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문학관

댓글 0

길이야기

2022. 1. 2.

아리랑은 우리 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 놓았던 작가 조정래의 작품으로

문학성이나 대중성으로나 사회 각계 각층으로부터 확고한 검증을 받아낸 바 있으며

작가는 5년이라는 시간을 고스란히 이 작품을 위해 바쳤던 점에서 육필로 써낸 우리의 민족사인 것이다

 

조정례 아리랑문학관

 

 

 

 

조정례 작가

아리랑문학관 1층 · 글감옥에서의 가출옥

 

 

 

 

아리랑 원고

 

 

 

 

아리랑 1~4부 줄거리

 

 

 

 

1부 줄거리

 

 

 

 

1부 · 1904~1911

 

 

 

 

정미소 풍경

 

 

 

 

2부 줄거리

 

 

 

 

2부 · 1912~1920

 

 

 

 

청산리전투

 

 

 

 

대종교

우리 한 몸, 한 몸이 다 조선인입니다. 몸 보존 잘하십시오

지당한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단군성조의 자손으로 한 핏줄 한 겨레임을 깨우쳐 나간다면

조선의 독립도 머지않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5권 P.148〉

 

 

 

 

3부 줄거리

 

 

 

 

3부 · 1921~1931

 

 

 

 

제방둑

 

 

 

 

하시모토농장 사무실

 

 

 

 

4부 줄거리

 

 

 

 

4부 · 1932~1945

 

 

 

 

종군위안부

저어... 지가 맘에 안드시면...

복실이는 눈물 그렁한 눈으로 조선 학도병 박용화를 쳐다봤다

아니오. 그게 아니오 내가 어찌 왜놈들하고 똑같이 그 짓을 할 수 있겠소

박용화는 이 말을 하면서 최초로 피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12권 P.192〉

 

 

 

 

일제 항복

취재를 하다 보니까 나는 자꾸 해방, 해방 그렇게 말하는데

그 사람들은 그 사변, 그때 사변 이렇게 말을 해요. 처음엔 내가 잘못 들었나?

또 이야기를 해요. 그래, 왜 당신들은 그 사변이라고, 그때 사변이라고 말을 하냐 했더니....

거기서 남자들은 거의 다 죽고, 다 싸우고, 자식과 여자들이 도망온 곳이

조국과 점점 멀어지는 오지, 오지 800리, 그곳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무슨 해방이겠습니까

〈작가 강연회 발췌〉

 

 

 

 

글감옥에서의 가출옥

나는 「태백산맥」을 마흔 살에 시작했는데 이제 쉰 살이 넘어 있다

그 세월 속에는 「아리랑」을 준비한 기간이 들어 있고

또 「태백산맥」을 쓰기 전에는 그것을 준비한 기간이 들어 있다

그러니까 두 작품에 바친 세월이 15년이 넘는 것이다

먹고 자고 쓰는 글감옥의 세월로 나를 밀어 넣은 것은 나 자신이었다

 

 

 

 

아리랑 원고 첫 장

 

 

 

 

아리랑 원고 마지막 장

 

 

 

 

아리랑 원고 마지막 장 덧붙임

 

 

 

 

글감옥에서의 가출옥 · 작품 활동 시 사용 용품들

 

 

 

 

지구 세 바퀴 이상 돈 발길

나는 작업에 충실하기 위해 많은 취재여행을 해야 했다

왜냐하면 식민지가 되면서 우리 민족은 세계 여러 지역으로 유랑하는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이다

식민지시대의 역사를 총체화하는 소설에서 그 유랑의 삶을 포괄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것은 사회주의자들의 독립운동을 민족주의자들의 독립운동과

동일선상에 올려놓은 일과 함께 「아리랑」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작업이었다

 

 

 

 

등산화 · 구두

지역과 기후에 따라 바꿔 신었던 구두들

무수하게 난 상처들이 취재여행의 긴 여정 속의 고달픔을 간직하고 있다

 

