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금강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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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2022. 1. 15.

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영월 금강공원은

라디오 스타 박물관 · 금강정 · 민충사 · 낙화암 등 여러 역사문화자원을 품고 있어 즐기며 산책하기 좋다

 

금강공원

금강정 · 민충사 · 낙화암 등이 보인다

 

 

 

 

충혼탑

6 · 25전쟁 중 호국의 신으로 산화한 영월 출신 군인, 경찰 등 578위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1965년 8월 영월군민의 뜻을 모아 건립한 탑이다

 

 

 

 

충혼탑

호국영령들의 높은 뜻을 후손들에게 길이 전하고자 1964년 6월 24일에 건립되었으며

2012년 6월 6일 제 57회 현충일에 즈음하여 호국영령들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순국김상태의병장충절비(殉國 金尙台義兵將 忠節碑)

일제강점기 의병활동을 전개한 김상태(1862~1911) 선생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삼척김씨대종회 영월군지회가 주축이 되어 1998년 건립되었다

선생은 단양군 영춘면 남천 출신으로 지역에서 양반으로서 명망이 높았다

1896년 이강년이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그 휘하로 들어가 중장군으로 활약하고

이후 유인석이 영월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이강석과 유인석 의진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선생은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1907년 이강년의 의진과 합세하였다

1908년 이강년이 체포되자 그 를 대신하여 의병을 이끌며 단양 일대에서 활약하였으며

1909년에는 단양군내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순사 2명을 사살하기도 하였다

일제가 선생을 체포하기 위해 상금 5백금을 걸자 상금을 노린 우중수가 선생을 배신하여 고발하였다

결국 선생은 1911년 6월 14일 풍기군 단산면 소백산 기슭에서 체포되어 대구경찰서로 압송되었다

체포된 선생은 단식하였으며, 같은 해 9월 21일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영화 「라디오스타」의 배경이 되었던 (구) KBS 영월방송국을 리모델링한 것으로

라디오의 탄생에서 발전에 이르는 라디오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단순히 관람하는 것을 넘어 직접 라디오방송 제작에 참여하고 경험할 수 있는 체험형 학습박물관이다

 

 

 

 

영월 라디오스타 박물관

2006년에 개봉한 안성기 · 박중훈 주연 영화 〈라디오 스타〉 촬영지로 인기를 얻으면서

2010년 영월군에 매각되어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도시 관광 활성화 공모사업에 선정

리모델링을 거쳐 2015년 라디오스타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카페 ON AIR

공정무역 커피 · 지역농산물로 만든 차를 판매한다

휴대용 라디오 모양 건물이다

 

 

 

 

영월군수 · 부사 선정비 · 영세불망비

11기의 비군(碑群)이다

 

 

 

 

부사 구택규 청덕선정애민비(府使具公宅奎淸德善政愛民碑)

1740년(영조16) 3월 4일 부임하여, 1741년(영조17) 8월 15일 사직하였다

신유년(1741) 11월 세웠다

 

 

 

 

군수 이야 청덕선정영세불망비(郡守李公壄淸德善政永世不忘碑)

1691년(숙종17) 12월 25일에 부임하였으나

1693년(숙종19) 12월 18일 도사(都事)와 다툰 문제로 대간의 탄핵을 받아 파직했다

숙종 20년(1694) 세웠다

 

 

 

 

군수한백겸청덕비(郡守 韓公百謙 淸德碑)

경자년(1600년 선조33) 8월 4일에 군수로 부임하였고

신축년(1601년 선조34) 2월에 동생 준겸(俊謙)이 4도 도예찰부사(四道都禮察副使)가 되자

상피(相避)에 의해 형조정랑(刑曹正郞)으로 인사 이동되었다

1603년(선조36) 영월읍민들이 덕정비를 세웠다

 

 

 

 

군위현감 정사종 충의비(軍威縣監丁嗣宗忠義碑)

야은 정사종은 무과에 급제하여 세자를 모시는 익위 벼슬을 거쳐 군위현감으로 있었다

어린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자

군위현감 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운둔생활을 하며 단종의 안위를 걱정하였다

1457년 음력 10월 24일 경상도 순흥에 유배중이던 금성대군이 부사 이보흠과 함께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가 탄로 나자 세조는 동생인 금성대군을 죽이고 어린 단종에게도 사약을 내렸다

