도 놓치지 않는다.

건조대를 쓰려면 빨래도 잽싸게 해야 쓸 수 있다.

늑장부리다가는 빨래 널 공간도 없다.

세탁기나 건조기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밧데리 충전할때도 그렇다.

알베르게는 더 심하다.

선착순으로 침대를 배정하니 먼저 도착해야 2층으로 올라가는 불편이 없다.

안그럼 문지방이나 배드버그가 나올법한 어두컴컴한 침대를 배정받아 밤새 찜찜함을 감수해야한다.

공급은 부족하고 수요는 넘쳐나니,재빠르게 선점하는거야말로 살 길이다.

순례길은 생존경쟁의 현장이었다~~~


침대배정을 받으며 식권을 받았는데,제대로 살피지 않아 엉뚱한 식당을 갔다가 다시 찾아간 레스토랑은 분위기가 참 좋았다.

 순례자메뉴였는데,한테이블에 10명이 앉아 푸짐한 식사를 했다.

빵이며 수프,우유,과일등이 식전에 나왔고,두번째요리는 닭고기를 시켰다.

식탁 위에 있는 와인을 서로 따라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내 바로 옆에는 프랑스인이었는데,영어도 스페인어도 서로 잘 통하지 않아 그냥 단어들의 조합으로 대화했다.

그리고 한국인 순례객 두분도 있었는데,나중에 알고보니 처남 매부 사이였다.

처음엔 데면데면했는데,자꾸 만나다보니 정이 들어 길 위에서 만나면 멀리서도 반가워하며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