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공공철도 이야기

꿈꾸는 기관사 2013. 11. 5. 23:29

지난 18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는 ‘밀양 765kV 송전탑반대 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우리가 돈을 달라 캅니까? 옷을 달라 캅니까?”라며 억울함을 호소하던 촌로의 하소연에 기자회견장은 울음바다로 변해 버렸습니다. 이번 상경투쟁에 참가한 100여명의 밀양 주민 대부분은 투쟁도 처음이었을 것이고 어쩌면 상경도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평생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꼬박꼬박 세금을 낸 죄밖에 없는 이들에게 과연 국가란 무엇이며 언론이란 무엇일까요.

밀양 주민들은 처절한 투쟁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기업과 수도권 주민의 이익을 위해 왜 우리가 희생을 당해야 하는가”라는 절규에 정부는 어떤 합리적인 해명도 하지 못했고 보수언론은 보상금 액수나 들먹이며 체제 전복과 종북 타령을 해 댈 뿐입니다. 주민들은 “만약 밀양을 위해 고압 송전탑을 강남에 건설한다면, 그래서 강남주민들이 반대한다면 정부나 언론이 어떻게 나왔을까”, “우리는 2등 국민이냐”고 반문합니다. 일상적인 국가폭력과 함께 자행되고 있는 주민 이간질은 제주 강정마을과 마찬가지로 오래된 지역공동체를 해체시킬 것입니다. 결국 이번 사태의 본질은 ‘심화하는 불평등과 후퇴하는 민주주의’입니다.

2015년 개통 예정인 수서발 KTX 건설계획은 서울 강남지역과 인근 수도권 주민들에게는 분명히 반가운 소식입니다. 새로운 역이 만들어지고 KTX 서비스가 공급되는 지역은 벌써부터 개발 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계획은 한국철도 주요 간선인 경부선과 호남선이 대전 이북에서 하나로 만나면서 선로밀도가 급격히 높아지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획됐습니다. 마치 고속도로에서 회덕분기점 이후로 정체가 극심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이런 수서발 KTX 계획이 한국철도의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이명박 정부는 코레일이 운영하기로 했던 수서발 KTX를 느닷없이 민영화하기로 했다가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자 중단했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국민적 동의 없는 민영화는 반대한다”고 공약함으로써 논란이 종결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올해 6월 수서발 KTX는 ‘철도경쟁체제 도입’을 위해 새로운 법인을 설립해 운영을 맡기겠다고 결정하면서 또 한 번 대규모 노정충돌이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국토부는 KTX 분할 배경으로 코레일 독점운영을 경쟁체제로 재편해 효율화를 달성하고, 코레일의 잘못된 ‘교차보조’를 중단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재 코레일이 수익노선인 KTX의 이익을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지방선에 보조하는 것을 문제 삼은 것입니다. 만약 정부 계획대로 수서발 KTX가 분할되면 코레일 경영수지는 악화될 것이고 지방선에 대한 보조는 중단되거나 상당히 축소될 것입니다.

정부 주장대로 경쟁이 효율적일까요. 실제 경쟁이 발생하는지는 차치하고 교차보조를 중단시키는 것은 ‘불평등 심화와 민주주의 후퇴’를 초래할 것입니다.

고속철도는 국고로 건설되는 국책사업입니다. 국고란 강남지역 주민들만이 아니라 강원도나 전라도, 밀양 촌로는 물론이고 제주도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의 세금입니다. 따라서 고속철도 운영이익은 전 사회적으로 공유돼야 합니다. 국민 세금으로 건설된 고속철도의 이익이 고속철도역이 있는 주민들에게만 돌아가는 것은 결코 조세정의가 아닙니다. 나아가 이로 인해 지방선 열차편수가 줄어들고 고향역이 사라진다면 지방공동화는 가속화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해 있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평등이 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모든 국민이 지역과 성별의 차별 없이 평등하게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라고 할 때 지금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체제전복을 모의하는 세력은 과연 누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