단종이 승하하자 비통함과 울분을 참지 못하여 스스로 자결 하려 하자

그의 아들 ‘중경’이 울면서 말하기를 "임금을 위하여 盡忠(진충)하심은 당연한 도리이오나

반드시 임금을 감장(戡葬)할 사람이 없을 것이니

상왕을 염장한 후에 세상을 떠나심이 옳지 않겠는지요."라면서 애원하였다

상왕의 시체를 감장하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칙명이 있었으나

이에 개의치 않고 1457년 10월 24일 어두운 밤에 상왕의 시신을 호장 엄흥도와 그의 아들 삼형제가 주동이 되고

야은 공은 아들 중경을 데리고 영월 동을지산(冬乙旨山 · 현 장릉)에 상왕의 시신을 암장하고는

아들 중경에게 당부하기를

 余歸田(여귀전) / 너는 농촌으로 돌아갈 것이며

牲以子孫 爲樵牧(생이자손 위초목) / 이후 자손들은 나무나 하고 소를 기르며

不求功名(불구공명) / 공명을 구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청령포 깊은 물에 투신 자결하였다

*

이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영월군과 영월향교가 주관하여

1992년 11월 18일(음력 10월 24일) 영월읍 금강공원에 충의비를 건립하였다

 

 

 

 

항일의병장 정대억의사 순국비(抗日義兵將丁大億義士殉國碑)

영월읍 삼옥리 출신인 정대억(1872~1908)의사는 야은공 군위현감 정사종의 후손으로

1907년 일제가 강압적으로 정미 7조약을 체결하여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군대를 해산하자

의사는 1907년 8월19일 주천에서 도창의대장에 추대된 이강년과 함께 정미의병에 참가하여

영월 주천면 판운리 및 덕포리 독산전투와 제천, 단양, 충주 등지에서

많은 적을 사살하여 격퇴시키는 등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정대억 의사는 1908년 6월 3일 청풍면 금수산 까치성전투에서 포로가 되어 영월로 압송되었으며

일 주일 후인 6월 10일에 왜병들은 영월읍 5리정에서 의사의 눈을 빼고 목을 베어 살해하였다

*

이에 후세의 교훈으로 삼고자 광복 50주년을 맞아 이 순국비를 세운다

 

 

 

 

난고시비(蘭皐詩碑)

김삿갓 김병연의 시비다

 

 

 

 

난고시비(蘭皐詩碑)

四脚松盤粥一器 / 개다리 소반에 죽 한 그릇
      天光雲影共徘徊 / 하늘과 구름이 얼비치는데
      主人莫道無顔色 / 주인이 미안ㅎ다 말하지마소
      吾愛靑山倒水來 / 내사 청산이 물에 거꾸로 박힌 것이 더욱 좋애

*

손님 대접을 하려고 쌀 한 줌을 어렵게 구하여 죽을 쑤어 내왔나보다

오히려 미안해 하는 주인과 마주하여 맹물과 다름없는 멀건 죽을 먹으면서

이토록 착한 백성들이 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나라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순수한 마음씨에 감복하여 읊은 시다

 

 

 

 

의사 전재규 연구원 추모비(義士全在奎硏究員追慕碑)

대한민국 제17차 남극 과학연구단 월동대로 선발되어

2003년 11월 20일 출국, 2003년 11월25일 세종기지에 도착하여

동 월동대 지구 물리 연구원으로 근무 중 남극 킹 죠지섬 해상에서

2003년 12월 6일(현지시간) 세종기지로 귀환 도중 실종된 동료 월동대원 3인을 구조하기 위하여

구조대에 자원 동참하여 2003년 12월7일 19시 경 세종기지 출발 후

2003년 12월 7일 20시 50분 경 악천후로 남극 킹 죠지섬 인근 Ardley(아들리)섬 해상에서 구조선이 전복되어 순직함

 

 

 

 

새농촌청소년상

청년 4H 20년사는 고난과 역경속에서도 이 나라 새역사의 창조자가 되기 위해

농촌 근대화사업의 힘찬 대열에서 흙의 문화를 창조하여 전국 72만 여 농촌 청소년들의 미래상을 심고

자조 근면 협동의 새마을정신으로 단결력을 배양하여 복지농촌건설의 중추적 역할을 다하고

내 고장 영월의 발전을 위한 애향운동으로 빛나는 활동업적을 기리고자

1970년 4월 5일 제막식을 가졌다

 

 

 

 

금강정(錦江亭 ·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4호)

아래로는 푸른 동강이 흐르고, 그 앞에는 계족산과 태화산이 자리하여

그림같이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에 세워진 조선시대 정자이다

1428년(세종10)에 군수 김복항(金復恒)이 처음 건립했다고 하며

영월제영(寧越題詠)에의하면 1684년(숙종10) 이무(李堥)가 영월군수로 있을 때

금강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하여 자신의 재산을 들여 정자를 짓고 금강정이라 하였다 한다

*

금강정 주변의 수려한 경관은 퇴계 이황이 안동에서 춘천으로 가던 중

금강정에 들러 지은 것으로 보이는 「금강정」이라는 시와

1684년(숙종10)에는 우암 송시열이 금강정 주위로 펼쳐지는 절경을 바라보며 쓴

「금강정기」 등 문헌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
금강정의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정자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인 금강정(錦江亭) 현판이 걸려 있다

