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공공철도 이야기

꿈꾸는 기관사 2013. 11. 5. 23:24

정녕 독일 전성시대가 오는 걸까요. 지난달 22일 실시된 독일 총선 결과 제1 야당인 사회민주당을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3선에 성공한 메르켈 총리에 관한 소식이 많은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메르켈의 승리를 두고 유로존과 유럽연합의 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한 외교적 능력과 내부적으로는 ‘엄마 리더십’이라고 하는 겸손하고 부드러운 이미지가 주효했다는 분석이 대체적입니다.

유럽연합이 참혹한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르고 난 후 ‘전쟁 없는 유럽’을 위한 노력의 산물이고, 본질적으로는 독일 패권주의를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실험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독일과 메르켈은 어쩌면 역사의 아이러니일지도 모릅니다. 유럽 좌파들 사이에서는 메르켈이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에 대해서는 연금축소와 복지예산 삭감 등 엄청난 긴축재정을 요구하면서 자국민에게는 사민주의의 미소를 보내는 이중적 행보를 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합니다.

한편 한국 보수언론들은 메르켈 리더십을 박근혜 대통령과 일치시키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 좌파의 몰락을 은근히 부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이 과반의석을 얻지 못했고, 사민당을 비롯해 좌파당과 녹색당을 합치면 오히려 야당의석이 과반을 넘는 것으로 볼 때 사민당 집권 실패를 좌파 전체의 몰락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게다가 메르켈의 정책은 우리나라 진보정당보다 훨씬 왼쪽에 있습니다.

최소한의 자유주의적 정책조차 ‘종북 좌파’로 매도하는 우리나라 정치현실을 유럽 정치 일반과 단순 비교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 집권세력의 극단적인 ‘친기업 반노동’ 정책은 이번 선거에서 유효득표 5%를 얻지 못해 의회진출에 실패한 독일 자유민주당과 유사하다고 봐야 정확할 것입니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통보한 전국교직원노조에 대한 설립취소 위협이나 전국공무원노조 불인정과 같은 반노동정책은 독일 사회에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노동자들의 단결권조차 인정하지 않는 노조혐오주의의 뿌리가 파시즘이기 때문입니다.

2005년 집권한 메르켈은 독일 사회의 오랜 전통인 노사공동의사결정구조와 사민주의적인 복지와 분배정책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기존 이념체계보다 현실에서 요구되는 정책을 수용해 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집권 2기에 단행한 징병제 폐지와 원자력발전 폐기 등이고 이번 총선에서도 노동권 강화를 공약했습니다. 이후 전개될 사민당과의 연립정부 구성 협상에서 최저임금 현실화와 같은 요구를 수용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실용주의 정책은 2011년 1월 철도 민영화 공식 중단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세계 최고 철도를 자랑하던 독일 역시 70년대 이후 세계 모든 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자동차와 도로 발달로 인한 수송분담률 감소와 누적적자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국민차 폭스바겐과 속도제한 없는 고속도로 아우토반에 철도가 밀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도로교통 발달은 다른 한편으로 에너지와 환경문제라는 더 큰 문제를 유발했고 세계 철도 강국은 고속열차 계획을 통해 새로운 철도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 독일은 91년 일본·프랑스에 이어 세 번째로 고속철도를 개통시켰습니다. 앞서 독일 철도는 90년 동서독 통일과 고속철도 구축이라는 두 가지 중대한 변화에 직면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낙후한 동독지역 철도 재건과 고속철도 건설에 대한 투자가 동시에 요구됐던 것이죠.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민영화 계획’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독일 철도 모델이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6월 발표한 '철도산업 발전방안'을 '독일식 모델'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작된 논란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10월2일 한국철도 114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CEO로 최연혜 전 철도대 총장이 취임했습니다. 그 역시 학부에서 독일어를 전공했고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철도 전문가입니다. 철도노조는 국토부의 방안이 ‘독일에는 없는 독일식’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독일철도 전문가가 코레일 사장이 됐으니 바야흐로 독일 모델에 대한 진검승부가 시작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