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한옥마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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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2021. 11. 6.

전주는 조선시대 전라도와 제주도를 관할하던 전라감영이 있던 곳이다

전주 이씨 조선왕실의 본향으로, 조선 역대 임금들이 몸과 마음의 뿌리로 여긴 고향이다

숱한 전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주부성과 감영 흔적은 대부분 사라졌으나

경기전과 그 주변 수백 채의 옛 한옥 등이 살아남아 전주를 전통문화의 본고장으로 이끌었다

*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가까운 풍패지관(豊沛之館 · 객사)을 시점으로

한옥마을 골목으로 경기전 · 최명희문학관 · 오목대 · 풍남문 등을 거쳐

다시 객사까지 1박 2일 걷기로 한 첫째 날이다

 

객사(풍패지관 · 豊沛之館)

'풍패(豊沛)'란 한나라 태조 유방의 고향이다

유방이 한나라를 일으켰듯이, 이성계가 조선을 일으킨 곳이란 뜻을 담고 있다

현판을 쓴 이도 명나라 재상을 지낸 주지번(朱之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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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넘치는 도심 한복판에 있다

 

 

 

 

동문예술거리와 책방 · 홍지서림

과거 완판본의 고장답게 동문에는 인쇄거리와 더불어 책방이 많아 당시 전주시민에게는 문화1번지였다

홍지서림은 1963년, 지금의 동문사거리 너머 참고서 서점으로 출발했다가 후에 지금의 위치로 이사했다

소설가 최명희부터 양귀자, 은희경 등의 작가들이 책을 사서 보았던 곳이다

소설가 양귀자 씨가 여중을 다니던 시절,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거쳐 간 곳이 홍지서림이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 홍지서림의 주인이 되었다

60년 전 문을 연 홍지서림은 전주 미래유산 15호로 지정되어 있다

홍지서림 옆에는 한가네서점이 있다

당시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았던 학생들에게는 헌책을 살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책방이었다

한가네서점은 전주 미래유산 34호로 지정되어 있다 

 

 

 

 

삼양다방

1950~60년대, 한국의 작가들에게는 다방과 술집은 사무실이요, 강의장이었다

특히 다방은 갤러리나 문화회관이 없던 시절에는 시화전을 구상하고 시낭송회를 했던 문화공간이었다

다방의 이름은 쉬웠다

삼양, 아담, 설, 고향 등 쉬운 이름은 다방이었고, 부르기 어려운 외래어가 섞어 있으면 카페였다

동문거리에는 삼양다방이 있다. 1952년 문을 열었다

당시 미술과 사진전시회, 시낭송회와 서화전이 열렸던 문화공간이었다

액자와 표구집도 많았다

1970년대에는 근처에 전주MBC가 입주해 있어 방송인, 예능인들의 약속이 많았다

지금도 그 자리에 '동문거리 삼양다방'이 자리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으로 전주시 미래유산 8호이다

 

 

 

 

선각사(일제강점기 전북금융조합회)

본래 절 터로 이용하기 위해 고승들이 바닥을 닦아놓았던 곳이나

일제강점기 상부의 강압에 의해 빼앗겼다

그 후 1929년에 건축업자 아베라는 일본인이 전북금융조합회 건물로 건축했다

건물 외벽 기둥과 연결되어 4개의 굴뚝이 있는데

일제강점기 건축 당시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왱이 콩나물국밥

33년된 콩나물국밥집으로, 오징어 고명에 수란과 김이 함께 나온다

'왱이'는 벌떼들이 한꺼번에 많이 모여들 때 왱~하고 소리가 나듯

손님들이 벌떼처럼 많이 모여들라는 의미로 이름지었다 한다

 

 

 

 

잠우회관(蠶友會館)

단수안내문이 붙어 있는 걸로 보아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건물인 듯하다

사진을 만드는데 옆에선 노인이 100년이 넘은 건물이라고 알려준다

 

 

 

 

참죽나무

경기전 북쪽 담길에 있는 거대한 참죽나무다

여기 총각귀신이 붙어 있어 처녀들이 밤엔 이 길을 피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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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 350년 · 수고 20m · 나무둘레 4m · 지정일자 1982. 9. 20

