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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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2021. 10. 8.

공주 송산리 고분군은 백제 웅진시기의 백제왕과 왕족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고분군은 송산(松山)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 이곳에는 수십여 기의 고분이 있었지만, 현재는 무령왕릉과 1~6호분까지 모두 7기만 정비되어 있다

송산리고분군의 백제 무덤은 만들어진 모습에 따라 돌무덤, 즉 횡혈식석실묘와 벽돌무덤으로 구분된다

1~5호분은 돌로 만든 무덤으로 내부는 반구형 형태인 무덤 방이 있다

6호분과 무령왕릉은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벽돌무덤으로 터널형의 무덤 방이 있다

무령왕릉을 제외한 나머지 무덤들은 도굴로 인하여 부장품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송산리고분군의 무덤은 이후 사비시기 부여 능산리고분군에 이르러

무덤방이 작아지고 구조가 간결해진 모습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무덤의 형태는 신라와 일본으로 전해지는데

이를 통해 백제 문화의 우수성과 활발했던 대외 교류를 확인할 수 있다

 

공주 송산리고분군 · 백제역사유적지구 안내판

 

 

 

 

송산리고분군전시관

 

 

 

 

송산리 5호분 내부

 

 

 

 

무령왕릉 현실 내부

묘실 전체를 벽돌로 만든 벽돌무덤으로

널방은 남북 4.2m, 동서 2.72m, 높이 3.1m의 남북으로 긴 장방형 평면으로

남북의 짧은 벽은 수직으로 동서의 긴벽은 상단에서 점차 오므려 쌓아 터널형 천정을 구성하고

남쪽 중앙엔 널길이 조성되어 凸자형 단실 구조를 갖고 있다

 

 

 

 

무령왕릉

 

 

 

 

송산리고분군전시관 출구

 

 

 

 

송산리 6호분(북벽- 벽화)

1932년 우연히 발견된 벽돌무덤으로 널방의 크기는 남북 길이 3.7m, 동서 너비 2.24m이다

널방은 동전무늬를 새긴 벽돌로 쌓았으며 벽면에는 동전을 올려놓는 동감을 설치하였다

네 벽면에 회를 바르고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신도를 그렸다

목관을 올려놓았던 관받침대가 하나인 것으로 보아 한 사람만 묻혔던 것으로 보인다

벽돌에 양관와위사위라고 새겨진 명문 내용이 확인되어

벽돌제작에 중국 양나라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송산리 6호분(북벽- 벽화)

고분군 보존상 문제로 1997년 7월 15일 문화재청의 결정에 따라 내부관람이 중지되었다

 

 

 

 

무령왕릉과 송산리 5 · 6호분

 

 

 

 

송산리 5호분(궁륭형 천장)

백제시대 굴식 돌방무덤이다

1932년 관람로를 정비하다 우연히 발견되었다

바로 옆에 6호분과 무령왕릉이 있다

무덤 내부로 들어가면 돌로 만든 정사각형 모양의 무덤방이 나타난다

돌을 수직으로 쌓아서 만든 벽은 위로 갈수록 안으로 좁아져 둥근 형태가 되는데

가장 윗 부분에 크고 평평한 돌을 올려 마무리하였다

벽은 하얀 회를 발랐는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바닥에는 목관을 올려놓았던 관 받침대 2개가 있는데 서쪽 관 받침대가 조금 더 크다

무령왕릉과 가까이 있어 당시 왕이나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데

도굴된 상태로 발굴되어 누구의 무덤인지는 파악할 수 없다

 

 

 

 

무령왕릉(북벽-현실)

백제 제25대 무령왕과 왕비를 합장한 무덤이다

묘실 전체를 벽돌로 만든 벽돌무덤으로

널방은 남북 4.2m, 동서 2.72m, 높이 3.1m의 남북으로 긴 장방형 평면으로

남북의 짧은 벽은 수직으로 동서의 긴벽은 상단에서 점차 오므려 쌓아 터널형 천정을 구성하고

남쪽 중앙엔 널길이 조성되어 凸자형 단실 구조를 갖고 있다

 

 

 

 

송산리 제1~4호분

1927년에 조사된 4기의 백제 굴식돌발무덤으로 공주지역의 백제유적 가운데 처음 발굴된 유적이다

조사 당시에는 5기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현재 4기만이 복원되어 있다

무덤은 대부분 도굴되었으나, 널방의 바닥에서 금과 은, 금동으로 만든 껴묻거리가 일부 출토되어

웅진시대 백제문화 복원에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였다

 

 

 

 

송산리 방단계단형 적석유구

송산리고분군 정상에 있는 돌로 쌓은 건축물이다

이곳에서 확인된 방단계단형 적석유구는 정사각형의 3단 구조이며 위로 올라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계단 모양이다

처음 조사할 당시 붉은 색의 점토가 깔려 있었고 내부에서 백제시기의 세 발 달린 토기가 출토되었다

조사 당시 시신이 묻혀 있는 관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백제시대 돌무지무덤으로 추정되어 대형 무덤의 형태로 복원되었다

이 유구는 개로왕의 가묘로 추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다시 발굴 조사가 진행되면서

제사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제사 시설로 보는 견해도 있다

 

 

 

 

고분군 윗쪽에서 봤다

 

 

 

 

고분군이 있는 송산(松山)

 

 

 

 

웅진백제대왕묘

숭덕전 삼문이다

 

 

 

 

웅진백제대왕묘 숭덕전

백제국 시조 온조왕을 비롯하여

웅진 백제시대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의 위패를 모신 전당으로 백제 옛 왕조의 영광을 기리는 곳이다

매년 백제문화제가 열리는 첫 날에 웅진백제대왕 추모제를 올리며

백제 후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뜻으로 선조들의 덕을 기리고 있다

 

 

 

 

백제오감체험관

우리가 만드는 웅진백제를 주제로

애니메이션 영상실,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월, 라인일러스트 등이 있어

웅진백제의 해양강국 찬란했던 역사 문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 편의시설로 공예품 전시 판매관과 카페가 자리하여

공주의 공예품을 구입하고 연인들과 함께 공주를 느낄 수 있는 장소다


 

 

갱위강국

갑작스런 천도로 백제의 지배세력이 교체되면서 정치에 새 바람이 불었다

백제는 고구려에 대응하기 위해 신라와 동맹을 강화했고, 성을 축조하여 국경을 방어했다

고구려 때문에 북쪽으로 진출하기 어려워지자 남쪽에 영산강과 섬진강 지역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백성들의 사회경제적 기반이 안정되었고, 문화도 발전하였다

중국 남조와의 교류가 재개되면서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를 백제만의 고유 뮨화로 재탄생시켰다

수도를 빼앗기는 아품을 겪었으나 웅진에서 다시 강국이 되었음을 선포한 백제

그 흔적은 지금도 공주 곳곳에 남아 있다

 

 

 

 

웅진백제역사관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3.01km, 소요시간 1시간 57분

(2021. 10.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