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문학마을 하얼빈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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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2022. 1. 2.

아리랑문학마을은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소설의 배경으로

수탈당한 땅과 뿌리 뽑힌 민초들이 민족의 수난과 투쟁을 대변하는 소설 아리랑의 배경을 재현한 곳이다

*

하얼빈역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한 끝없는 항쟁으로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사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저격사살한 곳이다

 

하얼빈역사

1910년경 하얼빈역사를 60% 비율로 축소 복원했다

 

 

 

 

이민자 가옥(너와집 · 갈대집)

토지조사 사업을 비롯하여 산미증산계획, 농촌진흥운동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수탈정책에 못이겨

대대로 살아온 토지를 떠나 화전민이 되거나 만주 · 시베리아 등 이역 땅으로 쫓겨나야만 했다

그러나 새로운 땅에서 독립의 열망을 잃지 않은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하얼빈역사 내부

 

 

 

 

안중근 의사 조형물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경 러시아 재무상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등박문을 처단하고 있는 안중근 의사 조형물이다

 

 

 

 

안중근 의사 조형물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서 날 것이며

나라 없는 백성이 어디서 살 것입니까?

도마 안중근

 

 

 

 

하얼빈역사 철로

 

 

 

 

김제시 독립운동가 45인과 소설 아리랑의 등장인물 정보를 제공해준다

인물들의 이름을 클릭하면 상세 정보를 볼 수 있다

 

 

 

 

안중근 · 김구 · 유관순

 

 

 

 

소설 아리랑 감골댁네 이야기

동영상을 보여준다

 

 

 

 

하얼빈 1층 전시실

 

 

 

 

빼앗기는 혼

 

 

 

 

빼앗기는 땅

토지를 만들고 수로를 뚫고 해서 가뭄이나 홍수 피해를 막고

농사를 잘 짓게 한다는 것은 하등 나쁠 것이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두 가지 큰 문제점이 있었다

 

 

 

 

첫째는 그 막대한 수리사업비를 농민 전체가 부담해야 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수로를 일본인들의 대농장이나 조선 대지주들 농토에 유리하도록 뚫었던 것이다

 

 

 

 

안중근 일본제국을 저격하다

 

 

 

 

재판관의 심문에 대한 안중근 답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장면

이토 히로부미 장례 특집화보 게재 (1909. 11. 4)

 

 

 

 

안중근 의사 연보 · 동포에게 고함(안중근 의사가 동포에게 보낸 유언)

 

 

 

 

특별기획전시실

 

 

 

 

친일의 길

아리랑 인물 성격을 보여준다

 

 

 

 

구국의 혼 의병

상투를 틀고 한복의 팔과 바지를 걷어 올리고 분노하는 징용자 상이 있다

 

 

 

 

만세, 만세, 만세

 

 

 

 

새로운 저항의 길

 

 

 

 

아리랑 아라리오

 

 

 

 

영화아리랑

일제강점기의 활동한 조선의 영화인

 

 

 

 

나운규(호 춘사 · 春史)

일제강점기 선구적인 영화인으로 직접 제작 · 감독 · 주연한 아리랑(1926)은

민족정신을 살린 동시에 흥행에 성공한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쫓겨가는 사람들

 

 

 

 

만주가는 것이 좋아서 가나

전답얼 뺏갰응게 울면서 가제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아리랑 끙끙끙 아라리가 났네

 

 

 

 

한성 단성사에서 아리랑 영화가 7일을 넘기고 10일이나 연장하여 초만원을 이룬다

영화 아리랑은 나운규의 작품으로 일본인을 감독으로 내세워

총독부의 검열을 피해 상영되면서 조선사람들 전부의 가슴을 뒤흔들고 눈물을 흘리게 했던 것이다

허탁, 홍명준은 아리랑을 관람하고 문학이 독립투쟁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송중원이 문학을 하려는 이유를 깨닫는다

 

 

 

 

1층 복도

2층으로 올라가며 봤다

 

 

 

 

2층 전시실

 

 

 

 

하와이에서의 방영근과 지삼출의 만주 개척이야기

 

 

 

 

소설 아리랑 · 취재이야기

 

 

 

 

아리랑의 대한 책들

 

 

 

 

김병총 화첩기행 · 홍두표 아리랑별곡 · 박일동 달래아리랑

 

 

 

 

별건곤

 

 

 

 

취재이야기

 

 

 

 

청산리전투를 이끈 김좌진 장군과 홍범도 장군은

남쪽은 홍범도 장군이 사회주의자라고 해서

북쪽은 민족주의자라고 해서 김좌진 장군을 그들의 교과서에서 빼버렸다

〈취재이야기 중〉

 

 

 

 

지지않는 꽃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상해에서 항일 대집회를 열었고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10월 12일 만주성위원회에 항일유격대 창설을 지시했다

 

 

 

 

끝나지 않는 시련

교과서에서 고의적으로 빼버린 그 반쪽의 역사를 찾는 건 누가 해야 할 일입니까?

당연히 역사학자가 해야하지요

그런데 역사학자는 역사 연구를 기피하고 외면했던 것과 똑같은 이유로

그 반쪽의 역사 찾기에도 눈을 닫아버렸던 것입니다

역사학자도 그 지경이었으니 작가라고 별수가 있었겠습니까

일제시대를 더러 소설로 썼으되 그 지워진 반쪽의 역사는 여전히 흔적이 없었습니다

그 망각한 반쪽의 역사를 찾아 나서는 길, 그것이 아리랑 쓰기였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써서 역사의 진실의 집을 짓는 것

그것이 아리랑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

청산리전투를 이끈 김좌진 장군과 홍범도 장군은

남쪽은 홍범도 장군이 사회주의자라고 해서

북쪽은 민족주의자라고 해서 김좌진 장군을 그들의 교과서에서 빼버렸다

 

 

 

 

끌려가는 사람들

 

 

 

 

종군 위안부

한복 저고리가 찢겨져 한쪽 젖가슴이 반쯤 드러나고

치마가 찢겨져 허벅지가 드러나 고통스런 모습의 처녀

 

 

 

 

왜 왔던고 왜 왔던고 만주벌판에 왜 왔던고

낯설고 물설은 만리타국 만주땅에 어인일로 왔던고

삼천리라 금수강산 왜놈 발에 짓밟혀서 조선 해는 간곳없이 암흑천지 되었으니

 

 

 

 

달빛 속의 진혼곡

 

 

 

 

또 다른 수난

 

 

 

 

20만 조선사람들의 강제이주

1937년 8월 21일 소련 인민위원회 및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결정된 것이었다

첫째는 조선사람들의 첩자행위 방지, 둘째는 중앙아시아와 카자흐스탄의 농업인력 공급이었다

 

 

 

 

청산리 전투 · 봉오동 전투 · 의열단 · 한인애국단 · 신흥무관학교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