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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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2021. 12. 5.

교회 사적, 젓갈, 일제강점기 건축물이 남아 있는

강경읍을 1박 2일로 찾았다

 

강경역

시점이다

 

 

 

 

강경포구 벽화

강경포구는 충청도와 전라도의 육지와 바다 사이에 위치하여

금강 남쪽 들판 가운데에 하나의 큰 도회로 되었다

- 1751년 이중환의 택리지 중에서 -

 

 

 

 

대흥시장 조합사무실

예전 강경버스대합실이다

 

 

 

 

근대역사전시관

강경제일감리교회에 있다

 

 

 

 

근대역사전시관

내부 수리중이라 관람할 수 없다

 

 

 

 

청소년 출입제한구역

대흥2리 노인회관 뒷쪽이다

 

 

 

 

청소년 출입제한구역

 

 

 

 

3층집

 

 

 

 

강경버스정류장

 

 

 

 

강경읍행정복지센터

 

 

 

 

논산경찰서

1950년 7월 17일 이 고장을 지키던 강경경찰서 경찰관들이

적과 싸우다 경찰서장 정성봉 등 83인이 장렬하게 산화하신 곳이다

*

좌측에 경찰 6.25격전지 빗돌이 있다

 

 

 

 

스승의 날 기념탑

강경여자중학교 · 고등학교가 스승의 날 발원지다

1958년 강경여중 · 고에 근무 중인 윤아중 선생이 병으로 눕자 이정순, 정암영이 병문안하고

JRC단장(노창실 · 8회 졸업생)의 제안으로 단원들이 병석에 누워 계신 선생님을 방문하여 위로하고

퇴직한 은사를 찾아뵙는 등 스승 존경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청소년적십자 충남학생협의회는 1963년 9월 21일

충청남도 '은사의 날'로 처음 결성하여 사은행사를 개최하였다

*

1963년에 은사의 날을 제정할 것을 단원들이 결의하고

당시 JRC 단장이었던 윤석란(1946년생)이 청소년적십자(RCY)의 이름으로 제안하였다

1963년 5월 26일이 (은사의 날)로 제정되었고

1982년에는 국가에서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스승인 세종대왕의 탄생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법제화하였다

 

 

 

 

박가네 젓갈상회

강경읍에 제일 많은 상점이 젓갈가게다

 

 

 

 

구) 강경공립상업고등학교 관사(등록문화재 제322호)

1931년 강경공립상업학교의 교장 사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수문낚시 · 경주이용원

 

 

 

 

강경 중앙초등학교 강당(등록문화재 제60호)

1937년 6월 30일 준공된 강당으로

강경공립보통학교 개교 30주년 기념으로 강경공립보통학교 후원회에서 기증한 것이다

 

 

 

 

강경여자중학교 · 고등학교

중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봤다

 

 

 

 

강경 성지성당(등록문화재 제650호)

1961년 건립된 것으로 건축에 조예가 깊은 보드뱅 신부의 설계와 감독으로 지어졌으며

당시의 일반적인 건축구조형식을 벗어나 아치 형식의 구조프레임을 사용하여

대형공간을 만드는 등 건축적 · 종교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논산근대역사문화촌

현재 조성사업이 진행중이다

 

 

 

 

신광양화점 · 화신양복점

 

 

 

 

강경 구(舊) 연수당 건재약방(등록문화재 제10호)

연수당 한약방은 지붕 내부 상량문을 통해 1923년에 준공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건물은 강경의 하시장(下市場)을 중심으로 했던 번성시기에 시장 중심에 위치하여 호황을 누리기도 하였으며

1920년대 촬영된 강경시장 전경사진 속의 건물 중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건물로

건축 당시 남일당(南一堂) 한약방으로 사용되던 것을 건축주가 바뀌면서

연수당 건재 대약방으로 상호를 변경하여 현재 후대 자손이 관리하고 있다

 

