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인물

진달래 2009. 10. 1. 20:52

 

[이규태 역사에세이] "고종황제가 미국인황후 얻었다"

왕조 동경이 낳은 미국언론 오보...일세력 견제 의도도 .

'필라델피아 출신 미국 아가씨 에밀리 브라운 /한국의 황후가 되다/1700만 한국 백성을 신민으로 거느리다'. 1903년 10월 24일 치 '콜로라도 스프링스 텔레그라프'지의 전면 머리기사다. 물론 특종이다. 그런 지 한달 남짓 뒤인 11월 29일자 '보스턴 선데이 포스트'지는 이 특종 기사를 받아 '유일한 미국인 황후 어떻게 대관했는가'라는 표제로 역시 전면 머리기사로 결혼식 진행을 상 세하게 보도했다. 이 두 신문의 기사 내용을 좀더 상세하게 살펴 보면 이렇다.

 

사진설명 : 1931년 11월 29일치 '보스턴 선데이 포스트지'에 보도된 고종황제와 미국인 에밀리 브라운양 결혼 기사. '유일한 미국인 황후 어떻게 대관했는가'라는 제목으로 브라운양의 클로스업된 모습과, 고종과 브라운 양이 일산으로 가린 연(임금의 수레)을 타고 궁을 나오는 모습이 그려져있다.


오하이오의 독실한 장로교회 목사 피터 브라운이 10년전 열다 섯살난 딸 에밀리를 데리고 한국에 선교차 갔다. 이 선교사가 고종을 알현할 때 에밀리를 데리고 궁궐에 들어갔다. 당시 명성황후가 뜻하지 않게 숨진 뒤에 고독한 나날을 보내왔던 황제께서 이 순박한 백인 소녀를 보고 친근감을 느껴자주 궁에 불러들여 각별히 대접했다. 아버지 교회의 성가대 지휘를 맡은 에밀리양은 아버지의 목회 활동과 한-미간 외교에 좋은 영향을 주리라 믿고 접근했다. '신미년 강화도 광진포의 한-미전쟁 이후에 양이 양추 양괴로 이미지가 사나웠던 미국의 한 여인이 황후가 된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까지 했다.

일찍이 포르투갈의 핸슬러 여왕이 신분 낮은 평민과 결혼, 귀천상혼 선례를 남겼고 미국 평민 출신 커즌 부인이 인도 여왕이 된 적은 있지만 미국인 황후는 처음이라고도 했다. 이로써 미국 피를 받은 한국 황제가 태어날 수 있게 됐다 하고 '지난 8월에 있었던 약혼식에는 폐백을 실은 우마차가 인산인해를 이룬 하객 틈에 끊이질 않았다'고도 했다.

'보스턴 선데이 포스트'는 혼례 기사를 장황하게 쓰고 있는데, 익선관에 곤룡포를 입은 황제 곁에 무개차를 타고 있는 에밀리 브라운양에 대한 묘사를 보자. '한국식으로 큰 머리를 하지 않고 퍼머 머리에 영국 여왕이 쓰는 듯한 왕관을 썼으며 붉은 비단에 푸른 수를 놓은 땅을 끄는 치마는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하여 무척 무거워보였다. 아마 현대 문명인으로 브라운양만큼 화려하게 꾸민 사람은 없을 줄 안다'. 52명으로 구성된 대취타 의장악대가 뒤따르고 오색 용기가 나부낀다는 등 누군가 한국 제도나 풍물에 정통하지않고는 쓸 수 없는 허구를 사실처럼 보도했던 것이다.

이 브라운양이 바로 엄황후라는 것과 이를 처음으로 보도한 것이 빈에서 발행되는 '신자유신문'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기도 하다.

물론 당시 국내 신문인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제국신문에는 이 미국인 황후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국내에서는 미국 신문들을 볼 수 없기에 아는 사람도 없고 다만 미국 외교관이나 선교사 상인들간에 본국 친지들이 신문을 보고 문의해대는 바람에 어리둥절하고 있었을 따름이다.

서울의 미국인들이 발행하는 영문 잡지 '코리아 리뷰(Korea Review)' 1903년 11월호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거짓말이 참말 보다 생생하게 행세한다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일 것 이다. 미국 몇 신문이 한 미국 아가씨가 한국 황후가 됐다는 가십 기사를 실어 한국에 사는 미국인들의 얼굴을 들지 못하게 하고 있다. 어찌 이 광대놀음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미국 공사관은 문의가 번거롭게 답지했던지 다음과 같은 공식 성명을 내고 있다.

'한국 황제는 외국 아가씨와 결혼한 사실이 없다. 더욱이 에밀리 브라운양과 놀라운 결혼을 뒷받침해줄 근거는 추호도 찾아 볼 수 없다. 또한 한국 황실로부터 간호사-시녀-여교사-가정교사- 여의사 같은 미국인 여자를 고용하겠다는 초빙 요구도 받은 적이 없다.'

