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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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2022. 1. 15.

단종의 넋이 서린 영월을 영월역에서 시작해

금강공원, 영월향교, 영월관아를 거쳐 동강사진박물관까지 걸었다

 

영월역

1956년 태백선의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64년 화력발전소 전용선이 부설되었으며 1974년 태백선 전철이 개통하였다

단종의 능이 있는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고운 단청의 아담한 한옥 역사다

 

 

 

 

거리설치전 연결 · 김삿갓 동상

역사 광장에 있다

 

 

 

 

서울상회

현재 서울상회 골목길과 그 끝에 위치한 나루터는

동강을 수백 번 오고가던 떼꾼들의 터전이었다

*

영월역에서 동강천 제방으로 가는 길이다

 

 

 

 

덕포나루터 벽화

동강천변, 동강의 제방 위를 따라 길게 줄을 서듯 열리는

덕포시장은 영월에서 생산된 각종 농산물과 특산물을 판매하는 시장으로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기도 하다

*

지금의 5일장은 4 · 9일이다

 

 

 

 

덕포나루터 주막

 

 

 

 

영월 뗏목아라리

황새여울 된꼬까리에 떼 무사히 왔으니

영월 덕포 꽁지갈보야 술상 차려 놓게

 

 

 

 

금강공원

금강정 · 민충사 · 낙화암 등이 보인다

*

예전 덕포나루터가 있던 곳에서 봤다

 

 

 

 

동강 포토존 쉼터

영월 · 동강에 관한 시가 전시되어 있다

 

 

 

 

영월대교

 

 

 

 

봉래산

정상에 있는 별마로천문대가 보인다

 

 

 

 

영월문화학교

영월문화원 별관이다

 

 

 

 

천주교 영월성당

 

 

 

 

계족산

동강 건너 영월역이 있는 곳이다

 

 

 

 

충혼탑

6 · 25전쟁 중 호국의 신으로 산화한 영월 출신 군인, 경찰 등 578위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1965년 8월 영월군민의 뜻을 모아 건립한 탑이다

 

 

 

 

순국 김상태 의병장충절비(殉國 金尙台義兵將 忠節碑)

일제강점기 의병 활동을 전개한 김상태(1862~1911) 선생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삼척 김씨대종회 영월군지회가 주축이 되어 1998년 건립되었다

선생은 단양군 영춘면 남천 출신으로 지역에서 양반으로서 명망이 높았다

1896년 이강년이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그 휘하로 들어가 중장군으로 활약하고

이후 유인석이 영월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이강석과 유인석 의진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선생은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1907년 이강년의 의진과 합세하였다

1908년 이강년이 체포되자 그를 대신하여 의병을 이끌며 단양 일대에서 활약하였으며

1909년에는 단양군내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순사 2명을 사살하기도 하였다

일제가 선생을 체포하기 위해 상금 5백금을 걸자 상금을 노린 우중수가 선생을 배신하여 고발하였다

결국 선생은 1911년 6월 14일 풍기군 단산면 소백산 기슭에서 체포되어 대구경찰서로 압송되었다

체포된 선생은 단식하였으며, 같은 해 9월 21일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영월 라디오스타 박물관

2006년에 개봉한 안성기 · 박중훈 주연 영화 〈라디오 스타〉 촬영지로 인기를 얻으면서

2010년 영월군에 매각되어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도시 관광 활성화 공모사업에 선정

리모델링을 거쳐 2015년 라디오스타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카페 ON AIR

공정무역 커피 · 지역농산물로 만든 차를 판매한다

휴대용 라디오 모양 건물이다

 

 

 

 

영월군수 · 부사 선정비 · 영세불망비

11기의 비군(碑群)이다

 

 

 

 

군위현감 정사종 충의비(軍威縣監丁嗣宗忠義碑)

야은 정사종은 무과에 급제하여 세자를 모시는 익위 벼슬을 거쳐 군위현감으로 있었다

어린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자

군위현감 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운둔생활을 하며 단종의 안위를 걱정하였다

1457년 음력 10월 24일 경상도 순흥에 유배중이던 금성대군이 부사 이보흠과 함께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가 탄로 나자 세조는 동생인 금성대군을 죽이고 어린 단종에게도 사약을 내렸다