 

 

 

 

경기전 막걸리

막걸리 메뉴는 한정식과는 조금 결이 다른 상차림으로

2인 상 38,000원, 가족 한상 53,000원, 경기전 한상 73,000원이다

 

 

 

 

경기전

경기전은 '경사로운 터에 지은 궁궐'이란 뜻으로

조선이 건국되자 왕권의 권위를 만방에 떨치기 위해 세워졌다

이를 위해 나라를 처음 세운 임금의 초상화를 모셨다

태종 10년(1410), 조선 태조 이성계의 전신 어진을 보관하게 위한 목적으로 창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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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 하마비

1614년 세운 사자(또는 거북)를 닮은 두 마리의 동물 석상이 받치고 있는 빗돌이다

기단석 양쪽에 사각형 홈이 파여 있어, 작은 보호각이 설치돼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경기전 외신문 앞에 있다

 

 

 

 

경기전 정전

태조 이성계의 전신 어진을 봉안하고 제례를 지내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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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각 정면 돌출부 풍판에 화재막이용 암수 두 마리 거북이가 있다

드므도 뜰 아래 6개, 별전 뜰아래 2개, 제기고 앞에 2개를 두었다

겨울에는 소금을 넣어 물이 어는 것을 방지했다

 

 

 

 

태조 어진(1872년/비단에 채색/220×151㎝/국보 317호)

본전에 태조 이성계의 전신 어진(진품은 어진박물관)이 있다

태종 때 6곳에 모셨던 어진 중 유일하게 남은 초상화다

비단에 그려진 옛 어진(1410년)이 빛바래고 낡아 1872년 모사해 새로 그린 뒤

옛 것은 태워 백자항아리에 담아 경기전 뒷뜰에 묻었다

 

 

 

 

예종대왕 태실과 비(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26호)

왕가에서는 아이가 태여나면 그 태를 태항아리에 담아 석실에 묻었는데, 이를 태실이라고 한다

원래는 완주군 구이면 원덕리 태실 마을 뒷산에 있었다

1928년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전국에 있는 태실항아리를 서울로 가져가면서 태실들이 훼손되었는데

예종의 태실도 이때 훼손되었다

이후 태실은 구이초등학교 북쪽으로 옮겼다가, 1970년 경기전으로 옮겨왔다

비석은 태실과 함께 옮긴 것으로 앞면에는 '예종대왕태실'이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선조 11년(1578)에 처음 비를 세웠으며, 영조 11년(1734)에 다시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태를 담았던 내항아리와 지석은 국립고궁박물관에

내항아리를 담았던 외항아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어진박물관

태조 이성계의 전신 어진 진본이 전시 중이다

태종 때 6곳에 모셨던 어진 중 유일하게 남은 초상화다

 

 

 

 

역사실

경기전 건립, 태조어진 봉안, 태조어진의 수난과 보존, 태조어진의 관리, 경기전 제례

전주의 조선왕조 관련 유적지, 조선왕조실록 등 유물을 전시해 놓았다

 

 

 

 

어진실

조선시대 임금의 초상화(세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순종)가 전시되어 있다

 

 

 

 

가마실

1771년 조경모의 위패를 봉안할 당시 사용하였던 가마와

1872년 태조어진이 모사되어 봉안될 당시 사용하였던 가마들을 전시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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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어진 봉안행렬이 닥종이 인형으로 재현되어 있다

300여 명이 태조어진 봉안행렬에 참여하였으며

한양에서 전주로 태조어진을 모셔오는데 7박 8일이 소요되었다

 

 

 

 

태조로

경기전 앞 길로 전주 한옥마을의 중심도로다

 

 

 

 

최명희문학관 뒷문이다

 

 

 

 

최명희 작가의 소설 「혼불」에 담긴 사상

어둠은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다

 

 

 

 

소설가 최명희(1947~1998)의 연대표

1947년 10월 10일, 전주시 풍남동에서 4녀 중 장녀로 태여났다

1998년 12월 11일, '아름다운 세상 잘 살고 간다'는 유언을 남기고 영면했다

 

 

 

 

