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위성당~강경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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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2021. 12. 7.

강경읍 2일째로 익산 나바위성당을 가기로 했다

나바위성당은 우리나라 최초로 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가 귀국하면서

첫발을 내딛은 역사적인 곳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성당이다

지역은 익산이지만 강경읍에서 가깝다

성지 순례 후, 기차시간에 맞춰 행동하기로 했다

 

예수성심상 · 요셉 베르모렐(장약실) 신부 공적비

나바위 본당 초대 주임 요셉 베르모렐 신부가 1897년 본당을 건립하였다

당시 천주교는 박해를 받지 않았고 본당 설립 2년 후에는 신앙의 자유가 완전 보장되었다

그러나 요셉 베르모렐 신부가 본당을 설립한 이후

여전히 천주교에 적대감을 가진 지방 토착 세력

보수적인 주민들간 모진 갈등을 겪으면서도 1906년 나바위성당을 건축하였다

1908년 부주교직을 수행하기 위해 나바위 본당을 떠났다

이 비는 22년 동안 온몸을 바친 요셉 베르모렐 신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54년 제11대 본당 주임 김후상 신부가 세웠다

 

 

 

 

나바위성당 본당

나바위란 너른 바위가 펼쳐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익산 나바위성당은 우리나라 최초로 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가 귀국하면서

첫발을 내딛은 역사적인 곳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성당이다

건축공사는 1906년 베르모렐(장약실) 신부가 주도하여 이듬해 완공하였다

처음에는 정면 5칸, 측면 13칸 규모의 한옥 성당으로 지었는데

1916년에 목조 종탑을 헐고 성당 전면부에 벽돌조 종탑을 증축하였다

이에 흙벽을 벽돌벽으로 개조하고, 회랑에 있던 툇마루도 제거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건물 내부 기둥에는 칸막이를 쳐서 남녀의 공간을 분리하였다

나바위성당은 전통 한옥과 서양식 벽돌조 건축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제대와 예수성심상

성당 제대 주변에 있는 세례대와 성상들은 중국 남경 라자로수도원에서 제작한 것으로

성당 건축 때 들어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세례대(1906년)

세례 의식 때 사용했던 세례대

중국 남경 성 라자로 수도원에서 제작한 것으로 성당 건축 때 들어온 것이다

 

 

 

 

나바위 성지 역사관(구 나바위 본당 사제관)

나바위 성당과 함께 지어진 사제관이다

1917년 12월 사제관 신축공사를 하여 다시 건립된 사제관은

여러 차례 보수를 하면서 사제관으로 사용하다가

2019년 6월 29일에 나바위 성지 역사관으로 새롭게 단장하게 되었다

 

 

 

 

나바위 성지의 역사와 사건들

1845. 10. 12

고 페레올 주교, 안다블뤼 신부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가 익산 화산 나바위에 상륙

 

 

 

 

풍금(1908년 / 크기 815cm×835cm)

성당에서 운영했던 계명학교(1908년~1946년)에서

음악시간과 무용시간에 사용했던 풍금이다

 

 

 

 

나바위 성당 사진 · 성물 · 성경책

나바위 성지의 역사와 사건 연대기가 있는 옆 방이다

 

 

 

 

나바위성당 본당

성당 후면의 지붕 아래 중앙 벽부에서 닻 모양의 십자가 붙어 있다

*

닻 모양의 십자가(1906년 / 크기 300×200mm)

성당 건립 당시 용마루 밑에 부착했던 닻 모양의 십자가로 중국인 목공이 제작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교회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으며

현세 생활의 험난한 항해로부터 천국으로의 안전한 정박을 바라는 교회의 희망을 뜻한다

이곳의 닻 십자가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이곳이 김대건 신부님 일행이 40여 일 항해 끝에 안착한 곳이라는 점에서

성당을 지을 때 닻 십자가를 사용한 것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망금정(望錦亭)

금강 황산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화산 끝자락에 너른 바위가 있어 나바위로 불리는 곳에 있다