이 언론사상 대서특필될 만한 오보 픽션사건이 어떤 근거로 버젓이 일어날 수 있었던가는 미지수이나 학자들이 추정한 바는 이렇다. ▲이런 오보 기사들이 당시 앨런 미국 공사가 본국에 가 있을 동안에 일어났다는 사실 ▲이것이 맨처음 보도된 신문의 편집장이 앨런과 절친한 사이인 리덴하우스라는 점 ▲리덴하우스가 경인철도 부설당시 기술감독으로 1년쯤 한국에 와있어 한국 사정에 밝다는점 ▲픽션 중 가례행렬 절차가 앨런이 쓴 일기 가운데 고종과 민황후 행차 묘사와 흡사하다는 점 ▲당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친일배외, 곧 일본이 한국을 먹어드는데도 외국 세력 개입을 반대하는 노선을 걷고 있는데 대해, 앨런 공사는 미국 등 강대 세력이 개입해야 일본의 한국 침략을 억제할 수 있다 고 확신하는 노선 갈등을 빚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황제가 미국인과 결혼한 픽션은 바로 한-미 합심으로 침략 일본에 대항해야 한다는 앨런의 사상을 친구인 편집장이 우회적으로 픽션화 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임금이 없는 나라이기에 미국 사람들은 왕이나 왕조 향수가 별나게 강하다. 한말에 헌신적으로 한국 왕실에 와 희생적으로 봉사하다시피한 미국인이 하나 둘이 아닌 것도 왕조 향수와 무관 하지가 않다. 개국당시 외교를 도왔던 미국인 프레이저는 벼슬아 치들이 상투에 꽂는 금관자 하나 얻어 이를 자랑스럽게 가보로 간직했으며, 이를 친지들에게 자랑하자 서로 금관자 하나 얻게 해달라고 졸라대더라는 글을 남기고 있다. 하물며 미지의 나라 동양에서 왕비가 되고 왕자의 비가 된다는 것은 '신데렐라의 구 두'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동양이나 중동 왕족이 미국에 가 있 다면 사실여부를 떠나 신문이 연문을 만들어 퍼뜨리게 마련이다.

가장 잘 팔리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에밀리 브라운 사건도 단순히 이런 미국의 왕조 향수에 영합하는 돈벌이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다. 그해 3월에도 한국 왕족 연문이 미국 신문에 보도되어 떠들썩했다. 고종의 맏아들인 왕세자(순종)에게 후사가 없자 장 귀인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의화군 이강을 왕세손으로 책봉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지모가 있는 엄비가 계비로 들어가 앉아 왕자인 영친왕 이은을 낳은지라 위상이 흔들리고 위태로워진 것이다. 그래서 의화군의 미국 유학은 자의가 아니라 이같은 궁중 역학의 작용이었으며 마음 편할 리가 없었음직하다. 그럴 무렵 '뉴욕 헤럴드' 1903년 3월 1일자에 의화군의 놀라운 성명이 보도되었다. 자신은 미국민의 자유와 미국의 독립에 매혹되어 조국 왕관을 포기한다 하고 국외생활 자유를 위해 왕실이 지워준 책임을 모두 포기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계기로 의화군의 연문이 지상에 나돌기 시작했다. 그에 보면 이 왕자가 다니고 있는 대학의 여학생부에 앤지 그레이엄이 라는 여학생이 있는데 발랄하고 쾌활하여 이 왕자가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한다. 한데 교칙이 너무 엄해 학생생활을 하면서 데이트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방학이 되어 그레이엄양이 고향인 휠링에 돌아가면 의화군은 따라 내려가 데이트를 하고 가족과도 서로 알고 지냈다는 것이다. 왕자비 탄생이라는 미국 여성 선망 속에 연문이 번져나가고 여기에 왕 계승권 포기성명이 기름을 부 어 왕관을 버린 사랑으로 풍문의 물결을 탄 것이다.

한데 그레이엄양 자신이나 그의 부모는 이 둘 사이에 정식 혼약 같은 것은 없었다고 말하면서 둘 사이의 우정 이상 관계를 부정하려 하지는 않았다.

이미 결혼한 몸으로 본국에 부인이 있는 이상 그 문제를 처리 하지 않고 다른 사랑의 결실을 모색한다는 것은 부도덕하다는 여론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인의 왕실 선망과, 이에 부응하여 신문을 많이 팔아 돈을 벌려는 삼류 신문의 상혼 때문인지 한반 도에 뻗쳐가는 일본 세력을 꺾는 데 미국과 결합하기를 요망하는 여론에 부응하려 함인지 한국 왕족과 미국 시민의 결혼 이야기가 이렇게 20세기초의 한 시대를 휩쓸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