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공공철도 이야기

꿈꾸는 기관사 2013. 11. 5. 23:27

“우리는 완벽에 가까운 열차 차량과 훌륭한 철도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열차 차량과 선로시설이 제대로 만나지 못한다.”

2001년 1월 파산한 영국 철도시설보유회사 레일트랙 대변인이 남긴 말입니다. 연이은 사고와 급증한 정부 보조금, 늦어지는 열차와 요금 폭등 등 영국은 민영화의 맨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 줬습니다. 자존심 강한 영국인들은 150년 역사의 공공철도 시스템을 파괴하는 데에는 고작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탄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철도 재건작업에 나서면서 ‘재국유화로 인한 비용이 얼마인지를 추계할 수 없음’이 더 큰 문제라고 했습니다. 마치 쓰나미로 인한 일본 원전파괴와 복구비용이 얼마인지를 추계할 수 없는 것처럼 민영화의 무서움은 불가역성에 있습니다.

지난해 10월30일 프랑스 국영철도회사 SNCF 창립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프레데릭 교통부장관은 1997년 유럽연합 권고에 따라 분리한 철도기관을 15년 만에 재통합하겠다고 공식발표했습니다. 이에 앞서 2011년 3월 SNCF 총재가 프랑스 유력언론 르몽드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 RFF(철도시설공단)와 SNCF(철도운영공사)의 분리 시스템은 실패로 향하고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한 응답이었죠.

프랑스 정부는 철도 재통합 근거로 분리된 기관 간의 권리와 의무를 조정하는 데 있어 계속된 마찰과 내부 거래비용 증가, 철도부채의 대폭적인 증가를 꼽았습니다. 그리고 철도시스템 운영 최적화와 유럽철도시장 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유럽철도 패권국으로 부상한 독일철도에 대한 견제도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런 결정에 대해 즉각 유감을 나타냈지만 프랑스 정부는 2015년을 목표로 철도시스템 재통합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초반 독일 정부는 영국 정부가 지지하는 ‘철도 경쟁체제 도입’을 위한 개방에 대단히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도로교통 발달과 동서독 통일이라는 역사적인 전환기에 누적된 철도부채를 해결해야 하는 대안으로 민영화가 급부상했습니다.

"시장과 경쟁은 공기업과 독점보다 효율적일 것이다"는 가설을 전제로 추진된 구조개혁은 94년 서독 연방철도와 동독 제국철도를 통합해 연방정부 소유의 독일철도주식회사(DB)를 설립하는 1차 개혁을 시작으로 99년 DB를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산하에 장거리여객·근거리여객·화물운송·선로 유지보수·역 관리를 담당하는 5개 자회사로 재편하는 2차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지주회사와 자회사로의 재편은 분할 매각과 민영화를 위한 사전조치였습니다. 2006년 DB는 2008년까지 자신의 보유주식 중 49.9%를 민간에 매각하는 계획을 발표했고 메르켈이 집권한 기민-자민당 연립정부는 역과 선로 등 기반시설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 대한 순차적 매각을 검토했습니다.

그러나 민영화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신자유주의 발상지인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전해졌습니다. 영국철도 민영화 실패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자본주의 심장부 월가에서 시작된 세계 경제위기는 사적영역이 공적영역보다 결코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줬습니다.

고삐 풀린 시장 자유화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철도를 비롯한 공공서비스 시장화는 결국 ‘이윤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것에 다름 아님을 확인시켜 줍니다. 독점 폐해를 막겠다고 경쟁체제와 민영화를 추진했지만 그것은 공적독점에서 사적독점으로의 전환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한경쟁과 약육강식 원리를 기본으로 하는 시장화는 오히려 독점을 강화시킵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 경쟁체제를 통해 독점을 막겠다는 것은 시장에 대해 무지하거나 아니면 순진한 희망사항에 불과합니다.

독일 국민은 일제히 철도 민영화 계획에 반대했고 2011년 1월 메르켈 정부는 기존 민영화 계획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같은해 3월 DB 회장은 “주식상장 계획은 더 이상 독일사회의 쟁점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독일 국민은 이것을 ‘행복한 실패’라고 이야기합니다.

민영화를 위한 지주회사 설립과 자회사 분리가 행복한 실패라면 왜 우리 정부는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면서 굳이 지주회사와 자회사로 분리하려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