 

 

 

사진기

해외 취재 때 마음에 담는 것 다음으로 귀중한 것이 사진이다

사진은 기억의 불충분함을 보충해주는 충실한 보조자다

그래서 한 차례의 해외 취재 때마다 사진이 수백 장씩이 된다

이 사진기는 그 고단한 일을 아무 탈없이 해내준 고마운 벗이다

 

 

 

 

여권

「아리랑」을 쓰기 위한 취재는 소설을 쓰기 전부터 시작되어 소설을 쓰는 동안에도 계속되었다

중국 · 하와이 · 일본 · 동남아 등 우리 민족이 유랑한 곳은 모두 찾아다녔다

그 거리를 전부 합해 놓으면 지구를 세 바퀴 반은 돈 셈이 된다

그래서 여권도 하나로 되지 않았다

 

 

 

 

김제 개관

아리랑문학관 2층 제2전시실

 

 

 

 

아리랑 문학기행 안내도

 

 

 

 

작가 집필실

 

 

 

 

아리랑문학관 2층

 

 

 

 

아리랑, 그 큰강(大河)을 건너며

 

 

 

 

신문연재 아리랑 교정본

한국일보에 연재된 「아리랑」. 이것은 아리랑 전체가 아니다

계속 신문에 연재하면 기간이 너무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집필을 앞당기느라고 대강 7권 어름에서 연재를 중단하고 나머지 5권은 전작으로 썼다

연재된 것을 일일이 백지에 붙이는 것은 수정과 교정을 위해서다

이 과정을 거쳐야 소설은 비로서 '완성'된다

 

 

 

 

작가의 창작 노트를 통해 본 언어 연구

인간이 무수하게 많은 도구를 발명했는데 인간의 3대 발명품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언어요. 두 번째가 종교. 세 번째가 정치입니다

첫 번째 언어 속에 말과 문자가 함께 들어 있고 문학이 포함됩니다

예술은 왜 만들었겠는가?

예술의 수십 가지 요소 중에 카타르시스도 분명히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속단이예요

모든 인간이 도구를 만들 때 삶을 보다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

삶을 보다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인간은 발명품을 만듭니다

〈작가의 강연록에서 발췌〉

 

 

 

 

집필

아내는 누가 내 생활을 물으면 '먹고 자고 쓰고, 먹고 자고 쓰고의 연속'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아내는 시인답게 운율까지 형성되는 언어 배합으로 표현한 것인데

그 말은 아무런 꾸밈없이 내 생활을 있는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사실 나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특히 「아리랑」을 쓴 5년여 동안은 그런 생활의 되풀이 속에서 살아냈다

 

 

 

 

구상

독일은 수상 빌리 브란트가 전세계를 향해서 사죄했고, 유대인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사죄를 받아들여 '용서하지만 잊지는 않는다'는 민족적 동의에 도달했다

그런데 일본은 어떤가?

독일과 정반대로 교과서를 왜곡하고, 국회의원과 장관들이 망언을 일삼고 있지 않은가

용서를 받아야 할 자들이 용서를 빌지 않는데 어떻게 용서를 하라는 것인가

일본이 독일식 용서를 빌지 않는 한 우리 민족은

'용서하지도 않고 잊지도 않는다'는 민족적 동의를 고수할 수밖에 없다

그 동의에 충실하고자 나는 아리랑을 쓰는 것이다

〈아리랑 10권, 작가의 말 중〉

 

 

 

 

편지칼 · 만년필 볼펜 세트

거북이문진 · 나비문진  · 염주 · 칠보필통 · 주칠필통

 

 

 

 

작가의 말

 

 

 

 

취재 · 국내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이는 호남평야의 중심징니 김제만경평야

일제는 이미 1903년부터 이곳에서 침탈을 시작했고, 이곳의 착취는 해방될 때까지 가장 극심했다

그래서 소설 「아리랑」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조정래 그의 문학 속으로 中〉