예전에는 망금정 아래까지 금강 강물이 넘실거렸으나

1925년 일본인들이 이 일대를 간척하면서 금강 줄기가 바뀌어 지금은 비닐하우스로 뒤덮인 평야로 바뀌었다

망금정은 이곳에 나바위성당이 설립된 이후

초대 대구 교구장이신 드망즈 주교는 더할 수 없이 아름답고 조용한 분위기를 감탄하였고

1912년부터 해마다 5, 6월이면 화산 정상인 이곳에서 금강을 굽어보며 피정을 하였다

1915년 주임신부인 요셉 베르모렐 신부는 피정하시는 주교님을 위해

"아름다움을 바란다"라는 뜻으로 이곳에 망금정을 지었다

 

 

 

 

평화의 모후상

평화의 성모님이 서 계신 자리는 전라북도 삼대 명당자리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초대 주임 요셉 베르모렐 신부님께서 본당을 설립하고

본당을 짓기 위해 준비하던 중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화산에 자리를 잡고 있는 암자와 그곳에 살고 계신 스님이었다

암자가 있는 상태로 성당을 지을 수는 없어

고민 끝에 하루는 스님을 찾아가 성당을 지으려는 뜻을 밝히고 이곳에서 나가줄 것을 정중히 부탁하였다

그러나 스님으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하고 쫓겨나와 하루하루를 기도로 보내셨다

그렇게 두세 달이 지난 어느날, 스님이 바랑을 짊어지고 신부님을 찾아와서 하는 말씀이

"이제 나는 이곳을 떠나니 이 화산과 암자는 신부님 마음대로 하십시오"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뜻밖에 일에 놀란 신부는 이 일에 대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수소문하셨고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신부님께서 스님을 찾아간 그 다음날부터 스님의 꿈에 매일같이 웬 여인이 나타나서

'이 자리는 내 자리이니 이곳에서 빨리 나가거라' 하였다는 것이었다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1960년대에 성모님을 그 자리에 모셨고

지금도 성모님은 높은 곳에서 나바위성당을 굽어보시며 우리의 기도를 전구해주고 계신다

 

 

 

 

십자바위

십자가가 선명하게 보이는 이곳은 십자가의 길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 얼굴을 닦아 드림을 묵상하는 곳이다

*

큰 바위 위에 깊고 선명하게 십자가 형태로 갈라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자리는 바로 김대건 신부님이 첫발을 내디딘 곳이다

조선시대 이곳에는 금강이 흘렀고 고기잡이배가 바다로 나갈 수 있는 뱃길이 화산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제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기억을 담고 있는 화산의 바위

김대건 신부님 역시 금강 줄기를 통해 조선에 들어와 사목활동의 첫발을 내딛으셨다

바로 이때부터였을까 마치 십자가 위에 순교자의 얼이 우리 영혼에 새겨지고

그분들의 뒤를 따르는 후손들의 기도가 깊이 새겨진 듯 뚜렸한 십자모양이 지금 우리 눈앞에 드러나고 있다

 

 

 

 

라파엘호

김대건 안드레아 부제가 1845년 4월 30일 제물포에서 상해로 가고

8월 17일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은 후

8월 31일 조선으로 돌아올 때 탔던 무동력 목선으로

길을 인도하는 대천사 성 라파엘이라는 이름을 붙인 배이다

*

라파엘호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페레올 주교의 기록을 바탕으로 고증된 제주도 용수성지 라파엘호와 같은 모습으로 재현되었다

배의 규모는 길이 13.5m, 넓이 4.8m, 깊이 2.1m이다

 

 

 

 

성 김대건 신부 일행 착륙지점 비

 

 

 

 

상포들

망금정 아래까지 금강 강물이 넘실거렸으나

1925년 일본인들이 이 일대를 간척하면서

금강 줄기가 바뀌어 지금은 비닐하우스로 뒤덮인 평야로 바뀌었다

 

 

 

 

화산

금강양수장으로 가다 돌아봤다

 

 

 

 

배수펌프장

 

 

 

 

금강양수장

 

 

 

 

충청남도와 전라북도 경계 지점이다

 

 

 

 

금강

둔치에 걷기길이 있다

 

 

 

 

금강

황산대교 방향이다

 

 

 

 

황산대교

 

 

 

 

황산대교

 

 

 

 

금강정(錦江亭)

황산대교 앞에 있다

 

 

 

 

강경 죽림서원(竹林書院 · 도지정 유형문화재 자료 제75호)