 

 

 

성 김대건 신부 첫 사목성지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첫 성무를 수행한 곳이다

김대건 신부는 1845년 8월 17일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후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 그리고 조선인 교우 11명과 함께

10월 12일 강경포구 인근 외딴 곳에 상륙하였다

김대건 신부는 교우 구순오의 집에 한 달 남짓 머물며 고국에서 첫 사목활동을 시작하였다

한편 강경은 페레올 주교가 2개월 이상 은거하며

자신의 교구에서 처음으로 교구장의 직무를 수행한 장소이다

 

 

 

 

최초 신사참배 거부 선도기념비

최초의 신사참배 거부사건은 1924년 10월 10일 강경신사참배기념일에

공립 강경보통학교 학생 62명과 김복희 여교사가 강경성결교회 백신영 여전도사의 지도와 교육하에 일어난 사건이다

김복희 여교사는 강경성결교회 잡사이며 주일학교 교사였고

62명 중 57명의 학생이 강경성결교회 옛 예배당에 출석하였다

이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한 이유를 학생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사에 절하는 것은 무지한 미신이며, 미신에게 절하는 것은 하느님께 큰 죄가 되기 때문에 절할 수 없다"

이 사건으로 일제의 신사참배 강행계획은 1936년 이후로 연기하게 되었다

김복희 여교사는 권고사직을 거부하고 면직을 당하고, 취조를 통해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신앙고백을 통해 민족의 기개를 나타낸 역사에 길이남을 자랑스러운 민족사적 사건이다

 

 

 

 

강경 덕유정(江景 德遊亭 · 향토유적 제1호)

조선 정조 17년(1793)에 지은 사정(射亭)으로 민간 사정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덕유정(德遊亭)

1793년 옥녀봉에서 시작된 덕유정은 1865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 · 신축했다

 

 

 

 

행선장(行善狀)

예전 정지기를 하신 분으로

6.25 때 덕유정의 사계좌목과 중요 문서를 항아리에 담아 땅에 숨겨서 보존하신 분이다

이분 덕에 1828년에 시작된 사원, 계원의 기록이 현재까지 전해진다

사계좌목은 1828년부터 활터 풍속을 기록한 문서이다

 

 

 

 

관해루(觀海樓)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옥녀봉 봉수대 자리에 있던 정자로

제13대 이은국 사백이 1883년 현재 위치로 옮겨왔다

1960년 관해루를 중수했으며, 안쪽에는 1948년 이은국 사백이 작성한 관해루기가 걸려 있다

 

 

 

 

관해루기(觀海樓記)

1948년 이은국 사백이 작성한 관해루기

 

 

 

 

팽나무 보호수

수령 200년 · 품격 읍나무 · 지정일자 1997. 11. 1

 

 

 

 

전 현감 김종규 농무시혜비(前縣監金鐘奎農武施惠碑)

1881년 5월 건립된 비로 덕유정 5대 사백이며 현감을 지낸 김종규의 업적을

농업분야, 덕유정 부흥분야, 농민난 해결분야로 나누어 기록해 놓았다

 

 

 

 

강경 환전객주 서웅선 고택

 

 

 

 

구)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 관사(옥녀봉예술촌)

이곳은 1907년 일제가 토지를 약탈하기 위해 세운

동양척식회사 산하의 구(舊)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장 관사로서

근대 상업도시 강경의 역사와 문화예술 공연의 산실로 활용되고 있다

*

대문이 닫혀 있어 대문에 붙은 포스터를 촬영했다

 

 

 

 

구) 강경 성결교회(국가등록문화재 제42호)

팔작지붕 건물로 처마는 부연을 단 겹치마로 만들었고 서까래는 말굽서까래 배열을 하였다

교회 전면에 문을 2개 만들어 남자와 여자가 따로 출입하였고

정사각형 교회로 중간에 휘장을 치고 좌우로 남녀 신도가 따로 앉았다

*

현재 남아 있는 국내 유일의 한옥 교회다

 