단종이 승하하자 비통함과 울분을 참지 못하여 스스로 자결 하려 하자

그의 아들 ‘중경’이 울면서 말하기를 "임금을 위하여 盡忠(진충)하심은 당연한 도리이오나

반드시 임금을 감장(戡葬)할 사람이 없을 것이니

상왕을 염장한 후에 세상을 떠나심이 옳지 않겠는지요."라면서 애원하였다

상왕의 시체를 감장하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칙명이 있었으나

이에 개의치 않고 1457년 10월 24일 어두운 밤에 상왕의 시신을 호장 엄흥도와 그의 아들 삼형제가 주동이 되고

야은 공은 아들 중경을 데리고 영월 동을지산(冬乙旨山 · 현 장릉)에 상왕의 시신을 암장하고는

아들 중경에게 당부하기를

 余歸田(여귀전) / 너는 농촌으로 돌아갈 것이며

牲以子孫 爲樵牧(생이자손 위초목) / 이후 자손들은 나무나 하고 소를 기르며

不求功名(불구공명) / 공명을 구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청령포 깊은 물에 투신 자결하였다

*

이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영월군과 영월향교가 주관하여

1992년 11월 18일(음력 10월 24일) 영월읍 금강공원에 충의비를 건립하였다

 

 

 

 

난고시비(蘭皐詩碑)

四脚松盤粥一器 / 개다리 소반에 죽 한 그릇
      天光雲影共徘徊 / 하늘과 구름이 얼비치는데
      主人莫道無顔色 / 주인이 미안ㅎ다 말하지마소
      吾愛靑山倒水來 / 내사 청산이 물에 거꾸로 박힌 것이 더욱 좋애

*

손님 대접을 하려고 쌀 한 줌을 어렵게 구하여 죽을 쑤어 내왔나보다

오히려 미안해 하는 주인과 마주하여 맹물과 다름없는 멀건 죽을 먹으면서

이토록 착한 백성들이 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나라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순수한 마음씨에 감복하여 읊은 시다

 

 

 

 

금강정(錦江亭 ·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4호)

아래로는 푸른 동강이 흐르고, 그 앞에는 계족산과 태화산이 자리하여

그림같이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에 세워진 조선시대 정자이다

1428년(세종10)에 군수 김복항(金復恒)이 처음 건립했다고 하며

영월제영(寧越題詠)에의하면 1684년(숙종10) 이무(李堥)가 영월군수로 있을 때

금강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하여 자신의 재산을 들여 정자를 짓고 금강정이라 하였다 한다

*

금강정 주변의 수려한 경관은 퇴계 이황이 안동에서 춘천으로 가던 중

금강정에 들러 지은 것으로 보이는 「금강정」이라는 시와

1684년(숙종10)에는 우암 송시열이 금강정 주위로 펼쳐지는 절경을 바라보며 쓴

「금강정기」 등 문헌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
금강정의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정자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인 금강정(錦江亭) 현판이 걸려 있다

이처럼 금강정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방문과 기록이 이어진 곳이며

금강정 주위에 민충사와 낙화암 등 단종 관련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금강정(錦江亭) 현판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민충사(愍忠祠 ·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7호)

이 사당은 단종께서 영월에 유배되셨다가 1457년(세조3)에 승하하시자

그 비보를 접하고 강물에 투신하여 순절하신 종인과 시녀의 신위를 모신 곳이다

처음에는 마을사람들이 이를 슬프게 여겨 이곳을 낙화암(落花岩)이라 부르고 단을 설치하여 그 넋을 위로하였다

그 후 1742년(영조18) 이곳에 영월부사 홍성보(洪聖輔)가 사당을 건립하여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으며

1749년(영조25)에 부사 김응복이 사당을 개수하였으며, 1758년(영조34)에 민충(愍忠) 이란 편액이 내려졌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중건과 보수가 있었다

현재의 건물은 한국전쟁 때 크게 파괴된 것을 1956년 중수하여 여러 차례 보수한 것이다

매년 한식과 음력 10월 24일 단종께서 승하하신 날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월기 경춘 순절지처(越妓 瓊春 殉節之處) 비

고노옥(기명 경춘)은 조실부모한 후 기생이 되었지만

영월부사 이만회의 아들 이수학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사랑에 빠졌고

영월부사인 아버지가 한양으로 영전하자 이수학은 과거에 급제한 후 백년가약을 맺겠다고 약속한 후 귀성했다

이후 영월부사인 구협이 병으로 죽자 그 후임으로 신광수가 영월부사로 부임해

경춘에게 수청 들기를 강요했으나 경춘은 전임 부사의 아들인 이수학과의 관계를 말하며 수청 요구를 거절하였다

수청을 들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위협과 여러 차례 매를 맞아 고초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16세인 1772년 낙화암에 투신하여 절개를 지켰다

영월부사 신광수는 두 달 뒤 "지난 날 저지른 속되고 모진 잘못"을 이유로 파면된다

영월판 춘향전으로 빗돌은 1795년 평창군수 남희로가 비문을 짓고

영월부사 한정운이 글씨를 써서 순절비를 세웠다

*

영월읍 금강정 낙화암 앞에 있다

 