조선시대 사설 교육기관으로 선현에 대한 봉사와 후진을 양성하는 교육적 기능을 겸하여 설립된 곳이다

1626년(인조 4)에 창건하여 황산서원이라 하고

율곡 이이, 우계 성혼 두 분 선생을 향배해 오다가 후에 사계 김장생을 추배하였다

1665년(현종 6)에 죽림서원으로 사액을 받고 정암 조광조, 퇴계 이황 선생을 추배하였으며

그 후에 우암 송시열 선생을 추배하였다

 

 

 

 

임리정(臨履亭)

사계 김장생이 1626년(인조 4)에 건립하여 후학들에게 강학하던 곳으로 원래 황산정이라고도 했다

이곳에는 우암 송시열이 쓴 현판이 걸려 있으며

"자신의 처신과 행동거지에 신중을 기하라"는 의미가 있다

 

 

 

 

임리정기비각(臨履亭記碑閣)

임리정기비는 김상현이 글을 짓고 김영목이 써서 1875년(고종 12)에 세웠다

 

 

 

 

팔괘정(八卦亭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76호)

조선 현종 때 우암 송시열은 스승인 김장생이 임리정을 건립하고 강학을 시작하자

스승과 가까이 있고 싶어 하는 제자의 마음에 임리정에서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팔괘정을 건립하였다

건물 뒤 암벽에는 우암 송시열이 썼다는 청초안(靑草岸), 몽괘벽(夢掛壁) 등의 글자가 있다

 

 

 

 

몽괘벽(夢掛壁)

건물 뒤 암벽에 우암 송시열이 썼다는 글자다

 

 

 

 

청초안(靑草岸)

우암 송시열이 쓴 글자로 몽괘벽 옆에 있다

 

 

 

 

돌산전망대

강경읍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조망대

돌산전망대 앞에 있다

 

 

 

 

금강 상류 방향이다

 

 

 

 

금강 삼각주

야구장과 농구장 등 체육시설이 있는 곳이다

 

 

 

 

황산대교

금강 하류 방향이다

 

 

 

 

옥녀봉 방향이다

 

 

 

 

옥녀봉 우측이다

 

 

 

 

강경클래시움아파트 우측이다

 

 

 

 

채운산 방향이다

 

 

 

 

채운산 우측 죽림서원 방향이다

 

 

 

 

황산대교 방향이다

 

 

 

 

황산대교

전망대를 한 바퀴 돌며 만들었다

 

 

 

 

강경젓갈전시관

매년 10월에는 강경젓갈축제가 개최된다

 

 

 

 

박범신 문학비

 

 

 

 

황산옥

106년 전통의 활복과 우어회 전문점이다

 

 

 

 

강경대흥시장

 

 

 

 

강경대흥시장

 

 

 

 

강경버스정류장

강경 제일감리교회가 뒤에 있다

 

 

 

 

구) 강경노동조합(강경 역사문화안내소 · 등록문화재 제323호)

1925년 건축된 일본 목조건축 양식 건물로 건축 당시 2층 건물이었으나 현재는 1층만 남아 있다

강경노동조합은 강경포구에서 하역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결성한 조직체로

당시 상업이 크게 발달했던 강경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구) 강경노동조합(강경 역사문화안내소) 내부

강경 근대건축물 사진과 책이 전시되어 있다

 

 

 

 

구)한일은행(강경역사관 · 등록문화재 제324호)

1905년 자본금 50만원의 한호농공은행 강경지점으로 설립했다

현재 건물은 1913년 신축하여 일제에 의해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으로 사용되다가

해방 후 한일은행 강경지점으로 사용되었다

근대시기 번성했던 강경지역의 금융시설로 금고도 보존되어 있다

현재은 강경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강경역사관 내부

 

 

 

 

기차시간표(1942년)

 

 

 

 

강경 성지성당(등록문화재 제650호)

1961년 건립된 것으로 건축에 조예가 깊은 보드뱅 신부의 설계와 감독으로 지어졌으며

당시의 일반적인 건축구조형식을 벗어나 아치 형식의 구조프레임을 사용하여 대형공간을 만드는 등

건축적 · 종교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강경침례교회

 

 

 

 

강경 제일감리교회

마침점은 강경역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9.35km, 소요시간 4시간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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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