이처럼 금강정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방문과 기록이 이어진 곳이며

금강정 주위에 민충사와 낙화암 등 단종 관련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금강정(錦江亭) 현판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금강정(錦江亭)

이황(李滉)의 시다

 

 

 

 

금강정(錦江亭)

황희(黃喜)의 시다

 

 

 

 

민충사(愍忠祠 ·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7호)

이 사당은 단종께서 영월에 유배되셨다가 1457년(세조3)에 승하하시자

그 비보를 접하고 강물에 투신하여 순절하신 종인과 시녀의 신위를 모신 곳이다

처음에는 마을사람들이 이를 슬프게 여겨 이곳을 낙화암(落花岩)이라 부르고 단을 설치하여 그 넋을 위로하였다

그 후 1742년(영조18) 이곳에 영월부사 홍성보(洪聖輔)가 사당을 건립하여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으며

1749년(영조25)에 부사 김응복이 사당을 개수하였으며, 1758년(영조34)에 민충(愍忠) 이란 편액이 내려졌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중건과 보수가 있었다

현재의 건물은 한국전쟁 때 크게 파괴된 것을 1956년 중수하여 여러 차례 보수한 것이다

매년 한식과 음력 10월 24일 단종께서 승하하신 날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민충사(愍忠祠 ·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7호)

왼쪽 從人之神位(종인지신위) · 오른쪽 侍女之神位(시녀지신위)가 봉안되어 있다

 

 

 

 

민충사(愍忠祠) 현판

정조 15년(1791)에 부사 박기정(朴基正)이 사우(祠宇)를 개건하면서

강원도관찰사 윤사국(尹師國)이 현판을 썼다

*

안구순(安球淳)의 중수기가 현판 뒤쪽에 걸려 있다

 

 

 

 

 

중수기(重修記)

안구순(安球淳)의 중수기

 

 

 

 

월기 경춘 순절지처(越妓 瓊春 殉節之處) 비

고노옥(기명 경춘)은 조실부모한 후 기생이 되었지만

영월부사 이만회의 아들 이수학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사랑에 빠졌고

영월부사인 아버지가 한양으로 영전하자 이수학은 과거에 급제한 후 백년가약을 맺겠다고 약속한 후 귀성했다

이후 영월부사인 구협이 병으로 죽자 그 후임으로 신광수가 영월부사로 부임해

경춘에게 수청 들기를 강요했으나 경춘은 전임 부사의 아들인 이수학과의 관계를 말하며 수청 요구를 거절하였다

수청을 들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위협과 여러 차례 매를 맞아 고초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16세인 1772년 낙화암에 투신하여 절개를 지켰다

영월부사 신광수는 두 달 뒤 "지난 날 저지른 속되고 모진 잘못"을 이유로 파면된다

영월판 춘향전으로 빗돌은 1795년 평창군수 남희로가 비문을 짓고

영월부사 한정운이 글씨를 써서 순절비를 세웠다

*

영월읍 금강정 낙화암 앞에 있다

 

 

 

 

실존 인물 「영월 기(妓) 고경춘(高瓊春)」 상

월기 경춘 순절지처(越妓瓊春殉節之處) 빗돌 앞에 있다

 

 

 

 

순절비(殉節碑) · 낙화암(落花巖)

단종이 객사 관풍헌 앞마당에서 승하하시게 되자

단종을 모셨던 시녀와 종인들은 이승에서 모셨던 임금님이 저승에 가셨으니 빨리 따라가서 모시자 하여

절벽 아래 금장강(동강)으로 투신하여 순절한 장소이다
1726년 영월부사를 지낸 윤양래의 탁본첩에 기록되어 있는 실물의 낙화암 비석은 금장강 물속에 잠겨있고

현재의 비석은 1924년에 다시 세웠다

 

 

 

 

사람 얼굴 모양 조형물

 

 

 

 

사운드 허그(Sound Hug)

헤드셋 모양을 형상화하였으며 Sound(소리)와 Hug(끌어안다, 포옹하다)의 합성어로

HUG는 인근의 역사문화자원(Heritige-금강정, 낙화암, 라디오스타박물관)과

라디오의 웨이브를 모티브로 한 이색적인 공간(Unique)

향후 영월군의 역사, 문화 중심 공간으로서의 비전(Generate) 등이 어우러진다는 뜻을 갖고 있다

*

스위치를 누르기만 하면 누구나 쉽게 SAC의 스피커를 통해 웅장하고 높은 음질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블루투스 기능을 통해 방문자의 휴대폰과 SAC 스피커 매니지먼트를 연동하여 들을 수 있다

*

좌측 스피커 아래 음악감상 하는 법이 설명되어 있다

 

 

 

 

월남참전기념탑 · 6.25 파병지원국 기념비

 

 

 

 

해병대 영월지구 전투전적비

 

 

 

 

금강공원 에코스튜디오 종합안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