 

 

 

순절비(殉節碑) · 낙화암(落花巖)

단종이 객사 관풍헌 앞마당에서 승하하시게 되자

단종을 모셨던 시녀와 종인들은 이승에서 모셨던 임금님이 저승에 가셨으니 빨리 따라가서 모시자 하여

절벽 아래 금장강(동강)으로 투신하여 순절한 장소이다
1726년 영월부사를 지낸 윤양래의 탁본첩에 기록되어 있는 실물의 낙화암 비석은 금장강 물속에 잠겨있고

현재의 비석은 1924년에 다시 세웠다

 

 

 

 

사람 얼굴 모양 조형물

 

 

 

 

사운드 허그(Sound Hug)

헤드셋 모양을 형상화하였으며 Sound(소리)와 Hug(끌어안다, 포옹하다)의 합성어로

HUG는 인근의 역사문화자원(Heritige-금강정, 낙화암, 라디오스타박물관)과

라디오의 웨이브를 모티브로 한 이색적인 공간(Unique)

향후 영월군의 역사, 문화 중심 공간으로서의 비전(Generate) 등이 어우러진다는 뜻을 갖고 있다

*

스위치를 누르기만 하면 누구나 쉽게 SAC의 스피커를 통해 웅장하고 높은 음질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블루투스 기능을 통해 방문자의 휴대폰과 SAC 스피커 매니지먼트를 연동하여 들을 수 있다

*

좌측 스피커 아래 음악감상 하는 법이 설명되어 있다

 

 

 

 

월남참전기념탑

 

 

 

 

영월 향교(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0호)

1398년(태조7)에 설립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473년 향교의 기와를 다시 바꾸었으며, 1574년과 1593년, 1604년 중창하였고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일부 건물이 불탔으나, 대성전은 당초 건물 그대로다

영월 향교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성현과 우리나라의 18성현을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훈도 1명이 교생 50명의 교육을 담당하였으나, 1895년 갑오개혁 이후 폐지되었다

1912년에는 영월초등학교 학생이 이곳에서 공부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매년 음력 2월과 8월 초경일, 두 차례에 걸쳐 석전제를 거행하고 있다

 

 

 

 

담배가게

 

 

 

 

영월지청 · 영월지법

 

 

 

 

영월엄씨(寧越嚴氏) 시조 엄임의(嚴林義)

중국 한나라 시인 여요(余姚) 사람 엄자릉(嚴子陵)의 후예이며 당나라 상국(相國) 화음(華陰)의 일족(一族)이다

당나라 현종(玄宗) 때 새로운 악장(樂章)을 만들어 이를 인근의 여러 나라에 전파하기 위해 보낸 파악사(波樂使)로

신라에 왔다가 본국에서 정변이 일어나자 돌아가지 않고 지금의 강원도 영월 땅인 내성군(奈城郡)에 안주하였으며

이가 한국 엄씨의 시원(始源)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중앙시장

쇠퇴한 옛 낮시장이다

 

 

 

 

 

영월부 관아(寧越府 官衙 · 대한민국 사적 제534호)

영월 객사와 관풍헌 및 자규루는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이 이곳에 유배되어

노산군으로 강봉된 채 17년간의 짧은 생을 마감한 곳으로 전해진다

세조 3년(1457)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이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어 지내다가 홍수가 나게 되자

당시 영월부 객사의 동익헌이었던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겨 침전으로 사용하였고

자규루(당시 매죽루)에 자주 올라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난

어린 임금의 비통함과 애처로움이 배어 있는 시를 지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자규루(子規樓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6호) · 매죽루(梅竹樓)

세종 10년(1428)에 창건, 신숙근이 중건, 신숙근은 연산조에 영월군수를 역임하였다

후에 단종께서 관풍헌으로 이어하시어 머무시는 동안 이 누각에 오르시어

자규사(子規詞) 및 자규시(子規詩)를 읊으신 것이 계기가 되어 자규루로 불리게 되었다

그 후 선조 36년(1605) 큰 홍수로 인하여 이 누각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민가가 들어설 정도로 폐허가 되었으나

정조 15년(1791) 강원도 관찰사 윤사국과 영월부사 이동욱이 의논하여 중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월시네마

 

 

 

 

미락회관

경력 50년의 주인 할머니와 대를 이은 며느리의 사진이다

일제강점기부터 광산업이 절정을 이루던 1970년대까지 장사진을 쳤다는 요리골목 입구에 있다

 

 

 

 

봉래관(현 강산회관)