어리석은 자는 방황하고, 지혜로운 자는 여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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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앉은 캐리어백을 끌고 여행하는 지혜로운 가족 

 

 

 

 

네거리슈퍼

여학생 교복에 전교회장 완장을 찬 여인

 

 

 

 

전주최씨종대(全州崔氏宗垈) 빗돌

종대(宗垈)는 종족(宗族)이 대대로 지켜온 터(垈)를 이르는 말이다

빗돌 옆에 600년된 은행나무가 있다

 

 

 

 

풍남동 은행나무

조선 개국공신 월당 최담 산생이 귀향한 후 후진 양성을 위해 학당을 세우면서

전주 최씨 종대 뜰 안에 심은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은행나무는 조선왕조 500년간 갖은 풍상을 겪으며

조선왕조의 흥망을 지켜본 산역사이며 전주가 호남 유학의 본향임을 상징한다

그래서 전주 사람들은 정겹고 유서 깊은 은행나무 골목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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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 600년 · 수고 16m · 나무둘레 4.8m · 지정일자 1982. 9. 20

 

 

 

 

동학혁명기념관

동학은 1860년 4월 5일 창도된 이래

다시 개벽의 새세상으로 가는 길을 민중에게 제시하고 그 실현을 노력해 왔다

그중에서 동학농민혁명은 우리나라는 물론 동아시아 전역에 영향을 끼쳤으며

세계사적 혁명으로서 우리나라의 자랑이자 길이 빛날 역사이다

*

동학농민혁명 관련 역사적 자료와 동학의 창도에서부터 수난 과정

동학의 후신인 천도교 교단의 발전과 문명개화 운동과 관련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새 세상을 여는 사람들(부제 동학인물도 · 소래 박홍규 작품)

인물 안내

앞줄 정중앙 수운 최제우

정중앙 우측 최시형, 손병희, 박인호, 손천민

정중앙 좌측 손화중, 전봉준, 김덕명, 이방언, 김개남

뒷줄 중앙 이소사 등 무명 동학혁명군

 

 

 

 

최명희 작가 생가터 빗돌

이 세상에서 제일 큰 것은 마음이다(혼불 제2권)

마음을 잃어버리면 한 생애 헛사는 것이야(혼불 제6권)

 

 

 

 

전주 최씨 중랑장공파 종대

 

 

 

 

동락원 동락재

행랑채는 100년 고택으로 숙박과 족욕카페를 운영한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기념식수가 있다

 

 

 

 

담장이 예쁜 좁은 골목길을 지난다

 

 

 

 

전주김치문화관

한국음식문화에서 특별한 위상을 지닌 김치가 어떻게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

그리고 특별히 예향인 전주 음식 문화와 어떻게 융합되었는지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전주한옥마을 빗돌

 

 

 

 

전망대 카페

 

 

 

 

전주대사습청

전주대사습놀이의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문화시설로

대사습놀이(판소리, 농악, 기악, 무용, 민요, 가야금, 시조, 궁도, 고법) 관련

상설 · 기획공연 · 전수 · 체험 · 전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

예전 명창들은 산위에 올라 수련을 할 때

옆에 고무신을 벗어두고 소리공부를 하였다 한다

한 장단이 끝날 때마다 모래 한 알이나 조약돌 한 알씩을 넣어

고무신에 가득찰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고

이들의 소리공부는 고무신 속에서 이름 모를 풀이 돋아날 정도에

오랜 시간 득음 과정을 거쳤다고 전해진다

 

 

 

 

전주국악방송

안을 들여다 보니 방송 중이라 문이 닫혀 있다

 

 

 

 

토정비결 · 윷운세

 

 

 

 

전주전통술문화관

전통가양주 빚기 및 홍보 · 체험, 전통주 발굴 계승하는 문화시설로

전통주 관련 유물 전시 향음 주례를 재현하고 전통을 유지시키는 공간이다

 

 

 

 

전주한옥마을 빗돌

오목대로 오르는 들머리다

 

 

 

 

한옥펜션과 남고산이 보인다

 

 

 

 

오목대(梧木臺) · 비각

고려 말 이성개가 운봉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개경으로 가는 길에 들러 종친들을 모아 잔치를 벌였던 곳이다

