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버스터미널~강원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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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2021. 12. 11.

조선 초(1395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강릉과 원주의 첫 글자를 따서 강원도를 만들고 원주에 감영을 설치했다

1395년부터 1895년까지 500년 간 512명의 관찰사가 이곳을 거쳐갔다

*

원주시를 1박 2일로 찾았다

강원감영과 원주 원동성당을 가기 위한 걷기여행이다

 

원주고속버스터미널

시점이다

 

 

 

 

장미꽃 분수

터미널사거리 단계지하차도 위에 있다

 

 

 

 

복원초등학교

단계주공아파트와 단계공원 사잇길로 잠시 걸으면 있다

 

 

 

 

원주종합체육관

2.2km 길이의 종합운동장 둘레숲길이 있다

 

 

 

 

강원도 원주교육 지원청

 

 

 

 

일시천금(一矢千金)

화살 하나가 천금과 같다는 의미다

원주시 궁도협회 학봉정이다

 

 

 

 

원주기상대

 

 

 

 

교동초등학교

향교막국수가 맞은 편에 있다

 

 

 

 

향교막국수

강원도 한의사회와 같은 건물에 있다

SBS 맛집 간판이 있는 이곳에서 수육과 막국수로 점심을 했다

 

 

 

 

원주향교

막국수집 언덕에서 내려다 봤다

 

 

 

 

원주향교

향교는 공사중이고 간판도 새로 달았다

문은 닫혀 있다

 

 

 

 

원주 문묘전교 홍공 공적비(原州文廟典校洪公功績碑)

이것도 새로 만든 빗돌이다

 

 

 

 

원주고등학교 후문

 

 

 

 

인열왕후 탄생지비(仁烈王后 誕生地碑 · 향토문화재)

인열왕후가 탄생한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다

당초에는 출생지인 원주시 인동에 세워졌는데 6.25전란으로 자쥐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그 후 재원지구 청주한씨 종친회에서 뜻을 모아 건립하였다

인열왕후는 원주목사 한준겸의 넷째 딸로 태여나 조선 제16대 인조비(仁祖妃)로 책봉되었다

4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왕비는 장릉(長陵)에 모셔져 있다

 

 

 

 

김후선정지비(金侯善政之碑)

전설에 의하면 궁만이(현 위치)에 살고 있던 정태형씨의 3대조에 정병사(丁兵使)가 있었다

정병사 소년시절 가끔 혼자 있을 때만 도깨비가 나타나

소년을 향해 넙죽 절하며 "정병사님 안녕하십니까" 했다

소년은 자신이 자라서 병사가 되려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후 정기원이란 이가 병사 직위에 오르기 전에 장승 같은 도깨비가 나타나

"정병사님 이제 오십이까?" 하면서 이번에는 "저는 김공이 올시다"라고 말을 했다

나중에 그가 실제로 병사의 직위에 올랐다 한다

이에 도깨비의 은혜를 갚기 위해 선정비를 만들게 되었다

이에 후세 사람들은 이 비를 도깨비 비라고 전하고 있다

 

 

 

 

천주교 쌘뽈수도원

리모델링 공사중이다

 

 

 

 

치악산 막걸리

 

 

 

 

남부종합시장(치악맨션)

1970년대 건설된 상가 · 아파트 7층 복합 건물로

건축 당시 원주에서 제일 큰 건물이었다

 

 

 

 

개봉교

배말아파트가 좌측으로 보인다

 

 

 

 

배말(현 원주천)

일제강점기엔 인천에서 온 소금 배가 드나들었다

 

 

 

 

개봉교 좌측 배말아파트 방향이다

 

 

 

 

여주상회

봉산동 당간지주 바로 옆이다

 

 

 

 

봉산동 당간지주(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9호)

당간지주의 높이는 4.3m로, 두 개의 당간지주 중 하나는 새로 만들었고

다른 한 쪽도 6.25 때 세 토막 난 것을 복원한 것이다

지주는 네모꼴로 위로 올라갈수록 굵기가 완만히 줄어들고, 그 끝은 둥글면서도 뾰족하게 마감하였다

지주의 윗 부분에는 깃대를 위에서 묶기 위한 구멍이 나있다

 

