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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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2022. 1. 1.

볏고을(벽골) 김제는 광활한 평야와 삼한시대 수리시설인 벽골제로 이름난 고장이다

전국의 쌀의 30%가 김제 일대에서 나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엔 쌀 수탈이 자행됐던 곳이다

일본은 군산항을 통해 쌀을 실어갔다

 

김제역

 

 

 

 

우금장

김제역에서 탄 택시 기사가 알려준 곳이다

시점이다

 

 

 

 

한정식으로 늦은 점심을 했다

 

 

 

 

성산공원사거리

 

 

 

 

김제시의회

김제시청 옆에 있다

 

 

 

 

고산 최학규 선생 시비 · 벽성12동천비 · 우란회기념비

3개의 빗돌이 함께 있다

 

 

 

 

성산전망대

일제강점기 물 저장탱크가 있던 자리에 세운 30m 높이의 3층 건물이다

전망대에 서면 김제의 너른 들, 김제의 어머니 산인 모악산과 새만금방조제까지 보인다

코로나 19로 문이 닫혔다

 

 

 

 

이상윤 학생 순의비

이상윤 학생은 1927년 생으로 충북 청원 출신이다

1943년 이리농림학교 2학년 때 일제의 쌀 수탈 통로를 막기 위해

주재소와 만경교를 폭파하려다 발각돼 일경의 혹독한 고문에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반공희생자위령비 · 충혼비

충혼비는 일제치하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싸우다가 몸바친 애국지사들과

한국전쟁 당시 반공전선에 앞장선 민간인, 군인, 경찰관들의 넋을 추모하고

그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

일제강점기 신사가 있던 자리다

 

 

 

 

느티나무 보호수

품격 시나무 · 수령 500년 · 나무 둘레 2.8m · 지정일자 1992. 5

 

 

 

 

용암서원(龍巖書院)

문량공 조간(趙簡)을 중심으로 문평공 이계맹(李繼孟), 구산 라응삼(羅應參)

농은 이추(尹推), 나건계(羅建溪), 이구천(李龜川), 백천당 조은침(趙潤琛) 등이 모셔져 있다

 

 

 

 

김제 향교(사적 제482호) 만화루(萬化樓)

바깥 담에 세운 세 칸짜리 대문이다

 

 

 

 

명륜당(明倫堂)

김제 향교는 태종 4년(1404)에 처음 지어졌으나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고

인조 13년(1635)에 다시 세운 후 몇 차례 고쳐 지었다고 한다

 

 

 

 

지성서원

문이 닫혀 있다

 

 

 

 

양지이용원

 

 

 

 

근민헌(近民軒 · 사적 제482호)

김제군 옛 관아의 동헌으로

현종 8년(1667년)에 군수 민도(閔燾)가 동헌을 세우고 이를 근민헌이라 칭하였으며

그 후 숙종 25년(1699년)에 군수 이세성(李世晟)이

동헌을 중수함과 아울러 그 명칭을 사칠헌(事七軒)이라 개명했다

1960년대 초까지 읍사무소로 사용하였고, 1984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김제전통시장

 

 

 

 

피금각(披襟閣)

1633년(인조 11)에 지어진 피금각은 송강 정철의 아들 정홍명이 김제군수 재임 시

동헌에서 업무를 마친 후 가야금과 바둑, 서책을 읽으며 휴식하기 위한 공간으로 지어졌다

동헌이 남향하고 있으며, 서쪽에는 피금각이 동향하고 있다

 

 

 

 

중앙수퍼

 

 

 

 

원각사 대웅전

미륵불 · 5층석탑 · 석등 1쌍이 앞에 있다

 

 

 

 

느티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20m · 흉고 둘레 580cm · 수령 450년 · 지정일자 1993. 6. 14

원각사 담장 옆에 있다

 

 

 

 

달인 왕만두

 

 

 

 

김제전통시장

 

 

 

 

박약국

김제에서 땅값이 제일 비싼 곳이다

 

 

 

 

중수원

 

 

 

 

예전 홍등가 골목이다

 

 

 

 

예전 홍등가

 

 

 

 

미성년자 선도 보호구역

 

 

 

 

목화장 모텔

 

 

 

 

조항진 효자정려 · 고려문하시중 문량공 조간 유허비

 

 

 

 

조항진 효자정려

조항진의 본관은 김제이고, 자는 후재(厚齋)이며, 호는 눌헌(訥軒)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이 깊고 효성이 지극했던 조항진은

부친상을 당하여 3년 동안 무덤 곁에 움막을 짓고 정성껏 돌보았다

상복을 벗고 나서도 다시 3년 동안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거르지 않고 산소를 찾아

제사를 극진히 모셔 1892년(고종 29) 11월에 정려(旌閭)를 받았다

 

 

 

효자 조항진 지려(孝子趙亢晋之閭)

 

 

 

고려 문하시중 문량공 조간 유허비(高麗 門下侍中 文良公 趙簡 遺墟碑)

조간(趙簡 · 1264~1325)은 1279년(충렬왕 5)에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에 왕이 친시(親試)하였는데, 여기에서도 1위를 차지하여 황패(黃牌)를 받고 내시(內侍)에 소속되었다

아버지가 죽은 뒤 시묘를 3년간 하였는데, 왕의 칭찬을 받고 특례로 기거주(起居注) 벼슬을 받았다

이후 대간직(臺諫職) 등 각종 요직을 거치고 재상이 되어 밀직부사(密直副使) · 찬성사(贊成事) 등을 역임하였다

 

 

 

고려우정승문량공열헌선생조간유허비(高麗右政丞文良公悅軒先生趙簡遺墟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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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 있는 현대파크장이 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4.2km, 소요시간 3시간 1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