 

 

 

 

중국

나는 두 번째 대하소설을 쓰기 위해 첫 취재지로 중국의 만주 땅에 가기로 햇다

그러나 출발전에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쳤다

중국과 수교 전이었으므로 반드시 중국 쪽의 초청장이 있어야했다

그것은 연변의 작가 김학철 선생님이 해결해 주셨다

그러자 이번에는 일을 맡은 여행사에서 갑자기 포기 선언을 했다

알고 보니 안기부에서 출국금지를 내린 것이다

「태백산맥」 때문에 이미 86년부터 요주의 인물로 찍혀있는 자를

다른 나라도 아닌 공산국가 중국에 보낼 수 없다는 거였다

신문사와 연재 약속은 했지, 시간은 촉박한데 한 달 이상 일이 전혀 진척이 없었다

결국 문화부에 찾아가 따지게 되었고, 자신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게 된 실무자들이 장관에게 보고했던 모양이다

이어령 장관이 보증을 하고서야 안기부의 특별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조정래 그의 문학 속으로 中〉

 

 

 

 

러시아

1993년 3월 아리랑 연재 도중 러시아 연해주로 떠났다

러시아 취재가 늦어진 것은 국교가 수립되기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연해주는 우리 동포 20여만 명이 살았던 땅으로 중요한 독립운동 기지였다

그분들은 독립 투쟁에 직접 나서는 한편 독립 자금을 꾸준히 모았다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촌으로 대표되는 고려인(러시아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들은

극동의 황무지를 개간해 논밭을 일구는 고단하고 억척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다

그리고 1937년 11월 말부터 한 달 동안 20여 만의 동포들은

중앙아시아 불모의 땅으로 강제 이주당하는 대수난을 겪게 된다

절반 가까이 얼어죽고, 총 맞아 죽은 그 사건은 약소민족이 겪어야 했던 참극이었다

〈조정래 그의 문학 속으로 中〉

 

 

 

 

아시아 · 하와이

싱가포르의 역사박물관, 일본군이 영국군에게 항복하는 장면을 밀랍인형으로 만들었다

수많은 일본 사람들이 싱가포르에 몰려들지만 그들이 제일 싫어하는 곳이 이곳이라 한다

〈작가의 사진첩에서〉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 초청장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 부주석 직함으로 김학철 선생께서 보내주신 초청장이다

왼쪽의 것은 FAX로 온 원본이고

오른쪽 것은 FAX본의 글씨가 날아갈 것에 대비해 서류 제출을 하느라고 뜬 복사본이다

 

 

 

 

취재수첩 · 자료노트 · 할머니상

 

 

 

 

취재수첩 · 자료노트

취재수첩과 자료노트들은 한마디로 말해 소설을 탄생시키는 모태다

취재수첩 한 페이지가 소설 수십 장이 될 때가 많다

그리고 서너 줄의 메모가 원고지 수십 장의 이야기로 펼쳐지기도 한다

 

 

 

 

손자와 함께 찍은 사진

대하소설 원고(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자화상

신문에 작품에 대한 글을 쓰면서 그린 자화상

오른쪽 그림이다

 

 

 

 

작가 연보

 

 

 

 

작품 연보

 

 

 

 

사진으로 보는 작가의 인생 · 작품으로 보는 작가의 인생

 

 

 

 

사진으로 보는 작가의 인생

 

 

 

 

작품으로 보는 작가의 인생

 

 

 

 

태백산맥 · 아리랑 · 한강

 

 

 

 

만년필 · 안경

 

 

 

 

광주서중학교 · 서울보성고등학교 · 동국대학교 졸업앨범

 

 

 

 

필사 筆寫 · 필사 必死

 

 

 

 

신진섭의 필사본을 보내며

지난 10년간 조정래 선생님의 글향기를 맡으며 원고지를 옮겨 적었습니다

 

 

 

 

신진섭의 필사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