 

 

 

봉산동 당간지주

깃대를 꽂기 위한 자연석 받침돌에는 둥근 홈을 내었고

붉은 철물이 든 것으로 보아 철로 만든 당간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당간지주는 아무런 장식이나 꾸밈이 없는 것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통일신라 말 천왕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지는데, 그 관계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예전에는 냇물이 당간지주가 있는 벼랑 밑을 돌아나갔고 그 벼랑에 거북이 모습의 넓은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임윤지당

여성인문학이 꿈꾸는 마을길

 

 

 

 

여성인문학이 꿈꾸는 마을길이다

 

 

 

 

임윤지당(任允摯堂 · 1721~1793)

조선 후기 영조~정조 임금 당시 원주에서 살았던 여성 성리학자이다

성은 임씨, 본관은 풍천이며, 윤지당은 대성리학자인 작은오빠 녹문 임성주가 지어준 당호이다

봉산동 구석정은 임윤지당이 평산신씨댁에 시집와서 살았던 곳으로

현재 원주시 봉산동의 당간지주가 있는 인근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원주초등학교

원주옻문화센터가 맞은 편에 있다

 

 

 

 

원주경찰서

 

 

 

 

봉산동행정복지센터

 

 

 

 

 

원주교

왼쪽 인도교로 쓰이는 작은 다리는 일제강점기 때

오른쪽 차량전용 다리는 6.25 뒤에 놓은 다리다

 

 

 

 

원주천

원주교를 건너며 봤다

 

 

 

 

원주시 농업인 새벽시장

원주천 둔치 주차장은 새벽 농수산물시장이다

매일 오전 4~8시 반짝시장이 열린다

원주천 건너 배말아파트단지도 보인다

 

 

 

 

원주교오거리

강원감영 동문과 인열왕후탄생지비각이 있던 곳이다

 

 

 

 

아카데미극장

 

 

 

 

민속풍물시장

2, 7일이 장날로 알고 왔는데 한산하다

 

 

 

 

중앙로 문화의 거리

중앙로는 젊은이들이 활보하는 널찍한 보행로다

 

 

 

 

문화의 거리 상설공연장

 

 

 

 

구)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현 제일은행 · 등록문화재 제164호))

1934년 설립된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일제의 경제적 침략에 큰 역할을 한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으로

원주 지역에서 맨 처음 건립된 은행이다

외관은 전체적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며 창문을 위 아래로 길게 반복 배치하여 수직성을 강조하였고

외벽은 인조석 질감에 모르타르로 마감하는 등 일제강점기 은행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옛 원주경찰서 표지석

1920. 7. 17~1951. 2. 28까지 경찰서가 위치하면서

원주지역 치안업무를 수행하였던 장소다

*

나이키상점 앞 검은 빗돌이다

 

 

 

 

 LE BREAD LAB(르 브레드 랩)

강원감영 포정루 옆에 있다

 

 

 

 

포정루(布政樓 · 사적 제439호)

관찰사가 집무를 보는 선화당으로 들어가는 진입공간에서 첫 번째로 위치한 출입구다

1395년(태조 4) 강원감영을 설치할 당시 건립되었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1634년(인조 12) 강원감영을 복원할 때 재건되었다

포정루의 의미는 강원도에 부임한 관찰사가 시행하는 정사가 두루 잘 시행되는지 살펴보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중삼문(中三門)

선화당으로 출입하는 진입공간에는 포정루 · 중삼문 · 내삼문이 있다

중삼문은 진입공간의 배치상 가운데 위치한 문으로

포정루를 지나온 사람들은 중삼문에서 재차 본인의 신원과 방문 목적을 밝혀야 했다

중삼문은 관동관찰사영문(關東觀察使營門)이라는 고유한 명칭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강원감영의 관찰사를 만나기 위해 들어서는 문을 의미한다

 

 

 

 

관찰사 및 목사 선정비

강원감영 중삼문과 내삼문 사이 총 17기의 비석이 있다

이 비석들은 조선시대 때 강원감영과 원주목관아에서

관찰사와 목사로 재직했던 관인들의 업적을 남기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선정비는 관찰사와 목사에게 하나의 모범 사례사 되기도 하였고

