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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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2021. 8. 8.

정지용 문학관

정지용의 삶과 문학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을 알 수 있다

1910년부터 50년대까지 현대시가 어떻게 변화 · 발전했는지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지용시집, 백록담, 지용시선, 문학독본, 산문 등

정지용 시인의 시 · 산문집 원본을 전시하고 있다

 

정지용 문학관

시인 정지용 상이 앞에 있다

 

 

 

 

전시실

정지용은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통해 대상을 선명히 묘사하여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시인이다

주요 시집으로 정지용 시집, 백록담 · 산문집으로 문학독본, 신문 등이 있다

 

 

 

 

호수

전시실 입구 우측에 있다

 

 

 

 

향수

전시실 입구 좌측에 있다

 

 

 

 

정지용 시인의 삶과 문학 · 시대적 상황

1902년 5월 15일 충북 옥천군 옥천면(현 옥천읍) 하계리에서

부친 정태국과 모친 정미하의 장남으로 출생, 1913년 12살의 나이로 결혼하였다

옥천공립보통학교와 휘문고보를 거쳐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휘문고보 다닐 때부터 습작활동을 시작하여 1922년 '풍랑몽'을 쓰면서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시문학」, 「구인회」 등의 문학 동인과 「가톨릭 청년」, 「문장」 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휘문고보 교원을 거쳐 해방후에는 이화여전 교수, 경향신문 주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정지용의 시어 세계

 

 

 

 

시계 (김남조)

사랑과 재물과 오래 사는 일이라고

 

 

 

 

문장(文章), 정지용 이해, 정지용 연구 등의 책이 있다

 

 

 

 

한국 현대시의 흐름과 정지용

1910년 현대시의 출발부터 50년대 해방후의 현대시까지 보여준다

 

 

 

 

한국전쟁과 천재시인의 최후와 옥천의 사진이 있다

 

 

 

 

한국전쟁과 천재시인의 최후

8.15해방이 되자 지용은 누구보다 목청껏 애국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이 땅의 진정한 해방과 통일을 갈망하며 각종 사회적인 문제에도 개입한다

시보다는 산문 활동에 주력하며 우리 민족의 앞날을 걱정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정지용 시인은 서울 녹번리 초당에서 그 전쟁을 맞는다

그 해 7월에 그의 집을 자주 드나들던 젊은 문인 4~5명이 찾아와

한참을 이야기하다 함께 나간 뒤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납북되어 평양의 어느 감옥에 갇혔다는 이야기

인민군과 함께 북쪽으로 가다가 미군 폭격기의 공격으로 죽었다는 이야기

미군에 의해 처형되었다는 이야기 등 소문만 무성하게 떠돌았다

분단의 비극과 함께 이것이 천재시인의 최후였다

 

 

 

 

제1회 정지용 문학상(1989)부터

제 32회 (2020년)까지의 시와 시인의 약력이 있다

 

 

 

 

 

시와 그림이다

 

 

 

 

시와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