탄광노동자들의 애환이 서린 요리골목으로

그들이 먹고 마시면서 요릿집 · 색싯집들이 돈을 끌어 모으던 골목이었다

당시 봉래관과 서울관이 이름 높았다 한다

 

 

 

 

이태준의 단편소설 영월 영감

1960년대~80년대까지 영월은 석탄산업이 성황을 이루던 시기에 우리나라 경제 부흥에 큰 역활을 했다

그러나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의 영향으로 탄광지역은 급격히 침체의 위기를 맞으며 쇄락의 길로 들어섰다

요리골목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2006년부터 영월군은 명품도시 건설을 위하여

역사성에 바탕을 둔 지역 정체성에 공공 디자인을 접목시켜 지붕없는 박물관을 만들고

이를 통한 문화마켓팅으로 침체된 영월과 요리골목에 생기를 불어넣게 되었다

 

 

 

 

배우 유오성 조각상

영월 출신이다

 

 

 

 

영월주상복합아파트

영화 라디오 스타의 주인공 안성기 · 박중훈 벽화가 있다

 

 

 

 

서부시장

서부시장은 위치상 이름이고

주민들은 아침시장이라 부르길 좋아한다

 

 

 

 

일미닭강정

서부시장에는 닭강정집들도 많지만

메밀전병 · 메밀부침 · 수수부꾸미 등을 파는 부치기집들이 몰려 있다

 

 

 

 

눈은 병방에 내린다 - 김일구

더 많은 탄을 캐는 단 한가지 이유는

나의 아들

아들의 아들

그 아들의 아들은

더 이상 캘 탄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눈은 병방에만 내린다

 

 

 

 

중앙로

영월버스터미널 사거리에서 봤다

 

 

 

 

영월버스터미널

 

 

 

 

영월군청

 

 

 

 

영월군의회 · 영월군청

 

 

 

 

동강사진박물관

2005년 7월 개관한 국내 최초의 공립사진박물관으로 지하 1층과 지상 2층 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3개의 전시실(상설전시실 1실, 기획전시실 2실)과 야외회랑 및 다목적강당, 사진체험실 등이 있다

특히 박물관 건물은 2007년 강원도 우수경관건축물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서울 뚝섬유원지 · 1950년대 · 이해선(1905~1983) 

동강사진박물관 소장품전 사진이다

 

 

 

 

Neil Kramer's Covid . Diary @neilochka

 

 

 

 

동강사진박물관 별관

 

 

 

 

계족산

 

 

 

 

봉래산 별마로천문대

 

 

 

 

소년의 꿈

 

 

 

 

효부각 · 열녀각

온양방씨 열녀각 · 경주이씨 효부각 · 김지룡 효자각 · 엄윤 효자각

동강사진박물관 건너 소공원에 있다

 

 

 

 

이장(里長) · 구장(區長) · 동계장(洞契長) 송덕비 무리

효부각 · 열녀각 옆에 있다

 

 

 

 

김삿갓 상

김삿갓 선생의 천재적인 문학사상과 시대 정신을 후세에 오래 기리고

문향과 충절의 고장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하동면 와석리 김삿갓 유적지 입구에 설치한

박찬수 선생의 목조 작품을 옥돌로 축소하여 조각한 것이다

 

 

 

 

흐르는 동강 - 심학철

거리설치전으로 작품이 읍내 곳곳에 있다

 

 

 

 

바르게 살자 빗돌

우리가 사는 새천년은 바르게 사는 사람만이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본 조형물을 건립함

- 건립취지문 중에서 -

 

 

 

 

영월 을미의병창의비(寧越乙未義兵倡義碑)

영월은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 · 1842-1915) 선생이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영월 을미의병창의지(寧越乙未義兵倡義地)다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

영월엄씨 시조 내성군(奈城君) 엄임의가 심은 1200년된 나무다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

보호수 안내판이 없어 크기를 알 수 없으나

나무둘레는 지금까지 본 은행나무 중 제일 큰 것 같다

우측 식수 기념 빗돌로 비교된다

 

 

 

 

영월군 하늘샘체육관

예전 「대장개 샘」이란 오래된 우물이 있던 곳이라 하늘샘으로 지은 것 같다

대장개 샘은 겨울엔 따뜻해 빨래해도 손이 안시리고

여름엔 손을 못 담글 정도로 차가운 샘이었다 한다

 

 

 

 

영월세무서

 

 

 

 

영월뼈다귀

저녁 7시쯤 들렸으나 재료가 다 떨어져 못먹고 다음 날 점심을 했다

맛집이다

 

 

 

 

 모텔 코리아파크

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9.5km, 소요시간 5시간 43분