동시에 새로 부임하는 관찰사나 목사를 경계하는 의미도 깃들어 있었다

원주지역 곳곳에는 강원도 관찰사와 원주목사의 선정비가 많이 세워졌으나

대부분 사라져 찾기가 어렵고 강원감영을 복원하면서 일부 남아 있던 선정비를 옮겨왔다

이 중 2기의 비석은 후원 권역에 있던 원주우체국을 철거하면서 찾은 것이다

 

 

 

 

도순찰사 윤공영신영세불망비(都巡察使尹公榮信永世不忘碑)

 

 

 

 

느티나무 보호수

남근목을 만지면 아들을 얻는다는 소문 때문에

밤중에 부녀자들이 몰래 들어와 치성을 드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 한다

*

수령 600 · 수고 25m · 나무둘레 600cm · 지정일자 1982. 11. 13

 

 

 

 

느티나무 보호수

둘로 갈라진 나무줄기 한 쪽에 돌출된 부분이 남성의 그것을 닮았다

 

 

 

 

작품명 김금원의 여행일기 - 박인자

김금원(1817~1853)은 원주출신으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여성시인이자 여행가다. 호는 금원(錦園)이다

김금원이 14세때, 남장을 하고 첫 여행지인 금강산으로 향하는 첫걸음을 디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

너무 어두워져 다음 날 다시 오려 하였으나

저녁식사 후 보니 야간 개장하였길래 다시 들렸다

 

 

 

 

성인 나이트가 많다

샤워 후 식당을 찾으러 다니며 만들었다

 

 

 

 

KBS 원주방송국

 

 

 

 

중앙로 문화의 거리

 

 

 

 

안동반점

60년전통이라 써있다

 

 

 

 

원주 출신 작사가 박건호

잊혀진 계절, 아! 대한민국, 단발머리, 모닥불 등을 작사했다

 

 

 

 

포정루(布政樓 · 사적 제439호)

식사 후 다시 왔다

 

 

 

 

징청문(澄淸門)

내삼문은 진입공간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고

이곳에서 방문자는 강원도 관찰사를 만나기 전 마지막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치게 된다

내삼문 고유의 명칭인 징청문이라는 편액에서 알 수 있듯이

문을 들어서면서 청렴결백한 정신으로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는데

이는 다만 관찰사를 만나러 온 방문객뿐만 아니라 관찰사를 포함하여

이 문을 들어서는 모든 관인이 상기해야 할 덕목이다

 

 

 

 

선화당(宣化堂)

강원도 관찰사의 집무실이다

선화당의 뜻은 임금의 덕을 선양하고 백성을 교화한다는 의미이다

관찰사는 이곳에서 강원도에 속한 각 지역의

행정 · 농정 · 조세 · 민원 · 군사훈련 · 재판 등에 대한 총괄적인 업무를 수행했다

 

 

 

 

강원감영 후원 권역

관찰사의 사적인 공간으로, 후원에는 연못을 조성하여

봉래각 · 영주관 등을 건립하고 손님 접대와 연회의 장소로 사용하였다

연못 가운데와 한 쪽 끝에는 정자를 세워 연못을 내려다보며 후원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강원감영 후원 권역

강원감영 후원에서는 다른 감영에서는 볼 수 없는 신선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연못 안에는 전설의 신산인 삼신산을 상징하는 세 개의 섬을 만들어 전각을 짓고

모두 신선 세계의 이름을 부여하였다

봉래산인 금강산을 관할했던 강원감영의 후원에 이에 어울리게 신선세계를 만들었던 것이다

관찰사들은 후원에서 풍류를 즐기면서 스스로를 '봉래주인', 즉 신선세계 주인이라 칭했다

강원감영 후원은 일제강점기까지 유지되었으나, 이후 한 때 원주우체국이 자리했으며

2018년 강원감영 복원사업이 완료되었다

 

 

 

 

관리사무소 · 포정루 · 중삼문 · 내삼문

선화당 앞에서 봤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9.64km, 소요시간 4시간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