잔치에서 이성계는 한고조 유방이 불렀다는 대풍가(大風歌)를 읊어 나라를 세우겠다는 야심을 보였고

이를 눈치챈 정몽주는 남고산성의 남경대에서 고려를 걱정하는 시를 읊었다고 한다

1897년에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황실의 뿌리를 성역화하는 사업을 펼치면서

1900년에 고종황제의 친필을 새긴 태조고황제필유지비(太祖高皇帝駐蹕遺址)가 있다

 

 

 

 

오목육교

이목대로 가는 육교다

 

 

 

 

오목육교에서 봤다

일제강점기 철길을 내며 끊었다

 

 

 

 

이목대(梨木臺) 비각

이성계의 4대조 할아버지인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의 출생지라고 전해지는 곳이다

전주 이씨들은 이안사 때까지 줄곧 이곳에서 살다가 함경도로 이사했다고 한다

 

 

 

이목대(梨木臺 · 전라북도 기념물 제16호) 비

대한제국 광무 4년(1900)에 이곳이 목조가 살았던 터임을 밝힌

목조대왕 구거유지(穆祖大王 舊居遺址)라는 고종의 친필을 새긴 비석을 세웠다

비각은 당초 오목대의 동쪽 높은 대지 위에 있었는데 도로 확장 공사로 1986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자만마을 - 달동네(달콤한 동네)

자만마을은 자손이 만대하라는 뜻으로

주민과 참여시민 그리고 전주시의 화합으로 유지되고 있는 마을입니다

열린 참여의 기회로 시민들은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장이 되고 있습니다

구불구불하고 가파르고 경사진 산책길을 걸으며

서로를 의지하고 끌어주며 행복감이 쌓이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걸음 한걸음에 당신과 당신 옆에 소중한 사람이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수십 년간 떠나감과 적막감이 익숙한 마을에

사람들의 웃음소리, 노랫소리, 먹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전주 시민들의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진짜 전주이고 싶습니다

- 전주가 사랑하는, 전주를 사랑하는 자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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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마을 안내판에서

 

 

 

 

낭만고양이(라스텔라 크래프트 공방 한예은)

고양이를 보면 저희의 삶이 보이기도 합니다

먹이 사슬에 싸우고, 사람에게 학대 당하고, 아프다고 버려지고

저희들도 그렇지 않나요?

 

 

 

 

이우(李鍝)와 자만동금표(滋滿洞禁標)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의 아들이다

 

 

 

 

자만동금표(滋滿洞禁標)

이목대(梨木臺)가 위치하고 있는 이곳 자만동은

이성계의 4대조 할아버지인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가 살았던 곳이다

고종은 조선 왕조 선대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자만동을 보호하고

성역화하기 위해 금표를 세위 출입을 통제하였다

1900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왕조의 정신을 읽어내는 중요한 자료이다

 

 

 

 

역사탐방길 안내판

 

 

 

 

전주한옥마을

전주 풍남동 일대에 700여 채의 한옥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한옥촌으로

1910년 조성되기 시작한 우리나라 근대 주거문화 발달과정의 중요한 공간으로

 경기전, 오목대, 향교 등 중요 문화재와 20여개의 문화시설이 산재되어 있다

 

 

 

 

전주한옥마을 해넘이

 

 

 

 

전주천 앞에 숙소를 정하고

전주천 길로 남부시장 피순대를 먹으러 간다

 

 

 

 

전주남부시장 과일가게

 

 

 

 

조점례남문피순대

 

 

 

 

조점례남문피순대

 

 

 

 

풍남문

풍남문이란 '풍패'의 남쪽 문을 가르킨다

시장을 나와 풍남문 옆모습을 보며 전동성당으로 간다

 

 

 

 

발목잡힌 사나이

 

 

 

 

전동성당

본당은 1908년부터 7년 공사 끝에 지었다는 건물이다

주춧돌 등은 전주부성에서 나온 성돌을 썼다

애초 성당은 이태조 유허지인 오목대 자리에 세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당시 전라감사가 반대 상소를 올려 무산됐다

이 전라감사가 뒤에 일제 앞잡이가 된 이완용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0.77km, 소요시간 6시간 4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