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통일철도 이야기

꿈꾸는 기관사 2013. 11. 5. 23:31

이달 중순으로 예정돼 있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방한을 앞두고 유라시아 철도 연결 논의가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6일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러시아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부산을 출발해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연결되는 철도를 꿈꾼다”고 말하고 유라시아 철도 연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10월21일에는 발레리 러시아 철도공사 수석부사장이 최연혜 코레일 사장을 만나 양국 철도 관심사를 논의했는데 이 자리에서 한·러 정상회담에 앞서 철도 관련 의제가 사전 조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한편 9월22일 북한 나진항에서는 러시아 극동지역의 하산역과 나진역의 철도 재개통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전길수 철도상을 비롯한 북한 고위관료들과 야쿠닌 러시아 철도공사 사장,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가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야쿠닌 사장은 “유럽으로 가는 가장 짧은 철도인 이 노선을 통해 많은 화물이 운송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재개통식에 참석한 북한과 러시아 고위급인사들의 면면에도 나타나듯이 나진-하산 간 재개통은 단순히 노후화된 철도를 개량해 연결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중대한 사건입니다. 북한으로서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현실화하는 상징적인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94년 6월30일 김일성 주석은 벨기에 노동당 중앙위원장과의 면담에서 남북철도가 연결되면 북한은 운송수입만으로 해마다 15억달러 이상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을 감안할 때 철도연결이 정상회담 주요의제가 될 것을 시사한 것입니다. 그러나 8일 후 김일성 주석이 급서하면서 정상회담은 개최되지 못했고 이 언급은 그대로 북한의 ‘유훈’이 됐습니다. 실제 북한은 내각에 철도부를 따로 두고 철도산업을 금속·석탄·전력산업과 함께 ‘인민경제 4대 선행부문’으로 규정해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선행부문을 우리 식으로 굳이 해석하자면 ‘성장 동력’ 정도가 될 것입니다.

2001년 7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에서 출발하는 열차편으로 유라시아를 횡단해 모스크바를 방문했습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6·15 남북정상회담을 마친 지 1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쌍방은 세계적 실천에서 공인된 호상(상호) 이익 원칙에 기초해 조선반도 북남과 러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철도수송로 창설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을 공약”하고 북·러 철도협정을 체결했습니다. 협정의 첫 결과물이 나진-하산 간 철도재개통입니다. 표준궤인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광궤인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의 궤도 간 불일치라는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궤도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복합궤도를 새롭게 건설한 것 역시 철도기술사에 기록될 뜻깊은 일입니다.

북·러 협정문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유라시아 철도연결은 남북한과 러시아·유럽의 공동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지구적 차원의 사업입니다. 러시아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북한과 공조를 강화하면서 한편으로는 북한에게 남한과 교류확대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평양과 모스크바는 연결돼 있지만 우리나라와 연결되지 못한 상황에서는 그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남북철도 연결 없는 유라시아 철도 연결은 말 그대로 몽상에 불과합니다.

부산을 출발해 서울과 평양, 북경과 모스크바를 거쳐 베를린과 파리로 이어지는 ‘철의 실크로드’는 박근혜 대통령만의 꿈이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김일성 주석·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남북 정상들의 꿈이었습니다. 아니 7천만 겨레의 한결같은 염원입니다.

더욱 분명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유럽으로 향하는 철도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 돼 있습니다. 2007년 5월 경의선·동해선이 연결됐고 같은 시기 북한은 러시아와 철도연결 공사에도 착수해 9월 재개통에 이르렀습니다. TKR과 TSR은 이미 연결돼 있습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또다시 유라시아 철도를 ‘꿈만 꾸는’ 신세가 됐습니다. 허황된 북한 붕괴론이나 들먹이며 멀쩡한 4대강에 수십조원을 쏟아부은 지난 세월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박 대통령의 꿈 절반은 이뤄졌을지 모릅니다.

좋은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