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벽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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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2022. 1. 2.

김제 벽골제에 대한 최초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신라 흘해이사금 21년(330년)에 처음 벽골지를 열었다. 제방의 거리는 일천팔백보이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제방의 길이는 3.24km 정도로 추정된다

이 시기는 김제 지역이 백제의 영토로 추정되므로

통일신라 이후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고려되어 축조시기를 백제 비류왕 27년(330)으로 추정한다

통일신라 원성왕 6년(790)과 고려 현종 및 인종 21년(1143)에 고쳐 쌓은 후

조선 태종 15년(1415)에 다시 쌓았으나 세종 2년(1420)에 심한 폭우로 결궤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동진토지개량조합에 의해 제방이 농업용 간선수로로 개조되어 결정적으로 훼손되었으며

용수로의 기능을 유지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벽골제 정문

 

 

 

 

벽골지문(碧骨之門) 현판

 

 

 

 

정문 광장

 

 

 

 

벽골제 공예체험장

도자기체험 · 곡물공예체험 · 규방공예체험 ·  한지공예체험 등이 있다

 

 

 

 

벽골제 한복체험관 · 명인학당(明仁學堂)

 

 

 

 

도의문(道義門)

명인학당 정문이다

 

 

 

 

도의문(道義門) 현판

 

 

 

 

명인학당(明仁學堂)

조상들의 전통문화와 예절교육을 익히는 배움터로

전통예절과 효자, 충신 이야기를 통한 올바른 인성교육과 서당한문교육이 진행되며

전통혼례, 전통의상 입어보기 등의 다양한 우리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다

 

 

 

 

명인학당(明仁學堂) 현판

 

 

 

 

명인학당 행랑채

 

 

 

 

장생문(長生門)

전통 가옥으로 가는 문이다

 

 

 

 

전통 가옥

김제시에 현존하고 있는 동헌 내아, 석정 이정직 생가, 낙서전을 재현하여

지어진 기와 2동, 초가 1동의 전통가옥 숙박 체험장소이다

 

 

 

 

석정 이정직 생가

전라북도 지정문화재 기념물 제21호 · 백산면 소재

 

 

 

 

낙서전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28호 · 진봉면 소재

*

바다는 해를 담고 나는 너를 담는다...

해가 바다를 그리워하듯 나는 언제나 네가 그립다

월화(月華)

 

 

 

 

농경사주제관 · 체험관

벽골제 관광지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어

벽골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해 주는 교량 역활을 담당한다

관리공간과 학습공간은 1층, 어린이박물관은 2층

벽골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3층 전망대로 구성되어 있다

 

 

 

 

3층 전망대

 

 

 

 

모악산

3층 전망대에서 봤다

 

 

 

 

명금산

 

 

 

 

아리랑문학관 · 국립김제청소년 농업생명체험센터

 

 

 

 

우도농악 교육전수관

 

 

 

 

벽골제 쌍룡

벽골제 제방을 훼손코자 하는 청룡과

이를 보호하고자 하는 백룡이 살았다는 설화가 있어

본 소재로 쌍룡을 형상화하였다

*

조연벽의 꿈에 벽골제 용이 나타나 벽골제를 빼앗으러 온 흑룡을 퇴치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다음날 조연벽은 활로 흑룡을 물리쳤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벽골제 용은 자손이 흥할 것을 약속하였다

 

 

 

 

벽골제 장생거

1530년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벽골제에는 5개의 수문이 있었고

그 명칭은 수여거, 장생거, 중심거, 경장거, 유통거라 하였다

그 중 장생거와 경장거는 1975년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1980년대 수문에 대한 복원공사를 통해 현재의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다

 

 

 

 

벽골제 장생거

수문은 벽골제 수리기록으로 보아 1415년(조선 태종 15) 이전부터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문은 오늘날 수리시설에서 자주 사용하는 갑문구조와 같은 방식으로

수문을 통해 주변 농경지에 물을 공급한 것으로 보인다

 

 

 

 

김제 벽골제 문화재 전경

 

 

 

 

1975년 장생거 발굴조사

 

 

 

 

1975년 경장거 발굴조사

 

 

 

 

벽골제 수문 체험장

양쪽 제방 위에 올라 동시에 물레를 돌리면 수문이 열린다

 

 

 

 

벽골제 중수비각

김제 벽골제의 지정 내용에는 현존 제방 약 2.5km와 더불어

1415년 중수를 기념하는 벽골제 중수비가 포함되어 있다

중수비는 1415년(조선 태종 15) 당시 수군도만호였던 김제 사람 박초가 썼으며

중수비 비문은 1530년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문이 전해진다

 

 

 

 

벽골제 중수비(사적 제111호)

중수비 내용은 벽골제와 김제군명의 연원, 고적에 기록된 벽골제의 규모와 관개유역

태종의 치수 의지, 각급 공사주체와 인력 규모, 공사의 난이점, 제방 제원의 세부 및 완공 시기가 정리되어 있다

중수비의 원래 위치는 신털미산 정상부이나, 1980년 유적을 정비하면서 현재 위치로 이전되었다

 

 

 

 

벽골제 위치도

 

 

 

 

김제 벽골제비

1980년 12월에 한글로 쓰여진 벽골제비다

 

 

 

 

원평천과 만나는 지점이다

 

 

 

 

벽골제 장생거

 

 

 

 

명금산 방향

제방 위에서 봤다

 

 

 

 

나무다리

 

 

 

 

쌍룡

 

 

 

 

예전 용골마을 터

벽골제 후문이 있는 곳이다

 

 

 

 

소나무동산

 

 

 

 

김제 포토존

 

 

 

 

짚풀공예 전시체험장

 

 

 

 

짚풀공예 전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