 

 

 

옥녀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논산 방향

옥녀봉에 올라 좌측 논산부터 우측 돌산까지 돌아본다

 

 

 

 

봉화산 방향이다

 

 

 

 

강경 성결교회 방향이다

 

 

 

 

강경성당이 우측으로 보인다

 

 

 

 

강경중앙감리교회

 

 

 

 

구) 강경 침례교회

조선시대 말기 강경과 인천을 배 타고 오가며 포목장사를 하던 지병석 집사의 가택이다

그는 1895년 미국 보스톤의 침례교단에서 파송된 파울링 선교사에게 침례(세례)를 받는다

그 후 1896년 2월 9일(일)에 이곳에서 5명은 첫 주일예배를 드린다

5명은 파울링 선교사 내외, 아만다 가데린 선교사, 지병석 집사 내외다

그래서 이곳은 침례교 국내 최초 예배지가 되었고, 기독교 한국침례회가 태동한 곳이 되었다

또한 「강경침례교회」의 시작이기도 하다

 

 

 

 

금강 해넘이

 

 

 

 

옥녀봉 구멍가게

일제강점기 때 옥녀봉에 있던 신사를 관리하던 관리사였다

 

 

 

 

옥녀봉 느티나무

 

 

 

 

옥녀봉 유래비

전설에 의하면 옥황상제의 딸이 이곳에 내려와 목욕을 하며 놀았는데

그 절경에 심취해 올라갈 시간이 지나게 되었고

하늘에서 올라오라는 나팔소리에 서두르다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해 한쪽 가슴을 드러낸 채 올라가게 되었고

하늘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본 옥황상제가 노발대발하여 다시 내쫓았다고 한다

이 땅에 내려온 선녀의 이름을 옥녀라 했으며 하늘나라에 올라가기 위해 기도하다 죽었는데

산위에 봉우리진 곳을 옥녀가 죽은 자리라 하여 옥녀봉이라 부르고

그녀가 들여다보던 거울은 바위로 변하여 용영대가 되었다

 

 

 

 

옥녀봉 봉수대

옥녀봉은 논산8경 중 하나로

옛 이름은 강경산이며 강경읍, 논산평야, 금강을 조망하기에 좋다

 

 

 

 

논산천

금강으로 흘러드는 지점이다

 

 

 

 

금강 해넘이

논산천이 금강으로 흘러드는 지점에 발달한 천혜의 내륙항이 있었다

 

 

 

 

금강

황산대교 방향이다

 

 

 

 

영포대(影泡臺)

봉수대 아랫쪽 바위로 해조문이 새겨져 있다

 

 

 

 

해조문(解潮文 · 논산시 향토유적 제24호)

1860년에 제작된 암각문으로 가로 131cm, 세로110cm의 음각 평면을 만들고

그 위에 총 190자의 글씨를 새겨 강경포구의 밀물과 썰물의 발생 원인과 시각, 높이를 기록한 조석표이다

비록 소박하지만 현대 조석표의 두 요소인 시각과 높이를 모두 갖춘 우리나라 최초의 조석표라 할 수 있다

 

 

 

김성옥 생가터

김성옥은 19세기 초 판소리 명창으로 판소리 중고제 창시자다

 

 

 

 

송재정(松齋亭)

 

 

 

 

강경 중앙감리교회

강경은 인구에 비해 교회가 참 많은 곳이다

 

 

 

 

강경호텔

구) 한일은행(강경역사관 · 국가등록문화제 제324호) 안으로 들어가면 있다

 

 

 

 

할미젓갈

 

 

 

 

강경침례교회

 

 

 

 

강경버스정류장

강경 제일감리교회가 뒤에 있다

*

마침점은 강경역 앞에 있는 스타모텔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0.43km, 소요시간 7시간22분

*

(2021.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